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색의 매듭 5화

by 도토리

"으악! 드나르 님이...!"
"그냥 손만 휘둘렀을 텐데?"
"영창 없이 마법을 쓴 건가?"
"다들 방심하지 마라!"

지켜야 할 대상인 고용주의 머리가 갑자기 잘려버렸으니, 경비병들이 당황하는 건 당연하다. 루루와도 깜짝 놀란 듯했다. 루루와가 알던 샤를로트는 이런 마법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이렇게 된 이상, 살려둘 수 없다!"
가운데에 있던 경비병이 내게 검을 겨눴다. 이윽고 나머지 네 사람도 저마다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고용주가 죽으면 굳이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저들에게는 의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명예]는 아니겠지.

"녀석의 손 움직임을 조심해라! 또 이상한 스킬을 쓸 수 있다!"
다행히 경비병들은 신중한 편이었다. 곧장 한 번에 달려들었으면 답도 없었을 텐데.
노예 경매장에서 썼던 [*살별]처럼─ 방금 드나르의 목을 잘라버렸던 [*도화(徒花)] 역시도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니까.
*살별: 혜성의 다른 말.

*도화: 헛되이 피는 꽃.


"오른손을 조심해라. 마나를 모으고 있다."


가장 왼쪽에 서 있던 경비병이 말했다. 그가 바로 소드 엑스퍼트 상급 정도 되는 경비병이다. 마나 감응을 통해서 확인한 건가. 그럼 이제 다들 내 오른손만 조심하려 하겠네.

뭐─ 상관없다.
"루루와. 방금 말한 녀석을 묶어줘."
휘리릭─
"이런!"
루루와는 곧바로 꼬리를 뻗어 소드 엑스퍼트 상급의 경비병을 포박했다. 바로 옆에 있던 여자 경비병이 꼬리를 잘라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루루와는 곧바로 꼬리를 컨트롤해서 피해냈다.
제 아무리 소드 엑스퍼트 상급이라고 해도─ 루루와의 꼬리는 어쩔 수 없다.
─우리 리더도 못 당하는 게 루루와의 검은 꼬리인데.

"난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해!"
묶여 있는 경비병이 외치자, 이번엔 두 명의 경비병이 루루와의 꼬리를 공격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나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루루와─ 안쪽으로!"
내 지시에 따라 루루와는 곧장 소드 엑스퍼트 상급 경비병을 달고 지하의 비밀 공간을 향해 달아났다. 덕분에 꼬리를 공격하던 두 경비병은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두 경비병은 이미 내 바로 앞까지 온 상황.

그럼 이제 나는─
두 번째 [도화]를 피워낼 차례이다.


서걱─
"끄아악!"

먼저 접근한 경비병의 오른팔을 잘랐다. 팔이 잘린 경비병의 몸은 오히려 바로 옆에서 오는 경비병이 다가오는 것을 저지해주었다.
움직이는 상대의 목을 노리기보다는 더 넓은 범위의 팔 쪽을 노린 건데, 다행히 제대로 잘라내었다. 덕분에─
─검을 빼앗을 수 있으니까.

휘릭─ 챙!

그대로 두 번째로 달려드는 경비병의 장병기를 막아내었다. 잘린 팔로부터 급하게 뺏어낸 검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묵직한 장병기와 경비병의 힘을 버티고 있었다. 귀족 시절에 검술이론을 어느 정도 배웠었고, 지금의 몸은 기사 샤를로트의 육체. 즉─ 이 정도는 맞받아칠 기술과 근력이 충분하다.
이제 나머지 두 명도 나를 공격할 것이다. 그 전에, 바로 앞에 있는 이 장병기를 든 여자 경비병을 쓰러뜨려야 한다.
"버텨봤자 소용없을 텐데?"
장병기와 함께 나를 위에서 내리누르고 있는 여자 경비병은 이대로 나를 묶어 둘 생각인가 보다. 하지만─
─내 왼손은 자유롭다.

