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색의 매듭 12화

by 도토리

[셰로키 스트리트]의 남작가에서, 가주가 교살당한 사건.

남작가에서 모든 고용인들은 흉기를 지닐 수 없도록 신체검사를 받는다. 피해자인 가주의 몸에는 페톨리움 장신구가 걸쳐있기에, 마법에 당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꼬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고양이형 수인 하녀가 범인으로 판명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라키가 릴리를 테스트하기 위해 보여줬던 세 가지 사건 중 마지막 사건이다. 나중에 [용의자에 대한 정보]가 주어짐으로써, 이야기는 겨우 [리라이트]될 수 있었다.


피해자는 호프만 남작. 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부패 세력에서도 언젠가 처리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귀족. 주변 사람부터 노리는 그들의 특성상, 호프만 남작 본인을 바로 노리는 건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형 수인 하녀, 나나린.

가해자로 지목된 또 다른 피해자이며─


"이 사진은... 루루와?"

"닮긴 했죠? 루루와에게 직접 받은 거예요. 나나린의 남은 사진이 그거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루루와의 친언니이다.


검은색 머리의 베이스로 밝은 회색이 섞인 투톤의 장발. 그 위로는 고양이의 귀가 뻗어져 있으며, 검고 긴 꼬리와 동물 특유의 금색의 눈을 가진 소녀. 라키가 건네준 나나린의 사진은, 머리가 길고 조금 더 성숙해진 루루와의 모습이었다.


암전의 멤버들이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때, 나나린의 정보만큼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당사자의 가족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늦지 않았군요. 다행입니다."]

암전과 처음 만난 날, 페이시가 창고에서 했던 말.

─나나린 때에는 늦었다는 의미였구나.


암전에는─ 다들 하나 같이─

사연이 있었다.


*


"... 이 정도면 됐어."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훑어보고 나서, 나는 [진실]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이전에도 이미─

"명백해. 그녀는 범인이 아니야."

─나나린이 범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라키는 이전과 같이 음성 녹음 마도구를 작동시켰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날개]의 화면에 호프만 남작의 시체 사진을 띄웠다.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피해자. 시체의 목에 한 줄로 동그랗게 나타나있는 교살흔.


"시체의 사진을 봤을 때부터 이상한 점이 있었어. 사건 자료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모순]이 말이지."

"저항흔이 없다는 건가요?"

─라키의 말이 정답이다. 시체의 목에는 한 줄의 교살흔만 있을 뿐, 흉기를 떼어내려고 저항한 흔적이 없었다.

"맞아. 인간이라면 목이 압박되는 상황에서는, 흉기를 떼어내는 데에 필사적이게 돼. 상대가 악력으로 조른다면, 상대의 손과 팔을 긁게 되고─ 밧줄이나 끈이라면, 그걸 떼어 내려다가 자신의 목을 긁게 되지."

하지만─ 이 정도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상식에 속했다.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더더욱─ 고양이형 수인의 꼬리가 흉기 아닌가요? 팔과 함께 몸 전체를 감싸서, 저항조차 못하게 한 뒤 목을 조른 거죠."

─라키의 반박은 그럴싸했다. 실제로,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이들도 해당 주장으로 나나린을 범인으로 몰았다. 수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잘 아는 수인이 있고, 그녀의 꼬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건 틀려."

이번에도 나는 자신 있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하나─ 수인은 꼬리 전체에 균등한 힘이 주어져."

─라키의 주장대로라면, 나나린은 꼬리 하나로 호프만 남작의 몸을 묶어 구속하고, 그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피해자의 몸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오직 목에만 교살흔이 있을 뿐.


"균등한 힘으로 조여지니까, 목을 조른 힘 그대로 피해자의 구속된 몸에도 힘이 가해졌을 테고, 마찬가지로 묶인 흔적이 남아있었어야 해."

"확실히... 고양이형 수인은 꼬리 전체에 동일한 힘이 나누어져 가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그러면 몸을 묶은 도구와 목을 조른 흉기는 별개의 것이라고 봐야겠네요?"

"그렇지."

─굳이 연구 결과가 없었더라도, 실제로 루루와의 꼬리에 묶여본 적 있는 나로서는 확실한 근거이다.


"만약 나나린이 범인이었다면 꼬리 하나로 해결했겠지. 굳이 다른 도구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겠어? 더욱이 신체 검사까지 하는데?"

하지만 당시의 수사 관계자들은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는 못했겠지. 생각이 다다랐더라도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둘─. 고양이형 수인이 범인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증거가 없어."

"첫 번째 사건의 [테이블] 때처럼, 증거가 없는 게 근거인가요?"

"맞아. 하물며 흉기가 꼬리라면 더더욱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루루와의 검은 꼬리에 묶였을 때, 내 몸에는 검은 가닥들이 조금씩 묻어있었다. 루루와뿐만이 아니다. 어떤 수인이든─ 지나간 자리에는 [털]이 남을 수밖에 없다.

"맞아요! 털이 발견되었다는 말이 하나도 없네요...!"

