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박수 동기화 마도구.
지하 1층의 술집에서 지하 3층의 사무실까지는 철저하게 방음이 되어있다. 따라서 아니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바로 대처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녀의 심장박동을 파악할 수 있는 마도구를 헤르카의 책상 옆에 두었었다.
["아니카가 긴장했다."]
헤르카가 나와 루루와에게 말해주었다. 술집에 귀족이나 기사, 이단심판관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 이런 경우─ 비밀통로의 활성화 마도구를 떼어내고, 사무실의 멤버들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방금 전에, 아니카의 심장박동은 격하게 요동쳤다. 아니카에게 위기 상황이 닥쳤다는 뜻. 헤르카는 누구보다 빠르게 비밀통로의 양쪽 문을 활성화하고, 나를 내보냈다. 사무실의 은폐보다 더 중요한─ 아니카를 구하기 위해.
그런데─
설마─ 유르하르드가 직접 왔을 줄이야.
"─오해입니다."
유르하르드는 아니카에게서 살짝 물러선 채, 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검을 놓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양손 검지 끝에 마나를 모으며 [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건 관두는 게 좋을 겁니다."
유르하르드는 마나 감응을 통해 내가 [살별]을 쓰려고 한 걸 눈치챈 듯했다. 애초에 방금─ 급하게 유르하르드의 검격을 막기 위해 [채색(彩色)]을 쓴 상황이었기에, 그는 나의 마법 수준을 진작에 파악하고 경계하는 듯했다.
일단, 녀석은 아니카와 가까이에 있다. 아니카는 지금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이기에, 쉽게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녀석의 말을 일단은 따를 수밖에 없다.
양손 끝에 모은 마나를 해제했다. 만들어지지 못한 [살별]은 시원한 바람이 되어 은은하게 공기 중으로 퍼져버렸다.
"현명하군요."
나는 이를 꽉 물고 말았다. 릴리에게 거짓 정보를 주며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들어내고, 플로라를 죽게 만든 남자─
─상급 기사 유르하르드.
그는 지금 아니카마저 해하려 하고 있다.
아무리 샤를로트가 소드 마스터 급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급 기사인 유르하르드에게 이길 가능성도 적을뿐더러, 아니카까지 지켜가며 싸우기는 더더욱 힘들다.
게다가 루루와의 꼬리를 쓰기엔, 상급 기사인 유르하르드의 검이 아니카에게 닿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샤를이 아닌─
릴리가 나설 때다.
"기사─ 유르하르드. 맞지?"
"그렇습니다."
"왜 아니카를 해치려 했지?"
"아니카는... 이 분의 이름입니까?"
─알고 온 건 아니었나. 그저 우연히 휘말린 것뿐인가.
"그것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오해입니다."
"뭐가 오해란 거지? 아니카에게 검을 휘두르는 걸 내가 봤는데?"
"부끄럽지만─ 제 동행자가 아니카 양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니카 양은 반항하다가 근처에 있던 가위로 그를 찔러버렸고요. 비록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그 후에도 가위를 들고 날뛰는 바람에 제가 이렇게 제압한 것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아니카. 아니카 옆에 떨어져 있는 가위. 가위로 목을 찔려 죽어있는 게르단. 게르단의 주변에 고인 피웅덩이와 바테이블에 흩뿌려진 혈흔.
확실히─ 유르하르드의 주장은 근거가 있었다.
"지금도 언제 날뛸지 모르니, 기사로서 그녀를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으... 으..."
아니카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게다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떨고 있었다. [살기]를 써서 입을 막아둔 건가─.
"그리고─ '정체 모를' 당신에게 인계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카 양이 이대로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마침 제가 증인이기도 하니, 상급 기사의 권한으로 해당 건을 종결하겠습니다."
─아예 대놓고 [마녀사냥]을 하시겠다?
지금은 재판장이 아니다. 그렇기에 기사 유르하르드의 말이 결국 판단의 기준이자 근거가 된다. 하지만 녀석이 반박하지 못하게 하면─ 스스로의 말에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아니카를 되찾을 수 있다.
