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가 쓰리다. 호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밀려오는 흉통에 당장이라도 가슴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게다가─ 붙잡는다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총에 맞은 건 과거 릴리의 기억이고, 지금의 샤를로트는 그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으니까.
샤를로트로 되살아나고 나서, 가끔씩 꿈에서 보았던 기억들. 그리고 생생한 감각들. 탐정 릴리가 르코의 총에 맞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버린 트라우마. 말 그대로 죽음의 트라우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증상이다.
─죽은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죽음의 경험은 기억 속 감각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온 눈 앞의 상대를 보니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발현된 것 같다.
"음...? 누구신가요?"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과 말투. 릴리 탐정사무소의 전 조수, 르코이다.
"기사 샤를로트."
나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저녁 늦은 시간─. 나는 지금 르코의 거주지로 혼자 찾아온 상황이다. 잠입도 아니다. 당당하게 문을 두드리고, 손님으로서 정당하게 그를 만나기로 한 것. 이것이 나의 작전이다.
"흐음...? 생각지도 못한 분이시네요?"
르코의 표정에서는 5%의 [경계], 5%의 [호기심]이 읽혔다. 그리고 나머지 90%는─
"일단 들어오세요~"
─[탐욕].
탐정사무소에서도 가끔씩 보였던 르코의 탐욕스러운 표정.
본인에게 이득이 될 상황이면 살짝씩 드러나던 그 표정.
죽어가는 릴리에게는 당당하게 선보였던 그 표정.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겨진 그 표정.
르코의 표정에서 이런 감정이 읽힌 건, 생각하면 당연했다.
샤를로트는 일전에 노예경매장의 폭발 테러로 인해 행방이 묘연해졌던 최상급의 [상품]. 로베르트 공작이 지명해서 원했던, 젊고 아름다운 기사. 그런 존재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르코 입장에서는 앞뒤 상황 상관없이 그냥 엄청난 행운이었다.
날 잡아다가 로베르트 공작에게 바치면, 그 보상이 어마어마할 테니까.
... 릴리 때와 마찬가지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단지 조수라는 이유로, 이런 녀석을 억지로 믿고 싶어했다니.
... 가슴의 통증이 더 심해지는 듯했다.
*
"상황은 알고 있어요. [그레이 백작 부부 살인사건]에 대해 재수사하다가, 그대로 징계를 받으셨다면서요?"
르코가 부엌에서 차를 끓이며 말했다.
"... 맞아."
나는 르코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릴리 탐정님의 조수인 저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찾아오신 건가요?"
"......"
차가 끓는 동안, 르코는 테이블 위에 찻잔을 올려두었다. 모양도 색깔도 똑같은 두 개의 잔. 나는 여전히 르코를 바라보지 않았다.
"[정보의 바다]에서는 의심가던 용의자가 죽었다던데요? '아이리스'라는 이단심판관이요. 우리 탐정님도 그렇지만─ 기사님도 굉장히 억울하셨겠어요."
억지로 꾸며낸 속상함이 묻어나온 목소리. 르코의 가증스러운 태도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고 말았다.
"에헤이, 제가 너무 귀찮게 했나요? 죄송해요~ 일단은 따뜻한 거라도 드세요."
르코는 찻주전자를 들고 테이블 위의 두 찻잔에 동일한 양으로 따랐다. 그리고 나에게 차를 권하는 손짓을 반복했다.
"......"
오른쪽에 있는 잔을 잡아 그대로 내 앞으로 끌고 왔다. 향기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고. 라키의 연구실에서 마셨던 평범한 민트차였다. 르코는 남은 한 잔을 본인 앞으로 가져오더니, 그대로 들고 마셨다.
"탐정님이나, 기사님이나─ 아리따운 미인이시네요. 탐정님도 벽안이 참 매력적이셨는데. 그 머리카락 색처럼요."
왼손에 들던 찻잔을 내려놓은 르코는 샤를로트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
"하하. 굉장히 과묵한 분이시네요. 괜히 민망해지는 걸요?"
그렇게 말하는 르코의 표정에서는 [민망]이 읽히지 않았다. 나를 죽이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로베르트에게 갖다 바칠 궁리만 하는─ [탐욕]만이 읽힐 뿐이었다.
"그래서─ 저를 찾은 용건은 무엇일까요?"
머쓱한 척하던 르코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되물었다.
