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카가 일러준 주소를 따라오니 평범한 가정집이 보였다. 거리 외곽에 위치해서 그런지 주변에 상가나 주택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구석진 곳이면 기사나 이단심판관도 자주 오지는 않겠지.
["아마 며칠 걸릴 거다."]
헤르카는 별 다른 설명 없이 며칠 걸릴 거라고만 했다. [셰로키 스트리트] 외곽이니까 가는 데에 그 정도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실제로, 걸어서 온 지금도 출발한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여기 와서 하는 일이 그 정도 걸린다는 의미겠지.
혹시나 해서 루루와에게 사흘치 사탕을 열어주었는데, 루루와는 받자마자 전부 입 안 가득 넣어버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번에 돈(은닉재산)이 많아져서 사치를 부린 줄 알았다나...
아무튼─ 샤를이 아닌 릴리가 필요하다는 건, 머리 쓰는 일인 걸까? 사실 감이 잡히지는 않는다. [날개]라는 이름의 도구도 만들기 위해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 자세한 정보를 듣지 못해 추측할 수가 없다.
... 뭐, 헤르카도 다 생각이 있겠지.
명예를 맡긴 기사는 그저 묵묵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
***
똑똑─
따로 음성 발생 마도구가 없기에 그냥 두드렸다. 미리 창문을 통해 거실과 아이 방, 화장실이나 욕실을 확인해 본 바로는 엄마와 딸 둘이서 사는 것 같았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린 후에야, 문을 열어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세요?"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나를 슥 훑어보더니 그대로 집 안쪽을 향해 외쳤다.
"엄마~ 모르는 언니가 왔어!"
아이의 부름을 듣고 얼마 안 지나 앞치마를 걸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왼손에는 조리도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조미료 통을 쥐고 있었다.
"어머, 우리 집에는 무슨 일로...?"
"연기는 됐어. 연구실로 안내해줘."
"......"
"......"
아이의 표정에서는 [당황]이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사람은 진짜 모녀가 아니니까. 이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지내는 가족으로 연기하고 있었을 뿐.
─지명 수배범인 라키와 그녀의 연구실을 숨기기 위해서.
근거는 세 가지다.
하나─ 작위적인 연출.
아무리 요리 중이었다지만, 조리도구는 그렇다 쳐도 조미료 통까지 들고 나올 필요는 없다. 이는 '방금까지 요리하는 중이었습니다'하고 어필하기 위한 것. 실제로 집 안에 들어오고 나서는 무언가 요리하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둘─ 창문의 위치.
하이젠베르크 저택과 마찬가지로, 이 집의 창문은 겉으로 드러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중요한 장소들은 쏙 빼놓았다. 가령─ 침실과 부엌, 복도라든가. 아마 그곳은 라키의 생활공간이거나, 연구실로 향하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셋─.
남자 없이 사는 집에서는─
그 어떤 엄마도─
딸에게 문을 함부로 열게 하지 않는다.
방범장치가 걸려 있지 않다면 더더욱.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이는 말투를 바꾸고 내게 물었다.
"릴─, 샤를로트."
"... 알겠습니다. 주인님께 바로 안내해드리죠."
두 사람은 나를 복도의 창고 쪽으로 안내했다. 암전의 사무실도 그렇고, 라키의 연구실도 그렇고. 창고에 비밀통로 만드는 걸 꽤나 좋아하나 보다. 예상대로 창고 내부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안내에 따라 [연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뭔가─ 누가 봐도 '연구실이다'라는 것을 알 정도로 수많은 약품과 기구들. 다만, 연구실의 조건을 충족하기엔 아직 하나가 부족했다.
─[연구원]이 아직 앉지 않았다.
실험 테이블 왼편에는 반쯤 비워진 물잔과 펜, 그리고 가위와 집게, 동기화 마도구 같은 잡다한 도구들이 있었다. 텅 빈 의자를 보면 방금까지 앉아있었는지, 푹신한 재질의 방석이 아직 완전히 모양을 되찾지 않았다.
