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를 특정 짓는 물리적 증거에는 지문, 혈액, 머리카락 등이 있다. 생명체라면 누구나─ 각기 다른 [생체 신분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현장에 남아있는 [생체 단서]는 모습을 바꾸고 도망치는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지표이다.
겉모습을 바꾸어도, 자신이 아님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생체 단서 중에는─
"당신, 릴리의 눈과 완전히 같습니다."
─[홍채]가 있다.
"릴리? ... 명탐정! 탈옥했음...!"
루루와 역시도 페이시의 말을 듣자마자 의심 상태가 되었다.
"릴리 씨. 샤를로트를 어떻게 한 거죠?"
페이시는 이미 나를 릴리로 확정한 듯했다.
그녀는 눈의 색깔만으로 릴리를 판단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 그녀가 본 적 있는(아마도 탐정 사무소 홍보물이나 신문 등) 릴리의 사진에서, 홍채를 비롯한 눈의 세부적인 특징 자체를 이미지로써 저장해 둔 것이다.
[완전기억능력]. 이론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보이기만 하면 기억되는 것이다.
눈의 초점이 맞은 순간, 발동된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머리 속에 순간적으로 저장된다.
설마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이야.
명확한 증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일단 묶어놓죠."
페이시의 제안과 동시에 루루와의 검은 꼬리가 다시 한번 샤를로트의 몸을 포박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진짜 샤를로트는 어떻게 된 겁니까?"
"...... 인격 소거 당했어.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
거짓 없이 내뱉은 나의 대답에, 페이시와 루루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나. 표정으로 봐도, 진짜 샤를로트가 어떻게 됐는지부터 물어보는 것을 봐도, 이들은 샤를로트와 우호적인 관계였다. 어차피 정체를 계속 숨기려 했어도, 평소의 샤를로트가 아닌 게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훌쩍... 훌쩍.... 흐으으"
루루와가 눈물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페이시 역시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슬픈 감정까지 릴리에게 숨기지는 못한 모양이다.
이들은 적어도 샤를로트에게 있어서 명백한 아군.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나는 탐정 릴리."
그러려면 일단 처음부터 [스토리텔링]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명탐정─ 릴리의 눈과 똑같군요?"]
["릴리? ... 명탐정! 탈옥했음...!"]
"사실 난 죽으려고 했었어."
─나를 살인범이 아닌, 명탐정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들은 내가 범인이 아님을 안다.
***
탐정 릴리가 죽게 된 상황부터, 기사 샤를로트가 노예 경매장에서 눈 뜬 상황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녀들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읽은 것들과, 내가 추리한 것들까지.
["샤를로트는 저와 루루와의 친구이기 이전에, 저희의 활동을 도와주는 하급기사였습니다. [마녀사냥]으로 인해 명예를 잃었지만, 리더에게 부탁드려 이번 기회에 조직에 합류하기로 했었죠."]
페이시 역시, 간단하게나마 샤를로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 역시도 [마녀사냥]의 피해자. 적어도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조직 역시, [마녀사냥]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인 듯했다. 뒤에서 활동하는 나름의 자경단체인 것일까?
["샤를로트 본인이 아니더라도, 함께할 생각이 없더라도, 일단은 몸을 숨길 장소는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리더 [헤르카]를 만나서 일단 면접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내가 추리한 샤를로트라면 기꺼이 페이시를 따랐을 테고, 나 역시도 은신처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곳입니다."
어느새 그들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건물. 거리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이기에 전혀 수상해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지극히 평범한 술집이 있었다. 영업시각까지는 아직 남았는지,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 얘가 샤를이야?"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반갑게 맞이했다. 높은 신발을 신지 않았음에도 제법 큰 키를 가졌고, 금발 생머리에 얹힌 잿빛 머리 장식이 잘 어울렸다.
"옷은 뭘 이런 걸 입혀놨데? 이렇게 귀여운 애한테 어울리지 않는 걸~"
경매장에서 걸치고 있던 낡은 옷 대신, 창고에서 페이시가 갈아입으라고 준 옷. 페이시는 굳이 얽히기 싫은지, 안 그래도 어긋난 초점을 더 흐트러놓았다.