피잉─


─무소음 마나 총탄.
푸른 빛의 [살별]이 경비병의 이마를 꿰뚫으며 궤적을 그리고, 장병기와 함께 그녀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묶인 건, 너도 마찬가지였네."
나는 검을 제대로 다잡고, 남은 두 경비병을 향해 겨눴다. 그들의 표정에서 [불안]과 [당황]을 읽었다. 그들 역시도 무기를 들고 대치하는 중이지만, [전의]가 읽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눈 앞에서 동료들이 순식간에 제압되는 걸 봐서 그런가.

"해치움."
루루와가 지하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꼬리에는 피부가 창백하고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시체 한 구가 매달려있었다.
─미리 일러준 대로 [독바늘]을 써서 잘 처리해준 듯했다.
이렇게 루루와의 꼬리는 비록 한 번에 한 명뿐이지만, 적들 중에 가장 강한 한 명을 확실하게 리타이어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한번─ 꼬리로 누군가를 묶을 수 있다.

"오른쪽의 남자 경비병을 묶어줘."
휘리릭─
독살당한 경비병의 시체가 내동댕이쳐지고, 남자 경비병에게 꼬리가 뻗어졌다. 두 경비병은 재빠르게 다가오는 꼬리에 검을 휘둘러보았지만, 검보다 빠른 꼬리는 검로를 가볍게 피해가며 한 사람만을 정확하게 낚아챘다.

"으으─ 항복! 항복이야!"

꼬리에 묶인 채 루루와의 앞으로 끌려온 경비병이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외쳤다.

"끄으으... 고용주는 죽었다...! 우리가 더 싸울 이유는 없어...!"
방금까지 날 죽이려고 했던 외팔이 경비병이 엎드린 채 말했다.

"마, 맞아요...! 저, 저도 항복입니다."
마지막까지 서있던 여자 경비병도 바닥에 검을 버리며 말했다.

그래. 이러면 확실히─ 편해진다.
나는 왼손에 충전하던 마나를 다시 거두었다. 여자 경비병은 마나 감응으로 보고 있었는지, 내가 마나를 거두자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다른 두 사람도 [안도]의 감정이 드러났다. 그런데─

─난 받아준다고 한 적 없는데.

"어? 이봐?"
이변을 눈치챈 건 묶여 있던 경비병이었다. 빼앗은 검에 마나를 흘려 넣고 있었으니까. 마나는 검날을 타고 흐르며 푸른 빛의 [오러]를 형성해냈다.
"사, 살려줘!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
조심스레 검을 들어올리자, 검으로부터 차가운 공기가 잔잔하게 퍼져나왔다. 검 주위의 수분은 얇게 얼었다가 순식간에 주변 기온에 녹아내리며 파란 얼음꽃들을 만들어냈다.

푸른 꽃은 자연 상태에 존재할 수 없는 꽃.
열매를 맺을 수 없어 헛되이 피는 꽃.


[도화]─.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이다.

"그, 그런다고─ 플로라 님이 돌아오지는 않아요...!"
여자 경비병이 날 바라보며 외쳤다. 아무래도 내가 플로라의 이름을 말했던 걸로, 꽤 많은 걸 추측한 모양이다.
"크윽... 더 저질렀다가는 귀족 세력이랑 기사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쓰러져 있는 경비병도 잘린 부위를 부여잡으며 일갈했다.
"그래! 이런 건 또 다른 보복을 낳을 뿐이야!"
묶여 있는 경비병도 거들었다.
"저, 저희도 방관한 건 맞아요... 그 부분은 죄, 죄송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복수는 의미 없는 거예요...!"
이건 [진심]이었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 이 여자 경비병은 살고 싶어서 말을 지어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틀려."
─나는 왼손으로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하나─ 이미 귀족과 기사들은 날 가만 두질 않아."
말과 동시에 [도화]가 핀 검으로, 바닥을 기고 있던 경비병을 베어냈다. 그는 더 이상 팔이 잘린 고통에 신음하지 않게 되었다.
"프리데! 너라도 도망쳐!"
"둘─ 또 다른 복수가 생기는 건, 확실하게 하지 않아서야."
루루와의 꼬리에 닿지 않도록, 묶여 있는 경비병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거리가 조금 되었지만, 날카롭게 정제된 [도화]는 검날이 직접 닿지 않아도 그의 목을 베어낼 수 있었다.