"라키. 괴짜인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나는 혼잣말과 함께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 주인님께서는 잠시 자리를 비운─"
"아니, 너 말이야. 너."
나는 여전히 앞치마를 하고 있는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잖아─ 라키."
"...... 무슨 말씀이실까요?"
"근거는 세 가지야."
난 라키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였다. 발뺌하는 걸 보면, 끝까지 숨기려 하기보다는 날 테스트하려는 거겠지. 어울려주는 수밖에.
"하나─. 가정집의 살림살이."
릴리가 [관찰]했을 때, 가정집은 확실히 엄마와 딸 둘이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너희 두 사람이 같이 사니까. 하지만 여기 연구실에는 밥 먹을 곳이나 잠잘 곳, 심지어 화장실까지 마땅하지 않아. 즉, 라키는 평소엔 가정집에서 지낸다는 의미고, 엄마 역할인 너가 라키라는 뜻이지. 라키는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라키가 다니는 동선─ 그러니까, 침실과 복도와 부엌에는 창문이 없는 거잖아?"
나는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라키는 아직 이 정도 근거에 납득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랑 리스가 같이 사는 건 맞습니다. 라키 님을 숨기기 위해 연기하는 것도 맞고요. 하지만─"
"네가 라키라는 건 추측에 불과하다고?"
"─... 네. 라키 님이 연구실에서만 생활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실제로 화장실과 욕실 쪽에는 창문도 있으니 라키 님은 사용을 못 하시고요."
"뭐─ 네 말대로 추측하자면, 침실 쪽에 하나 더 있을 것 같은데. 욕실이랑 화장실이 말이야."
"......"
라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더 몰아붙여 볼까?
"게다가─ 연구실에서만 생활한다는 것치고는, 당장 지금도 자리에 없잖아?"
"그래도 전 라키 님이 아닙니다!"
라키는 왼손을 가슴에 얹으며 호소했다.
"그리고 아직─ 두 가지 더 남았어."
나는 이번엔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둘─. 둘 다 왼손잡이야."
─그렇다. 지금 눈 앞의 이 여성은 왼손으로 자신을 짚고 있다. 아까 전에는 조리도구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라키의 실험 테이블을 보면, 펜이 왼쪽에 있다. 이는 명백히 라키가 왼손잡이라는 증거이다.
"왼손잡이는 흔하잖아요."
"왼손잡이는 흔하지.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뻗어 그대로─
"오른팔이 의수인 사람은 흔하지 않잖아?"
─라키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그, 그걸 어떻게 안 거죠...?!"
거의 끝났다. 표정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걸 보면 말이다.
"실험 테이블을 보면 펜뿐만 아니라, 물잔과 각종 기구들 전부 왼쪽으로 둔 상태야. 오른편에는 텅 비워져있는데 말이지. 즉, 라키는 왼손을 주로 쓰는 게 아니라 왼손 밖에 못 쓰는 상태라는 뜻."
"그럼, 제가 의수라는 건 어떻게 안 거죠?"
"아까 전에 오른손에 들었던 조미료 통. 쥔 게 아니라, 끼워 넣은 것. 맞지? [관찰]했을 때, 방향이 굉장히 어색했거든."
"제가 봐도 좀 이상했습니다."
─리스가 끼어들었다. 딸 역할인 그녀가 보기에도 라키의 파지는 어색했던 것이다.
"조미료 통을 굳이 쥔 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른손이 기능을 한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거겠지."
"......"
라키는 잠시 침묵했다. 이제 반박할 거리는 더 없을 텐데.
"─제가 졌어요, 샤를로트. 당신이 정말 탐정 릴리인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라키는 왼손으로 오른팔을 잡은 뒤, 그대로 의수를 빼내었다.
"연구자는 원인이든 과정이든 결과든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거든요, 후훗."