라키는 왼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치며 반응했다.


['─그 외의 특기할 만한 점은, 땀으로 듬뿍 젖은 이불과 커튼 없는 창문 정도일까.']


"게다가 피해자가 쓰러진 침대의 이불은 피해자의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어. 세탁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죽은 당시 그대로라는 의미지."

하지만 그 어떤 자료에서도─ 현장에 털이 남아있다는 말이 없었다. 그 어떤 증거들보다 신빙성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었음에도.


"한 가닥이라도 나왔으면, 그대로 기록되었을 거야. [마녀사냥]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진범이 아닌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었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런 기록이 없다는 건?"

"사건 현장에서는 한 올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나린은 남작의 침실에 간 적이 없다─ 라는 거군요?"

"그래. 명백해. ─그녀는 범인이 아니야."


이렇게 나나린의 결백은 증명할 수 있다. 이번의 [스토리텔링]이 [날개]를 통해 퍼진다면, 나나린의 명예도 되찾고─ 루루와의 슬픔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의문은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는군요. 흉기는 무엇인지─ 어째서 신체 검사에서 걸리지 않았는지─"

"거기에 추가로, 피해자는 어째서 저항을 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진범은 누구인지─."

"알고 계신 거죠?"

라키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내게 질문했다. ─뻔한 레퍼토리다.


"설마─ 몰랐겠어?"

─릴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일단, 피해자는 어째서 저항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자고 있었거나, 다른 거에 묶여 있었거나. 아닌가요?"

계속 조용했던 리스가 대답했다.

"자고 있었더라도, 누군가 목을 조르면 깰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아마 다른 거에 묶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라키도 의견을 냈다.

"그 말대로─ 호프만 남작은 저항할 수 없도록 [무언가]에 묶여있었어."

나는 라키의 의견에 긍정해주었다.

"근거는 두 가지야."

이번에도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하나─. 땀으로 흠뻑 젖은 이불."

─확실히, 이불로 사람을 감싼다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이불만으로는 사람을 구속할 수 없지 않나요? 팔도 쉽게 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맞지. 그래서 범인은 이불 말고도 한 가지를 더 사용한 거야. 현장 사진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걸?"

['─그 외의 특기할 만한 점은, 땀으로 듬뿍 젖은 이불과 커튼 없는 창문 정도일까.']

"......!"

"둘─. 창문에 있던 커튼. 범인은 피해자를 이불로 싸맨 뒤, 그 위로 얇은 커튼을 굵은 밧줄처럼 엮어서 한 번 더 묶은 거야. 그렇게 하면 피해자의 몸에는 자국이 남지 않고, 목만 밖으로 빼게 둔 채 제대로 구속할 수가 있지."

"맞네요. 얇은 재질의 커튼이라면, 꼬았을 때 구속력이 생길 테니까요."

"세탁하기 위해 치웠을 가능성은 없나요?"

리스가 물었다. 평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입장이라, 확실히 관점이 남다르다.

"남작가의 침실인데, 밤까지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거야."

그레이 백작가의 사용인들도 세탁한 커튼과 침구류는 당일에 곧장 원래대로 달아두었다. 내가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물론 사라진 커튼은 세탁실에서 발견될 거야. 사용 후에 구겨진 걸 범인이 옮겼을 테니까."

"교살만 하면 되는데, 피해자를 그렇게까지 묶어 둔 이유가 있는 건가요?"

라키가 좋은 질문을 해주었다. 앞으로 내가 설명할 내용이 관련되어 있으니까.

"뭐, 피해자가 저항하면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어."

─그렇다. 범인은 호프만 남작의 몸을 묶어두어야만, 그를 교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체 검사에서 걸리지 않은 흉기. 그걸 사용하기 위해 구속한 거니까."

─흉기라고 생각되지 않을 물건. 평소에 지니고 있어도 수상하지 않은 물건.

"─흉기는 '액세서리'야."

"... 목걸이 종류도 신체검사 때 수거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목걸이는 '흉기라고 생각되는 물건'에 속하기도 하니까.

실제로 [용의자에 대한 정보]에서도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럼 대체...?"

"힌트는 두 가지야."

난 라키의 눈 앞에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하나─ [확장] 마법."

─인챈트계 마법 중에는, 물체의 크기를 바꾸는 마법이 있다. 그중에서 [확장]은 2성급의 마법으로, 일시적으로 대상의 크기를 3~4배 정도 키운다. 다만 질량은 그대로이며, 물체의 원래 크기가 클수록 배율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기에 널리 쓰이는 마법은 아니다.

"[확장] 마법이라면, 팔찌 같은 작은 액세서리라도 사람의 목을 조를 만한 흉기의 크기로 키울 수 있지 않겠어?"

─힌트라고 해놓고, 답을 말해버렸다.

"... 하지만 호프만 남작의 몸에는 페톨리움이─"

"그래. [확장]시킨 팔찌가 피해자에게 닿게 되면, 곧바로 [확장]은 무효화되겠지."

"... 아!"

