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색의 매듭 9화

by 도토리

짝─!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바로 근처. 아니, 정확히는 귀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 고막에 가까운 위치에 손찌검을 맞은 덕에 울려 퍼지는 이명까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상급 기사에게 있어 이 정도의 충격은 큰 피해가 없다. 애초에 이런 따귀 정도는 눈을 감고도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독이나 다름없는 이 공격을─ 많은 이들이 있는 곳에서 굳이 맞아준 이유는─

"어떻게든 처리해라. 아무리 잡초라도 많이 자라면 귀찮아지니."
─칼리자르 베켄하임.

"뿌리부터 없애버려라. 그것이 너희가 할 일 아니더냐."
─베켄하임 공작가의 가주이자, 다섯 개의 거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최상위 귀족.

"이건 그저 경고일 뿐이다. 기사 유르하르드여─."
─기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충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부정적인 내색 하나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이는 유르하르드. 그런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는 주변 이들. 다른 거리의 상급 기사를 포함하여 교회의 추기경과 다른 공작가 및 후작가의 주요 인물들이 있었다.


[절후회(絶後會)]─.
세간에서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행위의 주도회이자, 높은 계급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회의.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장.'
─칼리자르에게 공개적으로 뺨을 맞고, 아무런 항의조차 못한 유르하르드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손을 더럽히는 건 본인을 비롯한 기사와 이단심판관들인데,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저 높으신 분들이었으니까─. 유르하르드 입장에서는 마음 속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겉으로 내색을 해서는 안 될 뿐.
유르하르드의 눈에는 지금도 주변에 몇몇 중급 기사들이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이 [절후회]에 중급 기사들은 오지 않는다. 이번 회의에서 그들이 온 이유는, 유르하르드에게 경고를 하면서 동시에 중급 기사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기 위함.
'손찌검을 맞는 상급 기사를 보여주고, 중급 기사들로 하여금 기회를 준다... 라고 볼 수 있겠군.'

─그리고 언제라도 '숙청당할 수 있다'라는 의미.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절후회]의 진행자를 맡은 젊은 청년이 말했다. 일전에 사무 보조 일을 했어서 그런지,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정리하고 원활한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다. [절후회]의 진행자는 한 번의 회의 때마다 일반 평민들의 일 년치 수입을 벌어들이니까. 이런 자리에 그가 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기사들이 했어야 할 일을 대신 했고, 귀족들에게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저 자리를 얻은 거니까.

'따르던 탐정을 직접 배신하면서까지.'
─르코는 기사들이 놓친 릴리를 찾아내서 숨통을 끊었으니까.

르코는 귀족들의 [마녀사냥]을 위해, 자신이 따르는 명탐정을 이용하자는 작전을 건의했다. 높은 귀족들의 입맛대로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조수인 르코 자신이 먼저 릴리에게 거짓 정보를 전달했다.
'─나보다도 더 많은 날조를 했지.'
지금의 르코에 비해 현재 유르하르드의 처지는 곤란한 상태였다.
자신이 담당했던 릴리를 놓친 건과 더불어, 노예 경매장 폭발 테러로 인해 로베르트 공작이 원했던 여자 하급 기사를 노예로 넘기지 못했다. 그 일로 귀족들의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진 상태에서─ 이번에는 하이젠베르크 후작가의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자신이 기여하면서까지 납치했던 클로에 레안이 하이젠베르크 저택을 탈출하여 레안 백작에게 다다른 것. 그로 인해 레안 백작가에서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왔고, 그로 인해 [절후회]에 해당하던 몇몇 귀족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단순 납치가 아니라, 실제로는 신체 손상을 비롯한 고문이 이루어진 경우였으니.

'플로라 그레이의 납치를 제안 받았을 때 거절했어야 했는데.'
─애초에 드나르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했을 때, 유르하르드 입장에서는 명령에 따라 그레이 백작 가문의 사람들을 처리했어야 하는 시기였던지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플로라 그레이가 드나르의 고문으로 죽어버리고 나서, 드나르는 오히려 유르하르드에게 추가 납치를 지시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죽어버리다니...'
지금 유르하르드 입장에서는, 드나르를 속으로만 원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그저 [실책]으로 넘길 만한 것들이었다. 칼리자르가 본격적으로 격노하고, 유르하르드가 오늘 공개적으로 질타를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정보의 바다]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공론화하고 있기 때문.