"...... 그래서 폭탄의 위력이 점점 세지는 거야?"
"어머, 제 [해방(Befreiung)]을 보셨군요?"
...... 그거, 이름도 있었나.
다들 그냥 [라키의 폭탄]이라고만 부르던데.
다른 것도 [날개(Flügel)]라고 지은 걸 보면 헤르카와 다르게 작명센스는 좋은 듯했다.
"[해방]의 결과를 눈으로 보지는 못해서요. 나가지는 못하고 루루와나 헤르카에게 듣는 거로는 잘 모르겠어서... 흐흐... 항상─ 으흐흐... 상상만 하면서... 크흡..."
─음?
"으히힛... 아."
라키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흐르던 침을 닦아내고 표정을 다시 정리했다.
"죄송해요. 제가... 제 작품이 작동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상상만 해도... 음음. 추태를 부렸군요."
"아─ 괜찮아."
─미친 인간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세 번째 근거는 뭐였나요?"
"아, 그거─"
셋─. 처음 라키를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데, 아무리 읽어도 네 표정은 안 읽히더라고. 그거, 변장 마도구지?"
라키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에 왼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그대로 벗어냈다.
가발까지 같이 벗겨지며 가짜 얼굴의 안쪽에는 분홍색 머리를 한 작은 눈의 여성이 드러났다. 페이시 만큼은 아니지만, 연구자에 어울리는 지적인 이미지였다.
"제대로 소개하죠. 저는 라키. 암전 소속의 마법공학 연구자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리스─."
"라키 님의 하녀─ 리스입니다. 평소에는 가짜 딸 역할을 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 음. 난 샤를로트야. 아까도 말하긴 했지만."
길고 긴 테스트 끝에─ 우리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이것까지 눈치채실 줄은 몰랐네요. 제가 직접 만든 거라 자신 있었는데 말이죠."
라키는 변장 마도구를 왼손으로 빙빙 돌리며 말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변장 마도구는 가짜 티가 잘 나기 때문에 연극 용도로만 사용된다. 아마 라키가 착용한 건 그녀 나름대로 연구해서 티가 안 나게 개량한 듯했다.
"후훗. 전 사실, 제 원래 얼굴을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변장한 거였는데."
"딱히 찾아보지는 않았어. 헤르카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역시~ 헤르카네요. 그렇다면 [날개]에 대해서도 안 말해줬나요?"
"─당연하지."
나는 격하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럼 설명이 길어지겠네요."
"괜찮아. 오래 걸릴 건 이미 알고 왔으니까."
나는 연구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리스, 차를 부탁해요."
라키는 입고 있던 앞치마를 리스에게 건네며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실험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를 굳이 두고, 나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샤를로트. 혹시 [정보의 바다]에 대해 알고 있나요?"
"써본 적은 없지만 뭔지는 알아."
릴리는 귀족인데다가 마나결핍증을 앓고 있어 쓸 일이 없었다. 게다가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잘못된 [추리]를 했던 경험 때문에, 마나가 넘쳐나는 샤를로트의 몸으로도 써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정보의 바다]는 평민들 입장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어요. 게다가 흐름만 잘 타면 잘못된 정보라도 순식간에 퍼져나가죠."
─확실히 라키의 말대로다. 과거에도 여러 번, 거짓 정보에 물타기 당한 사례가 몇 번 있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정보의 바다] 시스템 자체에서 한 사람이 올릴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제한하고, 실명제를 도입했다. 게다가 근거 없는 자료들은 [붉은 낙인]을 찍고, 근거가 검증된 명확한 자료나 공식적인 자료는 [푸른 인장]을 찍는 식으로 이용자들이 스스로 올바른 정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상황이다.
"우리는 그런 점을 이용해서, 부패 세력을 무너뜨릴 거예요."
"... [선동]을 하자는 거야?"
"네. 바로 [날개]를 써서 말이죠."