"대답할 생각이 없으시군요. 그렇다면, 제 선에서─"
"─이봐."
최대한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유르하르드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니카 쪽으로 걸어갔다. 좀 더 과감하게─. 유르하르드의 무표정에서 겨우 읽어낸 그 [감정]이 사실이라면─
─그는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난 아니카의 [가족]이다. 그녀의 신변을 우선적으로 인계 받을 권리가 있어."
─정당한 주장. 그러나 유르하르드는 손을 뻗어 내가 다가오는 것을 저지했다.
"...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범죄와 연관된 사람은 예외입니다."
나는 움직이던 걸 멈추고, 유르하르드를 올려다보았다. 상당히 가까운 지근거리.
"그렇다면 내가─"
그 상태에서 유르하르드의 눈 바로 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아니카가 범인이 아닌 걸 증명하면 되지?"
"......"
유르하르드는 말없이 내 손가락 끝과 같은 선상에 있는 벽색의 눈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로 한참을 있었지만, 나 역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덕일까, 유르하르드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무의미한 주장이라면, 당신도 수사 방해로 체포하겠습니다."
─됐다.
"일단 아니카에게 뭐라도 걸치게 해줘. 기사씩이나 돼서 숙녀를 저렇게 내버려둘 거야?"
그러면서 일부러 바닥에 널브러진 코트를 흘겨보았다.
"저건 피해자의 것입니다."
"... 그래? 그럼 내 옷이라도 걸쳐주면 안 돼?"
"...... 그렇게 하시죠."
나는 주저 앉아 떨고 있는 아니카에게 내 재킷을 벗어 감싸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어깨를 살짝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내 눈으로─ 아니카 근처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확인한 뒤─ 다시 유르하르드 앞쪽으로 걸어갔다.
"아니카가 범인이 아니라는 근거는 세 가지야."
그리고 다시 한번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였다.
"하나─ 가위가 뽑혀있다는 점."
─가위는 게르단을 찌른 뒤에 다시 뽑혔다.
"심지어 가위로 피해자를 찌르자마자 뽑았어. 바테이블 쪽에서 찌르자마자 뽑는 바람에─ 곧바로 과다출혈이 발생해서 바테이블 방향으로 피가 흩뿌려진 거야. 뿌려진 흔적만 보면 피해자는 그대로 즉사했겠지."
"그게 아니카 양이 범인이 아닌 거랑 무슨 상관이죠?"
"상관 많지. 네 말대로 아니카가 정당방위로 피해자를 찔렀다면, 굳이 뽑을 이유가 없으니까."
"옆에 있던 저까지 공범으로 보고─ 무의식 중에 뽑아버렸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너가 기사라서 모르나본데─ 박힌 흉기를 뽑아내는 건 평균적인 여성의 악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야. 찌르는 건 몰라도, 찌른 이후에는 주변 근육이 경직되면서, 날이 잘 안 빠지게 되거든."
"......"
─몰랐겠지. 기사 입장에서는 찌르는 거나 뽑는 거나 별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까 말한 거에 덧붙여서─"
나는 이번엔 손가락으로 바테이블 쪽의 핏자국을 가리켰다.
"둘─ 아니카의 몸엔 핏자국이 없어. 저렇게 대량으로 피가 뿌려졌는데, 아니카가 찔렀다면 당연히 아니카에게도 피가 잔뜩 튀어야하지 않겠어?"
─사실 이건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는 아니카가 바테이블 쪽에 있어서 게르단의 피가 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가 튀었을 가능성이 있는 아니카의 겉옷은 현재 찢어진 상태.
'게르단이 아니카에게 몹쓸 짓을 하려 했다'는 유르하르드의 주장대로라면─ 아니카는 겉옷이 찢겨진 이후에 게르단을 찌른 거니까. 죽은 사람이 겉옷을 찢을 수는 없으니까. 만약 내가 말한 두 번째 근거에 반박한다면─ 게르단이 찔린 뒤에 아니카의 겉옷이 찢겨진 걸 인정하는 셈이다.