"있지, 나는 아니카라고해. 페이랑 루루한테 많이 들었어. 나랑도 친구 해 줄 거지?"
아니카는 샤를로트의 손을 붙잡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릴리를 바라보았다. 분홍 빛이 맴도는 그녀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이런 걸 보면, 아니카는 꽤나 붙임성이 좋은 듯했다. 이런 외모와 성격으로 여기서 일한다면, 당장 조직의 자금 문제는 없을 것이다.
... 그보다... 이 조직은 얼굴 보고 뽑나...?
"샤를로트, 아님... 릴리임."
루루와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엣?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명탐정 릴리? 갑자기?"
아니카는 당황한 듯 보였다. 그래, 이게 보통의 반응이지.
"설명하자면 깁니다."
페이시가 나섰다.
"... 그러니 생략하겠습니다."
─안 나섰다.
"뭐야, 페이. 너무하잖아!"
아니카의 볼이 한껏 부풀었다.
"... 헤르카 님에게 안내나 해주시죠."
***
술집 내부의 창고. 문 표면에는 [창고]라고 적힌 간판이 붙어있었다. 아니카가 그곳에 손을 대자, 문은 원래 열려야 할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암전(暗轉)]의 비밀 통로야!"
마치 중심축을 지닌 회전문처럼,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문 안쪽 흰색 내벽에 자그마한 전등만이 켜져 있고,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아니카는 사람 좋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하 술집보다 더 아래로─ 더 밑으로 안내했다.
두 명씩 지나갈 수 있는 통로. 가파른 계단의 끝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깊게 숨길 줄이야.
걸음으로 어림잡아 적어도 두 층은 되는 깊이였다. 밖에서 본 안내판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하 2층까지 있었다. 지하 2층은 평범한 상가였고 지하 1층 술집에서 두 층 정도를 내려왔으니, 이곳은 숨겨진 지하 3층인 것이다. 아마도 건물 자체는 처음부터 지상 4층과 지하 3층으로 완공되었을 테지만, 비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지하 2층과 지하 3층 사이의 연결 구멍을 메우고 지하 1층 술집에서만 오고 갈 수 있도록 공사를 한 것이겠지.
게다가 비밀문 자체도 참신했다. 원래대로 열었다면 평소의 창고가 나왔을 테지만, 문이 열리는 축을 마도구를 이용해 조정하여 반대로 당기면 다른 공간이 드러나는 식의 트릭. 게다가 마도구 자체도 얇게 만들어 마치 간판처럼 위장해둔 것.
이 정도면 확실히 은신처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루루와."
앞서가던 페이시가 건조한 목소리로 뒤돌며 루루와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옆에 있던 루루와는 곧바로 꼬리를 이용해 나를 묶었다.
"음? 어라?"
당황한 말투로 페이시를 쳐다보자,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다시 앞을 보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리더가 말이야~ 우리들 빼고는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묶으라고 해서. 조금만 참아주라."
아니카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뭐, 대충 이유는 알 것 같지만.
문을 열자 드러난 공간에는 사무실이 있었다. 중앙에 놓인 책상, 벽면에 세워진 책장. 그리고 한 쪽에는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까지. 언뜻 보면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이지만, 문이 여러 개 더 있는 걸 보면 거실에 해당하는 공간을 사무실로 꾸민 듯했다. 그리고 지하라 그런지 창문은 없고, 지상으로 통하는 듯한 환기구가 여럿 보였다.
"왔는가."
여러 개의 문 중에서 가장 안 쪽에 있는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은발 머리의 차가운 인상을 지닌, 릴리(24세)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여성이었다.
... 그리고 상당히 피곤해보였다.
"헤르카 님. 보고 드린 릴리 씨입니다."
페이시가 이전보다도 더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시간은?"
"... 15분 정도 여유 있습니다."
"... 그런가. 여유 있군."
헤르카는 릴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로 향했다. 그러고는 말없이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페이시, 루루와, 아니카 역시도 조용히 서있기만 했다.
3분 정도 지났을까, 헤르카는 직접 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보고는 들었다. 그대는 샤를로트가 아니라─"
계속 커피잔만을 향해 있던 헤르카의 적안이 릴리를 향했다.
"─릴리. 탐정 릴리."