라키는 왼쪽 주머니에서 그대로 단말기형 마도구를 꺼내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단말기였다. 하지만 라키는 내게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곧바로 일어서서 연구실의 벽 쪽으로 갔다. 라키가 벽에 왼손을 짚고 마나를 불어넣자─
"이게 제 연구의 성과이자, 저의 걸작품─ [날개]입니다."
─거대한 공학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화면과 입력 패널. 그리고 용도를 모를 잡다한 장치들과 어디에 연결 되어 있는지 모르는 전선들. 그리고 이것들을 가동시키기 위한 엔진형 마도구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계 장치의 집대성이었다.
평범한 벽으로 보였던 건 의태 마법이었던 건가. 지금까지 암전의 자금이 어디로 빠져나갔나 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은닉 재산을 빼돌린 건 바로 어제의 이야기.
"─1억은 어디에 쓰인 거야?"
빼돌린 골드는 이미 라키에게 전달되었다. 하루 만에 1억이 쓰일 용도는, 공학 쪽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알 수 없다.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겠네요."
라키는 [날개]에서부터 뻗어나온 선 가닥 중 일부를 입으로 물었다. 그대로 왼손에 든 단말기에 능숙한 솜씨로 연결하고─
"으흐흫... 크흡...! 하아, 하아..."
─혼자서 흥분해버렸다.
"히히... 작품이 작동하는 순간은... 으흫─ 언제나... 짜릿해...!"
라키는 단말기를 쥔 채로 얼굴에 비비고 있었다. 선이 연결된 단말기에 그대로 마나를 불어넣자, 거대한 공학 장치에 부착된 엔진형 마도구가 돌아가기 시작되더니 이내 화면에 빛이 들어왔다. 곧 이어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열되다가, 그대로 [정보의 바다]에 연결되었다.
"오..."
라키만큼의 리액션은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감탄해버렸다.
비록 마도구의 힘을 빌렸다지만, 공학 장치로 이 정도 수준을 보여줄 줄은 몰랐으니까. 라키와 같은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공학이 좀 더 발전된다면 언젠가─
─루루와 같은 수인이나 마나결핍증을 앓던 릴리처럼, 마법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편리한 삶을 살 수 있겠지.
"여기, 민트차입니다."
어느새 차를 타온 리스는 테이블에 두 잔을 내려놓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라키에게 다가가 입에서 흐르는 침들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아아... 추태를 또 보였군요. 미안해요. 설명 이어서 할게요."
라키의 풀렸던 눈이 이제야 돌아왔다. 그녀는 왼손의 단말기를 내려놓고, [날개]쪽에서 이것저것 조작을 시도했다. 그러자 화면에는 여러가지 이름들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그 수는 대략─
"─50만이에요."
"... 그 정도면, 거리 하나 급의 인구잖아."
"맞아요. 이 유령 계정들을 준비하는 데에 거의 1억이 필요했는데, 이제서야 완성이 되었죠. 샤를로트 덕분이에요."
라키는 날 보며 싱긋 웃었다. 라키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기존의 [정보의 바다]는 하나의 단말기형 마도구로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키의 [날개]는 장치 하나만으로 50만의 유령 함대를 동시에 통솔할 수 있는 지휘관인 것이다.
"[날개]는─ 비활성화된 계정으로부터 수많은 가상 유저를 만들어내고 [정보의 바다]에 무수한 양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흩뿌려 퍼뜨릴 수 있어요. 여러 개의 마도구가 없어도요."
"그래서─ 이걸로 어떤 정보들을 퍼뜨릴 생각이야?"
라키는 내 질문을 듣고 멈칫했다. 그러다가 내 눈치를 보면서 이내 곧 입을 열었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거짓 정보를 뿌릴 생각이었어요. 귀족과 기사, 이단심판관들의 만행을 대충 그럴싸하게 퍼뜨려서 말이죠."
