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색의 매듭 8화

by 도토리

"정답은 저도 몰라요. 평민의 입장인 저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면, 그게 정답이에요."
─조건은 암전의 면접 때와 마찬가지.

"그럼 어떤 것부터 보여드리면 될까요?"
"세 가지 사건의 개요."
내 말을 듣고 라키가 뭔가를 더 조작하자, 화면에는 세 가지 사건의 개요가 떠올랐다.

첫 번째 사건.
[비도크 스트리트]의 레스토랑에서 이름 있는 마법사가 식사 중에 자신의 부인에게 마법을 사용해 살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체포되고, 그 이후에 사형.

두 번째 사건.
[셰로키 스트리트]의 노숙자가 절단된 시체로 발견. 사건 당시 근처에 있던 소드 엑스퍼트 하급의 경지에 이른 하급 기사가 체포되었고, 그 이후에 명예 박탈 및 신분 강등.

세 번째 사건.
[셰로키 스트리트]의 남작가에서, 가주가 자신의 침실에서 교살 당함. 조사 결과, 고양이형 수인 하녀가 꼬리를 흉기로 쓴 것으로 판명하여 체포. 그 이후에 사형.


─세 사건 모두 공통적으로 부패 세력들에게 거슬리는 이들이 결국 피해를 보았다.

"개요에서 추가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을까요?"
"[레스토랑에 있던 주변인들의 증언], [하급 기사가 용의자가 된 이유], [흉기를 꼬리로 판명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라키가 다시 한번 패널을 조작하자, 내가 요청한 자료가 나왔다.

[레스토랑에 있던 주변인들의 증언]─.
'식사 중 별안간 남편이 부인에게 마법을 썼다.'
'마법에 당한 부인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쓰러진 피해자는 마법사를 붙잡고 있었다.'
─음성 자료도 있으니 발언 자체는 사실일 것이다.

[하급 기사가 용의자가 된 이유]─.
노숙자의 절단된 부위에서 마력의 흔적이 검출되었다. 절단된 방향과 흔적으로 보아 범인은 오른손잡이이고, 절단면은 마나로 인해 손상된 상태.
─이것만 보면, 오른손잡이이자 오러를 쓸 수 있는 소드 엑스퍼트의 기사가 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흉기를 꼬리로 판명한 근거]─.
남작가에서 모든 고용인들은 흉기를 지닐 수 없도록 신체검사를 받는다. 피해자인 가주의 몸에는 페톨리움 장신구가 걸쳐있기에, 마법에 당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루루와처럼 꼬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고양이형 수인이 의심받게 된 것이다.


"이거, 사진 자료도 확인할 수 있어?"
"네~ 현장 사진부터 피해자 사진까지 다 있어요."
"그럼─ 첫 번째 사건은 피해자와 마법사가 식사했던 [테이블] 위의 사진을 보여줘."
─마법사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 단서는 반드시 테이블 위에 있을 것이다.

화면에 나타난 테이블 위 사진에는 맑은 스프와 야채조림, 손으로 집어먹는 초밥이 요리로 올라와 있었으며 그 외에는 물병과 젓가락, 포크가 있었다.

"원하는 게 찍혀 있나요?"
"... 아니. ... 두 번째 사건은 현장에서 바로 찍은 [시체]의 사진을 보여줘.
다면기에선 같은 판 위에 두 수를 옮길 수는 없다. 라키가 따로 제약을 말한 건 아니지만, 릴리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곧바로 두 번째 사건의 사진을 요구한 것.

"으으..."
옆에서 지켜보던 리스가 눈을 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화면에는 끔찍하게 죽은 시체의 사진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두려움과 고통이 섞인 표정으로 반으로 잘려 누운 시체. 창백한 피해자의 얼굴은 얼룩 하나 없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심어줄만했다. 절단면의 방향은 피해자 기준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혈흔의 방향을 보면 피해자의 왼쪽 어깨 쪽을 내리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범인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검을 휘두른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

"세 번째 사건도, 현장에서 바로 찍은 시체 사진으로 보여줘."
이번에도 리스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의 사진은 시체치고는 꽤 얌전한 비주얼이었다.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피해자. 시체의 목에 한 줄로 동그랗게 나타나있는 교살흔 외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 외의 특기할 만한 점은, 땀으로 듬뿍 젖은 이불과 커튼 없는 창문 정도일까.