그가 죽기 전에 외친 말 때문에, '프리데'라는 여자 경비병은 이미 복도 밖으로 도망쳤다. 학살을 넋 놓고 보던 루루와를 뒤로 하고, 나는 곧바로 서재 밖으로 나섰다.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프리데가 보였다. 다행히 코너를 돌기 전이었다.

─아직 한 번은 더 쓸 수 있다.
드나르의 목을 베었을 때처럼─ 검신에 집중해서 마나를 모았다. 이번엔 손이 아니라 검이니까─ 더 멀리 있는 것도 비교적 정확하게 벨 수 있다.

셋─. 복수는 의미가 없더라도─

촤악─

─일단 하면 개운하다.

복도를 죽어라 달리던 프리데는 [도화]의 검격과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다가가보니 아직 숨이 붙어있는 프리데.
"당신처럼... 얼굴빛 하나 안 변하고... 사람 죽이는 괴물은... 처음 보네요..."
프리데는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할 말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일전의 노예 경매장의 하수인들부터 오늘 하이젠베르크 가의 경비병으로 일하는 사병들까지.
─해가 되는 이들을 해치우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푸욱─
쩌적─ 쨍강!

프리데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자─ 한기와 오러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검이 깨져버렸다. 일부 파편은 튕겨나가며 내 손을 스쳐 작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샤를로트─ 괜찮음...?"
어느새 루루와가 뒤쫓아왔다. 굳이 뒤돌아 루루와의 표정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복수심에 미쳐 살육을 하고 있다는 오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 루루와의 근심을 덜어주려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저 조용히─
"탐정 릴리였을 때는, 더 심했어."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그렇다.
탐정 릴리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

─반대로... 말이다.

죽일 이유가 충분한 이들이라도, 제재하지 않았다.
혹시나 있을 보복의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앙심을 품은 용의자를, 유르하르드에게 맡기고 내버려 뒀었다.
중범죄자를 사형대로 보내면서도, 내가 직접 죽이지 않았다는 괜한 자기 합리화와 함께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탐정일을 하다 보면 적이 생길 수 있다.]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은 건,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가 아닌, 내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처음 잃었을 때.

나를, 그리고 내 주변을 노릴 수 있는 녀석들에 대해 확실한 제재를 하지 않으면─, 나는 또 소중한 이들을 잃고─, 또 다시 무너지고─,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논리의 연장선으로─
오늘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을 살려둬서는 안 됐다.

사실 플로라에 대한 복수는 드나르의 목을 벤 시점에서 끝났다. 경비병들을 해치운 이유는 나중에 우리에게 피해가 올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그대로 뒀더라면, 하이젠베르크 가의 다른 이들이나 다른 가문의 귀족, 다른 기사들이 분명 드나르를 죽인 범인에 대해 물어봤을 테고─ 확실히 이들은 우리의 얼굴을 말했을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를 잡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겠지.
프리데의 경우에는 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드나르 밑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신념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던 루루와의 시선도, 나의 설명에 다시 이전으로 돌아왔다. 한 번 죽어봤던 사람이 후회하며 말하는 근거에─ 그녀 역시도 본인 나름대로 납득한 듯했다.


스윽─

손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루루와의 꼬리가 내 손에 난 상처를 감싸주고 있었다. 전혀 따갑지 않고, 포근한 느낌에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다.
"고생. 많았음."
애써 날 위로해주는 루루와. 그저 이 짧은 한 마디와 꼬리의 온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살아서 다행이다.

"이제, 돌아가자."
나는 루루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이제는 암전의 사무실로 돌아갈 때다. 모두와 상의해서 클로에 레안과 함께 이번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그리고─

"돌아가면 사탕 세 개 열어줄게."
─그곳이 내 집이니까.

루루와는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

작가의 이전글벽색의 매듭 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