과거─ [절후회]로부터 이뤄진 수많은 [마녀사냥]의 사건들을 누군가 재조사하여 진상을 밝혀내고 있다. 미제사건부터 시작해서 잘못된 판결이 내려진 사건까지─. 진실이 조작된 사건들을 누군가 해결해버리고 있다.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진실을 풀이하며 [정보의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평민들은 그것을 진짜라고 믿으며 지금 [마녀사냥]과 관련된 기득권층 세력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실제로, 틀림이 없다.

귀족들은 빨리 처리하라고 유르하르드에게 닦달을 하지만, 기사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명분]이 확실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핍박할 수 없다.


["하하, 유르하르드 씨. 제가 볼 때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분탕치는 거거든요?"]
─일전에 르코가 거든 한 마디였다. 명탐정이었던 이의 조수였어서 그런지, 사태를 제대로 읽고 있었다.

["정보를 퍼뜨리는 계정들 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들만 보면, 현존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당연히 유령 계정인 거 아니겠어요?"]
─르코의 말이 맞다면, [정보의 바다]를 통제할 수 없는 기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해한 상대이다.

["그렇다면─ 르코 씨.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마녀사냥] 외에, 가끔씩 잡다한 사건들을 릴리에게 맡긴 적이 있던 유르하르드였다. 릴리가 세상에 없는 지금, 누구라도 좋으니 [탐정]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유르하르드는 르코에게 자문을 구했다.

["탐정을 낚을 미끼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건]이죠. [정보의 바다]에서 재조사된 사건들은 대부분이 유르하르드 씨가 맡은 거리에서 있던 일 아닌가요? 직접 거리에서 '이것저것' 하다보면─ 분명 입질이 오지 않겠어요?"]

'─결국 손을 더럽히는 건 또 나의 몫인가.'

뭔가─ 릴리를 [마녀사냥]하고 나서부터, 유르하르드의 모든 것이 꼬인 듯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하급 기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정보의 바다]에 처음 퍼졌던 [세 가지 사건]도 유르하르드가 관여했던 것들이었다.

'유령... 은 아니겠지.'
유르하르드는 미세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가슴에 총을 맞아 죽은 릴리의 시신을 수습한 건 유르하르드 본인이었으니까.

[절후회]가 끝나고, 유르하르드는 시장에서 [정보의 바다]를 이용할 수 있는 단말기형 마도구를 구입했다. 지금까지는 부하 격인 하급 기사들에게 대신 맡겼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유르하르드 본인이 직접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지금의 [정보의 바다] 상황을 봐야겠군.'

지금까지는 정해진 해답에 맞게 풀이를 고쳐 쓰는 게 유르하르드의 역할이었기에─, 지금의 조사는 그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최초의 조사]인 것이다.
유르하르드는 단말기형 마도구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굳이 검색하지 않았지만, 이미 [재조사]된 사건들에 관한 정보들이 [푸른 인장]을 달고 가장 먼저 노출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유르하르드가 찾는 정보는─ [최초의 정보].

[하급 기사가 노숙자를 벤 사건]─.
유르하르드가 조작에 가담했던 사건이었다.

말없이─ 유르하르드는 거리 한복판에 서서 정보글을 읽기 시작했다.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
상대를 이해시키는 스토리텔링─
가짓수를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

직접 인용이 아닌 정리글이지만, 이건 마치─

"......... 릴리?"

─탐정과 다를 게 없었다.

***

"두 번째 사건의 용의자 정보예요."
라키가 [용의자 정보]를 준비하기까지는 사흘의 시간이 걸렸다. 화면에 출력되는 정보들도, 이전에 보여줬던 것들과는 달리 [공식 자료]는 아니었다.
─[정보의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용의자 정보] 같은 개인 정보는, 실제로는 사건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탐문하고 피해자의 인간 관계를 조사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이다. [리라이트] 작전을 위해서는 지금의 [세 가지 사건] 이외에도, 앞으로 해당 정보들이 계속해서 필요했다.

─그리고, 암전이 그것을 해결해주었다.
피해자와 용의자들에 대한 자세한 신상을 비롯해서, [정보의 바다]에서 찾기 힘든 다양한 자료들을 준비해주었다.


술집에서 소문을 모을 수 있는 아니카─, 몰래 문서실에 잠입해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 루루와─, 교수 신분으로 자료를 합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페이시 덕분이다.
그렇게 [리라이트]를 위해 필요한 정보의 날자료들은, 최종적으로 헤르카가 가공 및 정리하여 라키에게 전송해주고 있다.