라키도 이젠 깨달은 듯했다.

"둘─ 피해자가 착용한 페톨리움 장신구."

호프만 남작의 몸을 이불과 커튼으로 묶어둔 이유. 그것은─

"─피해자가 페톨리움 장신구를 떼어내는 걸 막기 위함이었어."


우선 범인은 피해자가 잠든 사이, 이불과 커튼을 이용해 몸을 구속했다. 그 이후 자신이 착용한 팔찌에 [확장] 마법을 사용─ [확장]된 팔찌를 피해자의 목에 걸어둔 것이다.

페톨리움에 의해 팔찌에 인챈트된 [확장]은 해제되고, 원래의 크기로 돌아간다. 팔찌 줄의 베이스를 얇은 철사로 해두었기에, 손목 크기로 돌아간 팔찌는 확실하게 피해자의 목을 조른다. 이후,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뒤─ 페톨리움을 잠시 떼어내어 팔찌를 회수하고, 현장 정리 및 페톨리움 원위치를 한 것이─ 사진 속 장면 그대로인 것이다.


마법으로부터 지켜주던 페톨리움은 오히려 호프만 남작의 목을 조르는 제2의 흉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사건 당시 팔찌를 찬 사람이겠군요?"

라키는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곧바로 확인했다.

"마침 당시 호프만 남작의 저택을 방문했던 이단심판관 중에 팔찌를 찬 여성이 있어. 종교인이라면, 미네르바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차는 게 수상하지는 않으니까."

이단심판관도 고용인들과 마찬가지로, 호프만 남작저에 손님으로 갔을 때 신체검사를 받았을 것이다. 진범은 그걸 이용해서 저택에 머물면서 피해자를 살해하고 [마녀사냥]을 한 것이다.

"이 사람이군요..."

라키는 [진범]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다. 연갈색 머리의 연보라색 눈을 가진 몸집이 작은 여성. 왼쪽 손목에는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이 사람이─ [진범]이다.

"증거는 이 팔찌 그 자체야. 피해자는 이불에 묶여있을 때 땀을 엄청 흘린 것 같은데, 당연히 흉기인 팔찌에도 피해자의 땀이 묻어있지 않겠어?"

─물론 본인이 계속 팔찌를 가지고 있을 테니, 직접 확인하려면 그녀에게서 팔찌를 빼앗을 필요가 있겠지만.


"이때는 신체검사 때문에 팔찌를 흉기로 썼지만, 평소엔 권총을 주무기로 사용한다네요? [수사]보다는 [집행] 쪽에서 주로 활동하나 봐요."

라키는 [정보의 바다]를 통해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였다. [날개]에 싣고 퍼뜨리려면, [진범]에 대해 더 명확히 알 필요가 있으니까.


'...... 권총을 사용하는 이단심판관?'

─처음엔 그저 의심이었다.


나중에─ 유르하르드의 유언을 듣기 전까지는, 그저 조금 걸리는 정도였다.


호프만 남작을 살해하고 루루와의 가족을 앗아간 [진범].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다.


***


"전부─ 수사 명목 하에 가져갔다는군."

통신용 마도구를 확인하던 헤르카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녀는 약간의 [안타까움]을 표정에 드러낸 뒤, 잔 안의 커피를 반 이상 들이켰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르하르드로부터 '아이리스'의 이름을 알아냈고, [그레이 백작 부부 살해사건]의 [리라이트]를 위해 관련 자료들을 모으려 했는데─. 페이시가 자료실을 찾았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증거물과 자료들이 반출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날개]가 작동되자마자 움직인 모양이야... 대처가 빠른 편이네..."

아니카도 [아쉬움]의 감정을 내비치며 중얼거렸다.

"... 그 사람, 싫음. 또 도망감."

루루와의 표정에서는 [분노]가 읽혔다. 자신의 친언니─ 나나린을 죽게 한 범인이 아이리스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보다 더한 분노감을 보였다.

"...... 괜찮아. 나나린의 누명은 풀었으니까."

나는 루루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호프만 남작 살인사건 때의 자료는 이미 구해둔 상태였기에, [날개]를 통해 나나린의 무죄는 이미 입증된 상태였다. 다만─

"─샤를로트는 아니잖음..."

루루와는 반쯤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이리스는 [정보의 바다]에서 [날개]로 인한 [리라이트]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이 관여했던 모든 사건들의 자료를 빼냈다. [그레이 백작 부부 살인사건]에 대한 자료까지 빼돌렸다는 건, 명백히 그녀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겠지만, 이제 와서는 너무 늦었다.


─릴리는 여전히 존속살해범이다. 범인이 아닐 [가능성]만 이야기할 뿐, 범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루루와는 릴리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을까? 루루와의 눈에는 내가 괜찮지 않아 보인 걸까?

그날따라 루루와는 침울해보였다. 사탕 상자도 열어달라 하지 않았다. 그런 루루와의 변화를─


─적어도 나는 읽어냈어야 했는데.


......


─그날 밤.


루루와는 혼자서 아이리스를 찾아갔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