여기까지 단서를 모은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는 한 적 없던 고민에─ 나도 모르게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명탐정 릴리라도 이건 좀 어려웠나보네요."
라키는 어느새 실험 테이블 쪽에 있던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아있었다.
"사실 하나 정도만 제대로 해결해도 인정해드릴까 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어려워하실 줄은 몰랐네요."
"...... 하나는 해결 했는데?"
"네? 그럼... 뭘 고민하고 계시는 거죠...?"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하나 먼저 끝내고 마저 다른 걸 조사할지, 아니면 극적으로 세 사건을 전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줄지─"
"...... 그냥 하나 먼저 말해주세요."
라키는 처음으로 [황당]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건을 해결한 거죠? 두 번째? 세 번째?"
"둘 다 아냐."
"첫 번째 사건이요? 분명 테이블 위 사진에는 원하는 게 안 찍혔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 말대로야. 찍히지 않았기에─"
나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세 개 펼쳐보였다.
"─단서가 된 거야. 찍히지 않은 세 가지가."

"찍히지 않은 것...?"
라키는 화면에 다시 [테이블 위의 사진]을 내보냈다.

요리로는 맑은 스프와 야채조림, 손으로 집어먹는 초밥이 있고, 그 외에는 물병과 젓가락, 포크가 찍혀있다.

처음 테이블 위의 모습을 볼 때부터 확실히 어색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세 개나 없었으니까.

"하나─ 식기 중에 있어야 할 게 없어."
"아. 그렇네요! 스프가 있는데 숟가락이 없군요!"
라키는 사진을 보다가 이내 깨닫고는 왼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박수 대신 쳤다.
이전의 전채요리를 먹고 치웠다면 모를까, 남아있는 스프가 있음에도 숟가락을 치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레스토랑도─

─손님에게 젓가락으로 스프를 찍어먹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둘─ 물병은 있는데, 따라 마실 물컵이 없어."

─두 사람 모두 물병에 입 대고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셋─."
손으로 집어먹는 음식이 있을 때는, 반드시 이것이 있어야 한다.
"─물수건. 처음에 사용한 뒤 치웠더라도, 초밥을 먹는 동안에는 중간중간 닦아줘야 하지 않겠어? 본인이 찝찝해서라도 직원에게 달라고 했을 거야."

"그렇네요... 확실히, 당신 말대로 있어야 할 세 가지가─ 숟가락과 물컵, 물수건이 없군요."
"게다가 그 세 가지 물건은 공통점이 있어. 뭔지 알아?"
"... 개인이 사용하는 물건... 인가요?"
"그래, 맞아. 즉─"
─독을 묻힌다면 특정 대상을 사살할 수 있다.
"─피해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독을 묻혀 세팅해둔 흉기였던 거지. 따라서 진짜 범인은 서빙을 한 직원이야."
"독살이라고요? 그럼 마법사는 왜 피해자에게 마법을 쓴 거죠?"
"부인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 쓴 거야. 그는 나름대로 이름있는 마법사였으니까, 그 정도 실력은 되겠지."
"그럼 왜 해독마법을 받고도 피를 토하고 죽은 건가요? 증언이 틀리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마법에 당한 부인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증언은 맞아. 다만, [해독마법]이 아닌 거지. 마법사가 쓴 건 [속성마법]일 거야."
그래. 내 [추리]가 맞다면, 피해자를 살해할 때 쓰인 독은─


"─범인이 쓴 독은 [속성독]이니까."