헤르카의 표정을 읽어 보았다. [놀라움]은 있지만, [의심]은 아니었다. 뭔가 탐탁치 않게 보는 감정도─ 약간 섞인 듯한데.
"... 여러가지로 놀랍군. 인격이 소거된 기사의 몸에 빙의되다니."
이곳에 오기 전, 페이시의 보고만으로도 헤르카는 샤를로트의 몸에 다른 이가 깃들었다는 것을 거의 믿고 있었던 듯했다.
하긴, 홍채가 같은데. 다른 사람일 리가 있을까.
"그레이 백작 가문의 장녀이지만 제 발로 가문을 나와 독립─. 현장에 가보지 않고도 자료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탐정─. 존속 살해 혐의로 신분과 명예를 잃고 사형을 선고─. 집행을 얼마 안 두고 오늘 새벽에 탈옥했다고 들었다. 좀 아까 전에는 사살당했다는 소식도 전해졌고."
헤르카는 따로 자료를 살펴보지 않고 릴리에 대한 정보를 읊조렸다. 뭔가 더 알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의 정보를 풀지 않았다. 아마 [시간] 때문이겠지. 그나저나─
─나는 죽자마자 바로 살아난 거구나.
"그렇게 [마녀사냥]을 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말이지. 일단 그레이 백작 부부 살해 사건. 그대가 한 일이 아니라는 건 짐작은 간다만─"
헤르카는 다시 한번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잔을 입에서 뗌과 동시에 살며시 릴리의 푸른 눈을 가리켰다.
"어떤가. 그대가 진짜 탐정 릴리라면, 증명할 수 있지 않겠나?"
두 가지 의미였다.
하나, 부모님을 살해한 게 릴리가 아니라는 증명.
둘, 기사 샤를로트 안의 인격이 릴리라는 증명.
하하. 이런 면접일 줄이야.
그리고 예상대로라면─ 나는 10분 안에 헤르카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루루와의 꼬리에 묶여있는 릴리. 그리고 면접관처럼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있는 리더, 헤르카.
페이시, 아니카, 루루와가 조용히 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릴리는 [스토리텔링]의 준비를 끝마쳤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네."
샤를로트의 목소리. 여전히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적응해야 한다.
"나─ 그러니까, 릴리의 몸은 태생적으로 [마나결핍증]을 앓고 있었어. 그래서 탐정 사무소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지."
마나결핍증. 그 저주와도 같은 체질 때문에, 나는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었다. 몸을 많이 움직일 수도 없어서, 약을 사는 날이 아니면 외출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 날은─
"17일, 일요일. 매달 17일은 내가 약을 사러 외출하는 날. 굳이 내가 자리비우는 날에 두 분을 부르지 않겠지. 어려서부터 먹던 약이니까, 두 분도 알고 계셨어. 내가 17일마다 사무소를 비운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레이 백작 부부는 깜짝 방문을 했다─ 이거로군."
"맞아. 이따가 돌아올 딸을 기다렸던 거지. 하지만 사무소에는 침입자가 두 사람이 있었던 거야."
"침입자?"
"그래. 두 사람."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쳐 헤르카에게 보였다.
"침입자가 두 사람 있었다는 근거는?"
"근거도 두 가지야."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답을 알고 있건 모르건─ 무릇 탐정이라면 뻔뻔하게 나서야 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명백히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범인이 아니다.
이것은 증인인 내가 알고, 피해자인 부모님이 안다.
거기에 진짜 범인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하나─ 저항 흔적이 없었다는 점."
릴리는 현장을 직접 보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본인이 직접 피해자로서, 용의자로서, 증인으로서. 확실하게 실제 현장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현장에는 저항 흔적이 없었어. 오히려 두 분 다 손님용 소파에 편하게 앉아 계셨지. 아마 빈 사무소에 목적이 있던 침입자는 부모님이 오시니까─ 즉흥적으로 [조수 역할]을 했던 거야. 일요일이라 르... 조수가 쉬는 날이지만, 부모님은 조수의 근무 시간까지 알지는 못했겠지."
"그런가. 침입자라는 걸 들키지 않게 연기했다는 거로군. 백작 부부도 경계 없이 휴식을 취했겠어. 그렇다면 왜 두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지?"