"어때요? 진짜 범인을 특정할 수 있겠어요?"
─라키는 음성 녹음 마도구를 준비했다. 나의 [스토리텔링]을 문서 자료로 바꾸기 위함이다.
테스트는 이미 합격한 상태. 지금부터의 [리라이트]는─
"물론─ 찾아냈어."
─실전이다.

[하급 기사가 노숙자를 벤 사건]─.
노숙자의 절단된 부위에서 마력의 흔적이 검출되었기에, 범인은 오러를 쓸 수 있는 소드 엑스퍼트 이상이다.
절단된 방향과 흔적을 보면 범인은 오른손잡이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요소를 공통적으로 가진, 사건 당시 근처에 있었던 하급 기사 '네리힐'이 범인으로 지목된 것.

하급 기사 네리힐. 여성이자 젊은 나이에 소드 엑스퍼트 하급에 도달하여 장래가 촉망받던 기사. 아름다운 외모와 곧은 품성으로 샤를로트만큼 인기가 많던 그녀는, 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며 결국 노예로 전락했다.

"그녀가 범인이 아닌 이유는 두 가지야."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하나─ 범인은 오러를 쓰지 않았어."
─마력의 흔적이 검출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오러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흔적이 왜 남게 된 거죠?"
"통상의 검격으로 베고 나서, 그 이후에 환부에 마나를 방출하기만 하면 돼. 그 근거로─"
나는 [날개]를 조작해서 피해자의 절단면이 확대된 사진을 열람했다. (몇 번 연습했더니, 이제는 나도 [정보의 바다]를 잘 다룰 수 있다.)
"─상처 조직이 깔끔하게 잘리지 않았어. 오러에 베였다면, 이렇게 거칠게 손상되지는 않았겠지."
"소드 엑스퍼트 하급이라면, 오러가 덜 날카로울 수도 있지 않아요? 그럼 절단면도 투박할 수도 있고─."
라키가 반박을 제기하자, 나는 실험 테이블 위에 간식으로 올려둔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마나를 정갈하게 모았다.

서걱.

─가볍게 사용한 [도화]는 그대로 초콜릿을 베어냈다.
상단 부분은 잘려 바닥에 떨어졌고, 손에 쥔 초콜릿의 단면을 그대로 라키에게 보여주었다.
─마치 예리한 실톱으로 잘라낸 듯한 단면이었다.

"확실히... 깔끔하군요."

"검을 쓰지 않는 마법사가 손날에 마나를 실어도 이 정도야. 예리한 검에 오러를 싣는다면, 검날을 따라 더 날카로워지지. 사람을 죽이는데, 흉기를 일부러 덜 날카롭게 할 필요는 없잖아?"
─물론, 샤를로트의 마나는 소드 마스터 급이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니, 나름대로 마나를 '소드 엑스퍼트 하급' 수준으로 사용해서 증명했다.
"정말 깔끔하네요?"
리스는 바닥에 떨어진 초콜릿의 절단면을 마도구로 촬영하며 말했다. 나중에 [리라이트]된 자료를 [정보의 바다]에 뿌릴 때 추가 예시 자료로 쓸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오러를 제대로 써서 베어내면, 검 자체에는 혈흔이 묻지 않게 돼. 증거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데, 만약 네리힐이 범인이었다면 굳이 오러를 약하게 조절해서 쓰지는 않았을 거야."
"그럼 진범은 오러를 쓰지 못하는 오른손잡이일 텐데, 그런 사람은 용의자 중에서도 수두룩한 걸요?"
"아니? 진범이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안 이상, 확실한 증거를 말할 수 있어."
─그렇다.

오러를 쓰지 않은 검에는─
"─혈흔이 묻었을 거야."
─피해자의 유전자 정보와 더불어서, 잔뜩 남아 있겠지.

"맞네요. 혈흔은 씻어내더라도, 유전자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죠. 오러 없이 검 한 자루만으로 사람을 두 동강 낼 수 있는 건 기사들뿐이니, 사건 당시 근처에 있던 모든 기사의 검을 조사하면 진범을 특정할 수 있겠네요!"
라키도 그녀 나름대로의 추리를 했다. 정확히는 기사뿐만 아니라 병사나 귀족들의 사병도 용의자가 될 수 있지만, 사건 당시 근처엔 기사와 일반인들뿐이었으니 그녀의 추리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조사할 필요는 없어."
─아직 [스토리텔링]은 끝나지 않았다.
"범인은 이미 특정 됐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둘─ 범인은 오른손잡이가 아니야."
─노숙자를 벤 진범은, 왼손잡이 기사이다.

