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Ⅱ

by 서채

엘리베이터는 마법 상자다.

음식이 눈앞에 없어도 그 음식의 깊은 향기를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준다.


퇴근길.

아파트에 도착해 여느 때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릴 때면 늘 엘리베이터가 말을 걸어온다.

꼭 미친 사람 같다.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엘리베이터가 말한다.

"글쎄..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내가 말한다.

"좋아. 그럼 오늘은 치킨을 추천할게. 사양 말고 맘껏 맡아봐. 자 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 안을 가득 메운 치킨 냄새가 날 휘감는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있는 건지 통닭 몸속에 있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급기야 엘리베이터의 층 버튼이 전화기의 번호 버튼처럼 튀어 오르고 난 이미 휴대폰을 꺼내 치킨집 번호를 검색하고 있다.


짜장면 치킨 피자 찌게 고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선사하는 고품격 냄새는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 밀폐된 데다 협소하기까지 한 공간. 그곳에 머물렀던 음식은 머무른 시간 × 10만큼 강렬한 자취를 남기며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상상의 세계가 더 훌륭한 이미지를 품고 있듯 야심한 밤 우리를 심각하게 유혹하는 엘리베이터 안의 음식 냄새는 실제 음식이 눈앞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음식의 이미지를 안겨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음식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엘리베이터 안,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지독한 술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때린다.


'누가 이렇게 지독하게 많이 마신 거지?'

'회식을 거하게 했나 본데?'

'누군진 모르겠지만 되게 속상했나 보다'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앞으로도 인지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을 저장하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각자의 인생이 베여있는 그 냄새들은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강렬한 신호를 짧게 보낸 뒤 스스로 소멸해 버린다.

하지만 치킨 냄새가 나면 군침이 돌고 술 냄새가 나면 짜증이 날 뿐 그 냄새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그것이 보내고 있는 신호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 길도 없다.


때문에 조금만 더 부드러워지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냄새에 분노하며 예의 없는 것들이라 욕하기엔 엘리베이터가 저장하고 있는 인생이 너무 측은하다.


그냥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느껴지면 느껴지는 대로 분노하지 않고 물 흐르듯 흘려보내보면 어떨까.

그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늘도 결국 분노조절에 실패했다..



"이게 방귀 냄새야 똥냄새야. 누가 엘리베이터에서 똥을 싸고 간 거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