속성독.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속성 포션과 독을 섞어 제작한 특수한 독을 지칭한다.
원소계의 속성에는 상극이 존재한다. 물과 불이 함께할 수 없고, 바위와 번개는 같이할 수 없으며, 빛과 어둠은 상생하지 못한다. 따라서 누군가 속성독에 당하면, 그 속성과 상극인 속성의 마나를 써서 중화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속성독에 당한 걸 알게 된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즉시 응급처치하기 위해 피해자가 먹은 속성을 몰아낼 수 있는 상극의 속성마법을 사용했어. 하지만 범인은 이것까지 다 계산한 거지."
"세 가지의 독..."
"맞아. 숟가락과 물컵, 물수건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속성독들이 발라져 있던 거지. 그러니 마법사의 응급처치는 소용없고, 오히려 다른 두 가지 속성독 중에 하나가 [격화]되었을 거야."
"그래서 피를 토한 거군요."
"맞아. 그래서 그런 증언이 나왔던 거야."

['마법에 당한 부인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앞뒤 상황을 다 잘라서 기록한,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악의적인 증언이 말이지."
─이런 것도 결국은 [거짓]이지만.


['식사 중 별안간 남편이 부인에게 마법을 썼다.']

"게다가 첫 번째 증언에서는 아예 [별안간]이라는 표현으로, 마법사에게 의심이 가도록 말했어. 서빙하던 직원이라면, 당연히 목격 증언을 할 수 있었을 테니 그렇게 조작된 증언을 직접 한 거겠지. 애초에 진짜 범인도, 높은 귀족들의 끄나풀일 수도 있어. 이름 있는 마법사는 높은 귀족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였을테니까. "

"대단하네요. 거기까지 추론하다니."
라키는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없네요?"
테스트는 확실히 하려는 라키였다.
─물론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다.

"피해자의 시신만 제대로 검시했어도 증거는 충분했겠지. 하지만 이미 조작되고 처분되었을 거야. 독이 발라졌을 숟가락과 물컵, 물수건도 사진에 없던 것처럼 진작에 회수한 거겠지. 피해자 쪽만 없어지면 의심되니까 마법사의 것까지 같이."
"그렇다면 증거는 없는 건가요?"
"아니. 세척되었을 숟가락이나 물컵을 제외하면, 가능성은 물수건에서 찾을 수 있어."
"이미 버려졌을 것 같은데요?"
"그래. 물론 물수건 자체는 버려졌겠지. 하지만 피해자는 확실히 물수건을 사용했어. 그리고─"

['쓰러진 피해자는 마법사를 붙잡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편을 붙잡았지. 그 사건 이후로 체포된 마법사는 옷을 세탁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나도 부모님 때 그랬으니까.
"마법사가 입었던 옷에서, 그녀의 지문 형태로 물수건의 성분과 속성독이 검출된다면?"
─틀림없다.

"물수건을 서빙한 직원이 범인인 거지."
─그것이 바로 증거다.

"인정할게요. 그 정도면 모두가 납득하겠어요."
라키는 왼손만으로 항복의 표시를 보냈다.
"그거랑 별개로 물어볼게요. 처음부터 테이블 위 사진을 요청했잖아요. 독살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요?"
"뭐, 피를 토한 거라면 내상이나 마나 역류, 아니면 독일 테니까. 게다가 식사 중이었다면 독일 확률이 더 높았지. 거의 짐작에서 시작된 추리였어."
"진짜, 괜히 명탐정이 아니군요. 이 정도 단서에 사건을 해결해버릴 정도면, [리라이트] 작전을 믿고 맡겨도 되겠어요."
─라키의 반응을 보아, 테스트 자체는 이미 합격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궁금하네요. 당신의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연구자로서 참을 수가 없는 걸요. 나머지 두 사건은 어느 정도 진행됐죠?"
"뭐, 나머지 두 사건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을 뿐이지, 추리 자체는 끝났어."
"계속해서 놀랍네요. 저 단서들만으로 진작에 알고 있던 거예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 모두, [그 외 용의자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스토리텔링]이 완성 된다. 진실된 정보만 있다면, 릴리의 추리는 틀리지 않는다.

"설마─ 몰랐겠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이라는 깃털을 모아 릴리라는 밀랍으로 굳혀 만든 인공 날개─.

─이번엔 분명 태양까지 닿을 것이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