"혈흔의 방향을 보나, 실제 시체의 상태를 보나─ 피해자에게 가해진 검격은 동작이 큰 [내려베기]야. 앞에서 볼 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리며 베어내는 검격. 사람을 두 동강 낼 정도라면, 양손으로 잡았겠지."
"양손으로 잡았다면, 주로 쓰는 손의 방향에서 검격이 시작되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러니 오른손잡이 아닌가요?"
"확실히 그 말대로야. 확실히─. 앞에서 공격한 거라면 말이지."
"... 아!"
─라키도 눈치를 챈 듯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하다. 기사가 바로 앞에서 양손으로 검을 들어올리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당연히 뒤돌아 도망치게 되지. 실제로 노숙자에게 가해진 검격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인 거야."


그렇게 등 뒤에 참격을 받은 노숙자는 그대로 절명. 이후에 시체를 뒤집으면, 오른손잡이에게 앞에서 공격받은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시체가 이후에 뒤집어졌다는 근거도 있어. 현장의 시체 사진에서 피해자의 얼굴은 깨끗했거든."

[두려움과 고통이 섞인 표정으로 반으로 잘려 누운 시체. 창백한 피해자의 얼굴은 얼룩 하나 없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심어줄만했다.]
─앞에서 베었다면 얼굴에는 약간의 튄 피가 있어야 하는데, 얼룩 하나 없이 깔끔했다.

"─범인이 닦았기 때문이야. 뒤에서 공격당한 피해자는 그대로 넘어지면서 얼굴이 바닥을 향했을 테니까. 흘러나온 피가 얼굴에 닿았겠지."
"뒤에서 공격했던 걸 숨기기 위해... 닦은 거군요..."
"그렇지. 튄 거랑 듬뿍 닿은 건 확연히 다르니까. 게다가 앞에서 베인 건지 뒤에서 베인 건지 알아볼 수 없도록 절단면에 마나까지 방출했지."
"아...!"
─오러를 썼다는 가짜 증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서 베었는지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도 있던 것이다.


"범인은 네리힐을 [마녀사냥]하기 위해 현장을 조작했어. 네리힐은 젊고 예쁜 기사니까, 그녀를 원하는 귀족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 사건 이후에, 공교롭게도 중급 기사로 승급한 사람이 있네?"
라키는 곧바로 [날개]를 조작하여 내가 말한 용의자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승급]은 의심의 조건일 뿐, 필수 조건이 아니다.
"승급과 관계없이─ 왼손잡이이자, 발현이나 방출 같은 기초 마법을 쓸 수 있는 기사. 게다가─ 오러를 쓰지 못하는 자."
라키는 이내 조건에 만족하는 사람을 찾아냈다.
"─기사, 게르단."

─그 사람이 진범이다.

***

"기사, 게르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사람들도 별로 다니지 않는 거리에서, 유르하르드는 [정보의 바다]를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본인이 할 일에─ 중급 기사 게르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단 적당한 술집부터 찾아야겠군.'
평소 같았으면 다른 기사들이 추천한 곳이나 단골집에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마침 [정보의 바다]도 사용할 줄 알게 되었으니 이를 활용할 겸, 유르하르드는 [셰로키 스트리트]의 근처 술집에 대해 검색하였다.
"술집... 인가?"
따로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고 술집으로 표기되는 정보. 거기다가 종업원은 단 한 명뿐. 별로 당기는 곳은 아니지만, 유르하르드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감 시간은 새벽 1시. 간판에 적힌 정보를 확인한 유르하르드는 그대로 건물의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님은 다섯 테이블 정도 있었다. 아마 마감시간까지 그대로 마실 모양이었다.
"일행 한 사람이 더 올 겁니다. 아무거나 좋으니 독한 술과 안주를 준비해주시죠."
유르하르드는 바테이블 쪽에 앉아 금발의 분홍색 눈을 가진, 키가 큰 여성 종업원에게 말했다. 종업원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곧 잔과 식기를 두 세트 준비해주었다.
'이미 평민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졌나 보군.'
종업원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유르하르드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상급 기사인 유르하르드에게 그런 분위기를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듣지 않으려 해도, 알아서 그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유르하르드가 [마녀사냥]의 주범이자 부패 귀족들의 끄나풀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이만 가지."
"어이, 아니카. 계산 좀 해줘!"
"흠흠...! 우리도 슬슬 가세."