"둘─ 총상의 특징."
이번에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두 분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확실히 아버지는 머리에─ 어머니는 심장에 총상이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두 분의 상처는─
─형태가 달랐다.
"총알 크기나 총의 종류가 다르니까─ 서로 다른 두 총으로 쏜 거겠지. 게다가 두 분 다 저항 흔적이 없었다는 건, 총알이 동시에 발포되었다는 의미야. 한 분씩 순서대로 쐈다면, 분명 다른 한 쪽에서는 조금이라도 움직인 흔적이 남아있었을 테니까."
"한 사람이 총 두 자루를 썼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페이시가 물었다.
"총상의 위치가 다르니까. 저항할 새도 없이 발포했다면, 곧바로 급소를 조준하고 빠르게 쏘았을 거야. 만약 한 사람이 쐈다면, 일부러 두 표적의 다른 급소를 조준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해했습니다."
페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니까─ 각자 급소로 머리와 심장을 노린 걸 보면, 범인은 성향이 확실히 다른 두 사람인 거지."
굳이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심장을 맞춘 범인은 르코일 것이다. ...... 실제로 나를 쐈을 때도 심장을 노렸고, 17일에 내가 사무실을 비운다는 걸 알기도 하고─ 누구보다 [조수 역할]을 잘 할 테니까.
"히야... 굉장한데?"
아니카는 눈빛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대단... 결코 대단...!"
루루와도 본인 나름대로의 감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헤르카는 이의를 제기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군."
그렇게 말하고는 커피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더 마셨다.
"실제로 사건에서는 [릴리의 총]─ 다시 말해, 그대의 총 한 자루만이 사용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대는 [조작]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납득할 수 없지 않겠나?"
"맞는 말이야. 당연히─"
스토리텔링에 몰입한 탓일까. 나는 탐정으로서, 간만에─
"증거는 있어."
─미소를 짓고 말았다.
"사무소 서랍에 대충 모셔두었던 릴리의 리볼버─. 침입자들이 쉽게 발견했을 거야."
─르코도 총 위치를 잘 알고 있었지.
"재판장에서는 그 리볼버 한 자루 만이 흉기로 제출되었어. 내 주장대로라면 한 발만이 발포되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두 발이 발포되었다고 해."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총알도 두 발 소모되었고, 포신의 그을음도 두 번 발포된 흔적이었다.
"살인 시에 한 번 발포─ 그리고 어딘가에 일부러 한 발 더 발포한 거야. 두 발 쐈다는 [거짓 증거]를 만들어두려고."
─그렇게 하면 [아버지를 쏜 총]은 현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
"내가 곧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외부까지 들고가서 발포하는 건 무리수. 그러니까 탐정 사무소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야."
기사들과 이단심판관들의 수사로 인한 출입금지로 찾아내지 못한─, 탄환이 회수되었더라도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숨겨진 [제3의 탄흔]이 말이야."
─그것이 바로 증거다.
"......"
헤르카는 대답이 없었다.
"그 전에 생겼을 가능성은 없어?"
아니카가 대신 이의를 제기했다.
"... 내가 내 사무소에서 총질할 사람으로 보여...?"
아니카는 대답 대신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해명은 그렇게 했어도, 아니카의 이의는 일리가 있었다. 결국은 나의 '주장'일 뿐이니까. 실제로, [제3의 탄흔]을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 뭐, 그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군. 일단─ 우리는 말이야."
헤르카를 비롯해 아니카, 루루와, 페이시도 [납득]한 듯했다. 실제로는 재판장과 배심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으니, '일단'이라고 한 건가. ─뭐, 사실이니까 상관없다.
"아직 3분 남았는데, 마저 해도 될까?"
"흠? 그걸 어떻게─"
"아까 15분 정도 여유 있다고 했잖아. 만약 면접에서 떨어지면, 기억 지울 거지?"
"면접이라 말한 적은 없다만. ...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그래. 정확한 스킬명까지는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한번 탐정의 뻔뻔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비밀 공간까지 오는 과정을 다 보여주었다는 점.
둘, 루루와로 하여금 방문자를 묶게 했다는 점.