그래. 본인이 진범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지. 물론 지금 목표는 아니카의 혐의를 벗기는 것. 굳이 반박을 하지 않아도─
"이 근거에 반론은 없는 거지?"
─그거대로 이득이다. 유르하르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이다. 그의 입에서 아니카가 [무죄]라는 인정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셋─."
이번에 내가 가리킨 건, 아니카의 근처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잿빛 장식이다.
"저거─ 아니카가 평소에 끼고 다니는 거야. 근데 왜 저기에 떨어져 있을까?"
"... 그야, 몸싸움을 하는 도중에─"
유르하르드는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이제야 깨달았나 보네?
"지금 아니카가 있는 곳과 피해자의 시체는 거리가 꽤 되는데, 아니카가 정말 몸싸움을 했다면─ 왜 피해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저게 떨어져 있겠어?"
"......"
─유르하르드는 다시 침묵했다. 아직 부족한가?
"......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유르하르드는 침묵 끝에 검을 세워들며 말했다. 나는 지근거리에 있었기에, 검날이 바로 내 얼굴 앞까지 오게 되었다.
"─진범은 누구입니까?"
... 이렇게 나오는 건가.
유르하르드는 아니카의 혐의만 벗기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길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답을 줘야지.
나는 손가락을 하나 뻗어, 그대로 유르하르드를 가리켰다.
"범인은 기사 유르하르드. 증거는 지금 너가 들고 있는─ 게르단의 검."
곧바로 결론부터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번엔 바닥에 널브러진 코트를 가리켰다.
"하나─ 게르단은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코트를 입었어. 검을 숨기기 위함이었겠지. 널 죽이려고 했다가, 오히려 너에게 역으로 당한 거고. 안 그래?"
유르하르드는 반응하지 않았다.
"둘─ 굳이 코트를 벗긴 건, 그가 검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만약 게르단이 정말로 아니카를 덮치려했다면 검을 들고 협박하는 게 합리적이었을 거야. 여성이 근거리에서 휘두르는 가위 따위에 맞을 일도 없겠지. 그래서 너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의 검을 빼앗았어. 처음부터 본인의 검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유르하르드가 원래 쓰는 검은 이것이 아니라는 걸.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들고다니던 검은─
["유르하르드 경한테는 항상 고마워서. 이건 작은 선물이야."]
─내가 줬던 거니까.
"그리고, 셋─. 검날에 남아있는 잔여 유전자를 확인하면 그 검이 게르단의 검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 네리힐이 [마녀사냥]당한 사건에서─ 피해자인 노숙자를 베었던 검은 그거였으니까."
"......"
유르하르드는 여전히 답이 없다. 표정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감정] 역시도 여전히 읽히고 있었다.
유르하르드의 집중이 나에게로 쏠린 지금─
─아니카를 구할 타이밍은 지금 뿐이다.
"... 루루와!"
나의 외침과 동시에─ 창고의 비밀통로 쪽에서 검고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아니카가 걸친 재킷의 사과향을 따라서 빠르게 다가왔다.
오늘도 저걸 입고 루루와의 사탕 상자를 열어줬으니까. 루루와가 내 곁에서 사탕을 씹으며 사과향이 은은하게 배었을 테니까.
루루와라면 유르하르드의 시선이 닿지 않는─ 즉, 본인의 시선도 차단된 곳에서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꺄악!"
아니카를 재킷 채로 묶어버린 루루와의 꼬리. 곧바로 당겨지며 유르하르드가 반응하기도 전에, 루루와의 꼬리는 아니카를 구조해내었다.
아니─.
일부러 보내준 건가?
"... 아니카 양의 신변은 약속대로 인계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끝내야할 일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둘만 남은 상황에서, 유르하르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게르단에 대해서도 알고─ 네리힐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 상대를 이해시키는 스토리텔링─ 가짓수로 말하는 설명방식─ ..."
─내가 이미 알고 있었듯, 유르하르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정보의 바다]에서 사건을 해결하던 탐정이었습니까?"
─알고 있으면서, 확신을 가지려 확인해본 것이다.
"...... 릴리. 맞습니까?"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