유르하르드의 눈치를 보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들이 본 유르하르드의 뒷모습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으니까.
유르하르드는 일부러 살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술집 전체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는 속마음을 숨기고 가짜 감정을 내보이는 데에 소질이 있었으니까.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을 표현했고, 부패 귀족들이 뭐라 해도 긍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의 진짜 속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불쾌하군.'
─이번에는 실제로 불쾌한 유르하르드였다.

"유르하르드 님! 간만입니다."
유르하르드를 제외한 손님들이 다 빠져나갈 무렵,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코트를 입은 금발의 젊은 남성이 유르하르드에게 가볍게 경례를 했다.

셰로키 스트리트의 중급 기사 게르단─.
유르하르드의 부름을 받고 술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 아무리 상급 기사라도 밤 늦게 부르시길래 난처했는데─ 술 사주시는 거 아니었으면 아마 안 왔을 걸요?"
아무리 [절후회]에서 유르하르드의 입장이 낮아졌더라도, 게르단은 중급 기사이다. 상급 기사인 유르하르드에게 이런 무례한 발언을 한다는 건 선을 넘는 일. 게다가─
─그의 경례조차 공경과 예의는 없었다.

"부름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르단."
그럼에도 유르하르드는 불쾌한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뭐, 유르하르드 님. 요즘 힘들잖아요? 릴리 건이나, 샤를로트 건이나, 레안 건이나─. 게다가 [정보의 바다]에서는 '유르하르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고 있고요."
게르단은 유르하르드가 앉은 바테이블 바로 옆으로 앉아 조잘거렸다.


"게르단. 당신도 네리힐 건의 진범으로 언급되었을 텐데요.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뭐, 그렇게 진범이 된 기사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죠. 결국은 우리 같은 중급 기사들보다 상급 기사들이 더 유명해져버렸으니까요. 하하!"
게르단의 무례에도 유르하르드는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슈냅스랑 과일 안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두 사람 앞쪽으로 술과 안주를 세팅했다.

*슈냅스: 40도 이상의 도수를 지닌 독주의 한 종류


"뭐야~ 이런 곳에 보석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제서야 종업원을 본 게르단이 말했다. 확실히 술집의 종업원은 유르하르드가 보아도 미인의 범주에 속하는 외모였다.
"일 끝나고 나랑 한 잔 어때? 아니─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지금 바로 즐기자고."
"... 죄송해요. 제가 술을 잘 못해서."
종업원은 미소 지으며 거리를 두었다.
"이봐. 난 무려 중급 기사라고? 어울려 주는 거에 감사해도 모자랄 텐데?"
"게르단. 그쯤 하죠."
─유르하르드가 나섰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부른 겁니다."
유르하르드는 두 잔에 술을 따른 뒤 한 잔을 게르단에게 건넸다.
"...... 뭡니까."
게르단은 불평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술잔을 들이켰다.
"그 전에─"
유르하르드는 종업원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과일을 자르고 싶은데, 가위 하나만 주실 수 있겠습니까?"

"... 과도도 있는데 그걸로 드릴까요?"
"아뇨. 가위가 더 편합니다. 그리고... ─"
유르하르드는 종업원으로부터 가위를 받았다. 마침 눈에 보이는 곳 가까이 있었기에 바로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 괜찮아요."

"그래서─ 뭔 얘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게르단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유르하르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보의 바다]에서 분탕을 일으키는... 과거의 사건들을 재조사하는 [탐정]을 잡아낼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유르하르드는 말과 함께 잔을 비운 뒤,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잔에 술을 따랐다.
["탐정을 낚을 미끼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건이죠."]
─르코의 조언을 떠올리며, 유르하르드는 말을 이었다.
"이것만 성공하면─ 저는 조용히 기사를 은퇴하고, 당신에게도 승급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죠."
유르하르드는 게르단에게 잔을 권했다.
"...... 은퇴는 무슨 이야깁니까?"
이번에 게르단은 잔을 비우지 않고 입만 가져다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슈냅스는 독한 증류주니까.
"계속 그쪽에 남았다가는 언젠가 목숨을 잃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냥 깔끔하게 공적 하나 쌓고 뒤탈 없이 물러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유르하르드는 이번에도 잔을 다 비웠다. 그리고─
"─도와준다는 말은 끝까지 안하시는 군요, 게르단."