"건물 앞─ 정확하게는 거리에 다다른 시점부터, 만약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위험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었을 경우 다시 바깥까지 내보내는 시간까지─ 대략 30분 동안의 기억을 없앨 수 있는 스킬이겠지. 스킬을 시전하는 동안 반항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묶어둔 거고."
스킬명도 사실 짐작은 간다. 과거, 드래곤의 능력 [아카식 레코드]로부터 파생된 [기억 정리]거나, 버프계의 이능력인 [메모리 아웃]이거나, 마도구를 이용하는 [기억 추출]이거나, 등등.
뭐, 마법을 못 쓰는 만큼, 마법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었으니까.
... 그나저나, 만약 헤르카의 능력이 메모리 아웃이라면─ 페이시의 완전기억능력도 그렇고... 릴리보다 뛰어난 [기억] 습관을 가진 이가 둘이나 되는 건데.
여러가지로 대단한 조직인 것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
페이시는 눈을 감고 평가했다.
"지림. 합격."
루루와의 평가는 단순했다. 꼬리나 좀 풀어줬으면 좋겠는데.
"훌륭하군. 역시 탐정 릴리인가."
최종 면접관(?)인 헤르카의 말투와 표정에는 놀라움과 감탄이 공존했다.
그러고는 계속 손에 들고만 있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나는 [암전]의 리더, 헤르카다. 탐정 릴리라면, 부모와 여동생, 그리고 자신을 해한 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나?"
헤르카는 이제서야 자기소개를 한 후,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면접은 합격한 모양이었다.
[복수]라... 역시 그게 암전의 [목적]이었구나.
하지만─
"...... 미안. 릴리는 죽었어.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복수심 따위도... ... 없어."
모든 미련을 놓고 죽음을 받아들인 릴리로서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면접을 봤던 건, 은신처를 원했을 뿐이야. 물론 돈은 지불할 거고."
"... 그런가."
헤르카의 표정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으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아니카도 꽤나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 노예경매장을 탈출한 것도, 일단은 이 몸의 원래 주인에 대한 배려였을 뿐. 지금에서는 죽을 이유야 없지만, 굳이 뭔가를 더 할 이유도 없는 걸. 레드 라이트 녀석들도... 그냥 더 관여하고 싶지 않아."
"음? 방금 레드 라이트라고 했나?"
"...... 응?"
릴리는 순간적으로 헤르카의 표정을 읽어버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마...'라는 의심이 섞여있었다.
"... 맞아. 레드 라이트. 유르하르드 경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예전에 해결한 사건 중에 하나가 그놈들한테 큰 피해를─"
쾅!
헤르카가 양손으로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덕분에 테이블 위에 있던 커피잔 역시 잔여물과 함께 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릴리는 말을 멈추고 헤르카의 표정을 읽으려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반쯤 숙인 상태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기에─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 뭐라는 거냐...?"
헤르카가 입술을 짓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릴리는 다른 이들의 표정을 주변시로 읽었다. [걱정], [당황], 그리고... [안쓰러움]이었다.
"네 녀석의 그 잘못된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사형]시킨거냐!"
헤르카의 일갈과 동시에 그녀의 주변에서 살기에 가까운 마나가 뿜어져나왔다. 곧이어 릴리는 몸이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루루와의 검은 꼬리가 풀려난 것이다. 곧이어 아니카는 릴리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진정해, 헤르카. 릴리 잘못이 아니란 걸 알잖아!"
아니카는 릴리를 보호해준 것이었다. 아니카의 옆으로 보이는 헤르카는, 좀 전까지 자신을 묶었던 검은 꼬리에 묶여있었다.
"설마...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니, 그러고도 네 녀석이 탐정인 것이냐!"
릴리는 현재 상황에 몹시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추리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헤르카의 반응에 깜짝 놀라기는 했어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였다.
처음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보였던 [탐탁치 않게 보는 감정].
─그것은 [원망]이었다.
하지만 릴리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더 생각했다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진상이 보일 것 같았기에. 르코 때와 마찬가지로─
절망이 보일 것 같았기에.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페이시가 나섰다.
"릴리 씨가 말한 [레드 라이트]는, [셰로키 스트리트]에서 활동했던 극단 이름입니다."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집단.
