바람의 온도가 제법 낮아졌다.
날씨가 서늘해질 때면 어릴 적 어머님이 내주시던 따뜻한 우유가 곧잘 떠오른다.
"엄마. 밖에 나가봤어? 날씨가 장난이 아니야. 진짜 추워. 올해 최고로 추운 것 같아"
외출하고 돌아온 내가 겉옷을 벗으며 말한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매년 겨울은 항상 최고로 춥다.)
"우유 한잔 줄까?"
어머니는 매번 나에게 우유 취식의 의사를 물어보셨지만 손은 이미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사실 모든 음식의 취식 여부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배고파? 밥 줄까?"라고 하시며 이미 밥을 담고 계셨고,
"오늘 된장찌개 끓일 건데 먹을래?"라고 하실 땐 이미 완성된 된장찌개가 놓여있었다.
어릴 적엔 편식의 습관이 있어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했던 까다로운 아이였지만
그 모든 걸 상쇄할 만큼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뛰어났다.
하지만 음료만은 예외였다.
워낙에 단 걸 좋아하는 외가 쪽 식구들의 입맛.
그것은 어머니께도 예외 없이 전수되었다.
"자 여깄어"
몹시 추웠던 날 어머님이 주셨던 따뜻한 우유는 색깔만 하얀색 일뿐 따뜻한 설탕국이 되어
나에게 제공되었다.
주에 두세 번, 따뜻한 우유라 불리던 하얀 설탕국은
내 몸으로 흡수되는 즉시 날 설탕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유는 원래 그렇게 먹어야 되는 거야"
칼국수와 동치미에도 설탕을 기본 다섯 큰 술씩 타 드시는
상상초월 외삼촌 들에 비하면 따뜻한 설탕국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달콤한 된장찌개가 생산되지 않는 것에 감사했던 그 시절이었다.
유전자의 종족보전력은 대단하다.
몇 대가 지나도 자신들의 특성을 결코 잃는 법이 없다.
우리 부족의 "달달함 추구"는 이제 보전의 막중한 임무를 띈 채 나에게 이식되었다.
날 잘 알고 있는 이들은 함께 있으면 알아서 달달한 음료를 나에게 제공한다.
현재까진 나에게 주어진 보전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근데 이걸 계속 물려줘야 되는지는 약간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