─게르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보통 이런 말을 제가 꺼내는 건,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공적을 쌓을 수도 있는데, 어째서 자세히 물어보지 않은 겁니까? 네리힐 사건 때에는 중급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한 내용까지 다 물어봤으면서─."
"......"
유르하르드는 대답 없는 게르단을 계속 쏘아붙이다가,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누군가의 버릇을 흉내내듯이─.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어느 제안을 하든─, 어떤 계획을 세우든─, 당신에게는 무의미하기 때문 아닙니까?
유르하르드는 들어올린 손가락을 그대로 뻗어 게르단의 코트를 지목했다. 정확히는 코트가 아닌 더 안쪽의─

"제가 술에 취하고 나면, 그걸로 절 찌를 겁니까?"
─숨겨둔 검을.

"당신이 저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까지 검을 들고 왔겠죠."
"아니, 기, 기사가 검을 들고 다니는 게 문제인가요?"
게르단은 본인도 모르게 쫄아버렸다.
"그렇다면 왜 숨겨둔 겁니까? 당당하게 꺼냈다면 의심을 거뒀을 겁니다. 당신은 부정으로 중급 기사가 된─ 오러도 못 쓰는─ 실력으로는 절 이기지 못하는─ 그런 겁쟁이니까요."

따지듯이 말하지만, 유르하르드의 표현은 덤덤했다. 게르단이 볼 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공포스러웠다.
"제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났습니까? 그렇다면 확실히 배워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유르하르드는 빠르게 가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게르단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그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푸욱─
"커, 커헉...!"
"─당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게르단의 목에서 가위가 뽑혀나오자, 바 쪽으로 피가 뿜어졌다.
"꺄아악!"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종업원이 소리를 질렀다. 출입구는 유르하르드 쪽에 가까웠기에, 그녀가 도망칠 곳을 없었다. 유르하르드는 쓰러진 게르단의 코트를 벗긴 뒤 그의 검을 꺼내들고, 천천히 종업원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술에 취한 게르단에게 강제로 당할 뻔했습니다."
유르하르드는 떨고 있는 종업원의 발 밑으로 가위를 던졌다.
"그래서 눈에 보이던 가위로 그의 목을 찔러 살해. 정당방위죠."
종업원 근처에 가위가 있었던 건, 많은 손님들이 보았을 것이다.

촤─악!
"꺄악!"
유르하르드가 종업원의 겉옷을 잡아당기자 힘을 못 이기고 찢겼다. 그리고 주저앉은 종업원의 머리를,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붙잡아 강제로 헝클어놓았다. 덕분에 종업원의 머리에 있던 잿빛 장식이 바닥에 떨어져나갔다.
"사, 살려주세요...!"
종업원은 맨살이 드러난 자신의 상체를 감싸쥐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녀에게 유르하르드는 검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저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흉기를 휘두르는 당신을 제압하는 겁니다."
유르하르드는 애초부터 이럴 계획이었다. 오늘 게르단을 불러낸 것도, 굳이 종업원이 한 명만 있는 이 술집을 선택한 것도─ 종업원에게 과도가 아닌 가위를 요청한 것도, 손님들을 전부 내보낸 것도─ 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상처만 낼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르하르드는 종업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캉!
어디선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유르하르드의 검격은 단단한 무언가에 막혔다.
"이건...?"
얼음. 순식간에 마나로 만들어진 얼음 원소계 마법이었다. 유르하르드가 마나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창고 쪽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푸른색 머리의 모자를 쓴 여성.
그녀는 유르하르드를 분노에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샤를로트...?'

머리 색과 체형은 샤를로트가 맞지만, 눈 색깔과 인상이 다르다.
'아니, 닮은 사람인가. 그녀는 마나를 쓸 줄 몰랐으니─'
당장 유르하르드의 검격을 막은 얼음은, 원소 발현을 응용한 스킬이었으니까.
그보다 유르하르드는, 그녀의 눈동자에 대해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탐정을 낚을 미끼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건이죠."]

'설마...'

그가 이전에도 본 적 있던─
맑고 푸른 벽색의 눈이었으니까.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