"귀족과 기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공연을 했다가, 예전에 단원 전원이 체포. 그리고 사형당했죠."
코델리 스트리트 밖에서의 일은 잘 몰랐다.
"...... 있지도 않은 죄목이 붙은 채로 말입니다."
그리고 헤르카의 반응을 보았을 때, 그 사건의 담당자는─
"기사 유르하르드. 그자의 짓입니다."
릴리는 다시 한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탐정으로서 지녀야 할 습관 중 하나, [수집]. 릴리는 그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평소 사건에 대한 정보는 모두 조수인 르코와 기사 유르하르드로부터 전달받았다. 릴리는 그저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했을 뿐이다. 해부 결과, 증언 내용, 용의자에 대한 정보, 그리고 다른 거리의 이야기 등─ 릴리가 알 수 없는 내용에서는 전부 [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르코가 가져온 [인신매매 극단]에 대한 자료. 릴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자료만 가지고, 해당 극단을 고발하는 추리를 완성시켰다. 탐정의 발언은 그대로 힘을 싣고 [인신매매 극단]을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했었다.
부모님을 살해한 진범이라며 쉼 없이 떠들어댔던 그 [레드 라이트] 역시─ 그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인 것이었다.
릴리의 추리로 다 죽어버렸으니까.
"유르하르드는 부패 기사입니다. 그를 비롯한 중급 기사 이상의 대부분들이 부패한 귀족 사회의 끄나풀이기도 하죠."
그만. 알고 있으니까.
"아마 릴리 씨에게 잘못된 정보를 건네며 부패 귀족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들을 해온 것일 겁니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말해.
"그러다가 점점 인지도가 높아지고 추리력 자체로도 걸림돌이 되는 릴리 씨를 [숙청]하기 위해 릴리 씨의 가족들에게도 손을 쓴 것일 테죠. 그들은 항상 주변 사람부터 노리니까요."
제발 그만...
"레드 라이트 극단에도... 헤르카 님의 연인 분이 계셨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헤르카는 그 사이에 진정된 듯했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에는 [실망]의 감정이 섞여있었다.
"부패 귀족으로 인해 거짓 명예를 수행하는 기사들처럼─"
헤르카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잘못된 정보에 본인이 옳다고 추리하는 탐정 따위 필요 없다."
"하지만, 릴리도 결국 피해자잖아? 이제라도..."
"됐어. 게다가 본인이 싫다는 거 억지로 끌어들일 생각 없다. 시간을 제대로 낭비해버렸군. [메모리 아웃]을 쓰겠다, 루루와."
루루와는 곧바로 헤르카를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슬픈 표정으로 다시 샤를로트의 몸을 포박했다.
이대로─
기억이 지워지고 끝나는 게 맞을까?
릴리는 사실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추리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진실을 알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기에 모른 척해버린 무능한 탐정이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릴리는 죽음으로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던 진실을 피하기 위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릴리가 아니잖아.
"... 할게. 아니, 함께하게 해줘."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 이전까지와 다르게 힘이 실린 목소리. 그런 릴리의 목소리에 다가오던 헤르카는 멈칫하고 말았다.
"부탁이야."
"이제 와서 무슨..."
"[탐정], 릴리가 필요 없다면─ [기사], 샤를이 될게. 애초에 너희가 데려오려던 건 릴리가 아니라 샤를로트였잖아?"
헤르카는 뭔가 대답하려다 말고 침묵을 지켰다. 헤르카와 눈이 마주쳤지만, [읽기]를 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잇고 싶었기 때문에.
"릴리는 죽고 싶어했어. 세상에 미련이 없었지. 하지만 샤를은 아니야. 끝까지 살아남아서 너희를 만나려고 했어."
릴리는 사실 알고 있었다.
["설마 몰랐겠어?"]
자신의 말버릇을─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되뇌었다.
무의식 중에 숨겨두었던 진실과 자신의 진심이 샤를로트를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헤르카는 여전히 대답없이 릴리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헤르카가 읽어내었다.
─그녀의 [진심]을.
릴리의 매듭은 끊어졌다. 새로운 연결을 위해서는─
"기사, 샤를로트. 암전에게 [명예]를 맡깁니다."
─다른 매듭을 묶을 필요가 있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