"... 그건 좀 마음에 안 드네."
"하지만, 당신이 우리를 돕는다면, 거짓이 아닌 [진실]로 맞서 싸울 수가 있어요."
라키는 리스가 타온 민트차가 담긴 찻잔을 곧바로 들이켰다. 한 번에 뜨거운 차를 비워내고, [날개]를 보며 다시 무언가를 빠르게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걸 봐주시겠어요?"
라키가 몸을 피해 화면이 보이도록 해주었다. 내 눈에 드러난 것은─
"이건... 사건 기록?"
─릴리도 본 적 있던, 이미 해결된 사건들의 공식 자료였다.
─아, 그렇구나.
"저희의 작전명은 [리라이트(Rewrite)]─. 거짓을 진실로 다시 쓸 거예요."
─이해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탐정 릴리가 필요했던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은 이것들을 보면 그저 진짜라고만 믿으니까요."
라키의 말이 맞다. 지금 화면의 자료들은 [푸른 인장]이 찍혀있는 공식적인 자료. 하지만, [마녀사냥]으로 진행된 사건 조사와 재판 기록은 정해진 결과에 맞게 조작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점과 모순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걸 밝혀내는 것이─
─탐정, 릴리의 역할이다.
탐정 릴리가 억울한 사람이 생긴 사건들을 다시 조사한다. 그리고 [진실]을 밝혀낸 뒤 [날개]를 이용해 민중에게 퍼뜨린다.
─그렇게, 내가 지었던 죄들도 다시 쓸 수 있겠지.
잘못된 [정보]로 인한 잘못된 [추리]로, 억울한 이들을 만들었던 지난날의 죄. 레드 라이트와 헤르카에게 했던 잘못을 포함해서─
"[리라이트(Rewrite)]라... 마음에 드네."
"그러니까─"
왼손가락으로 턱을 짚던 라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테스트. 한 번 더 보죠."
"...... 음?"
라키의 표정은 진지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한 것.
"[진실]이 깃털이라면─ 당신의 역할은 밀랍이에요. 하늘을 날려면, 밀랍이 진짜인지를 파악하는 테스트보다 당연히 [실전 테스트]가 더 중요하잖아요?"
─라키의 말이 맞다. 일전의 테스트는 그저 내가 탐정 릴리가 맞는지에 대한 테스트. 조작된 사건 기록만으로 진실을 찾는 일에 적합한지는 실제로 증명하지 않았다.
─밀랍이 제 역할을 못하면, 깃털은 흐트러질 뿐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진실]이 날아오르게 할 힘이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라키는 화면에 세 개의 사건 자료를 띄워주었다.
하나─ 마법사가 식당에서 부인을 살해한 사건.
둘─ 하급 기사가 노숙자를 벤 사건.
셋─ 수인 하녀에게 귀족이 교살당한 사건.
"실제로 있었던 사건 기록이에요. 한 번에 모든 자료를 보여드리지는 않고, 대신 구체적인 자료를 요청하시면 그 부분만 드릴게요. 그걸 보고 진실을 밝혀내면 돼요."
"세 건을 동시에?"
"네.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증거]도 같이 제시해야 해요. 앞으로 우리는 수십─ 수백 개의 사건을 다시 쓸 텐데, 이 정도는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어요?"
─다면기(多面棋). 여러 개의 판을 한 번에 플레이하는 행위.
지금 내가 할 일은, [다면기 추리]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만약 실패한다면, 거짓 정보를 뿌리겠다는 라키의 의견에 더 이상 반박할 수 없다.
─그럴 수는 없다.
[거짓 정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분명 나중에 세상을 아름답게 비출 수 있을 거야."]
부모님이 내 눈을 보고 해주셨던 말. 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다. 거짓으로 감추고 남은 아름다운 부분만 보는 건 무책임한 회피일 뿐이다.
이제, 내 벽색의 눈은─
"그래. 시작하자."
─진실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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