"... 재수사 때문에."
이제는 가슴의 통증도 조금 줄었으니, 나도 내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을 할 때가 됐다.
"재수사요? [그레이 백작 부부 살인사건]이요?"
"맞아. 내가 [마녀사냥]당했던, 그 사건."
나는 일부러 중의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르코가 따라준 찻잔의 손잡이를 잡았다.
"[정보의 바다]에 있는 자료를 보면, '아이리스'가 [진범]인 것 같은데, 그녀는 이미 죽었고. 더 수사할 부분이 남아있나요?"
르코의 표정에서는 미묘하게 [기대감]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진범]은 따로 있어."
나는 입 바로 앞에서 찻잔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 펼쳐─
"─너잖아. 르코."
─그대로 [진범]을 가리켰다.
***
루루와의 병문안 직후─ 혹시라도 남아있을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나와 페이시는 릴리 탐정사무소로 향했다. [정보의 바다]에서 [날개]가 활약해준 덕분에, 부패 귀족들과 기사, 그리고 이단심판관들은 자잘한 사건에서 눈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나도 간만에 탐정사무소를 찾아올 수 있었다.
"... 오랜만이네."
일할 때마다 앉아있던 책상과, 다양한 책과 자료들이 꽂힌 책장, 그리고 손님을 맞이할 때를 대비해 둔 테이블과 소파를 비롯해 사무소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곳은 부모님이 살해당했던 현장이자, 릴리가 탐정으로서 살아가던 직장. 그리고─
거짓 정보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집행장.
"특별한 건 없군요."
여러 가지 감정들로 잠시 가만히 서있는 사이, 페이시는 이미 이곳저곳 살펴보고 있었다.
"음... 맞아. 중요한 게 남아있었더라도, 내 비상금처럼 다 가져갔을 테고..."
"아뇨. 그런 거 말고─"
페이시는 릴리의 책상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책상의 아래쪽을 훑어보더니, 이내 곧 눈을 감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탐정사무소의 내부를 전부 둘러본 페이시는, 기억 속의 장면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완전기억능력은 한 번 눈에 들어온 것들을 잊지 않으니까.
"...... [탄흔] 말하는 거야?"
"네. [면접] 때 말씀해주셨던, [제3의 탄흔]이요."
암전의 [면접] 당시, 나는 부모님이 살해당했던 사건에서 '릴리가 범인이 아님'을 입증했었다. 그 증거로 말했던 건─ 실제로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던 [제3의 탄흔]. 그때의 나는, 가능성의 영역으로만 증거를 제시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범인이 아니니까.
증인인 내가 알고, 피해자인 부모님이 안다.
거기에 진짜 범인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그저─ 눈 앞의 멤버들을 [설득]만 하면 되었으니까.
"릴리가 범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페이시가 눈을 뜨고 말했다.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었으니, [추리]에 수정할 부분이 있다는 거지?"
나는 페이시와 눈을 마주치며 대신 말했다.
"네. [면접] 때의 추리로는, 두 사람의 범인이 각각 그레이 백작 부부를 쏘았다고 하셨지만,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 [제3의 탄흔]이 없다는 건, 실제로도 릴리의 리볼버에서만 두 발이 발포되었다는 건데."
"그렇기엔... 그레이 백작을 쏜 건 아이리스가 틀림없지만요."
페이시는 루루와의 어깨뼈에 박힌 아이리스의 총알과, 아버지를 해친 총알의 강선흔이 일치하는 것을 완전기억능력으로 확인했었다.
["총알 크기나 총의 종류가 다르니까─ 서로 다른 두 총으로 쏜 거겠지."]
─암전에서 내가 했던 추리.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에게 있는 총상의 형태가 달라서, 분명 '서로 다른 두 총'이라고 판단했었다.
["아이리스와 르코는 탐정 사무실에 [조작된 증거]를 심어두러 간 것입니다."]
─유르하르드의 유언에 따르면, 아이리스와 르코. 두 사람이 온 것은 틀림없다.
"......"
─뭔가, 새롭게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 페이시. 루루와가 했던 말 생각나?"
"저는 '들은' 건 잘 기억 못합니다."
"음... 아이리스 저택에서 있었던 상황 말이야. 여기 오기 전에 병원에서 들었잖아."
"......?"
"......"
이 정도면 완전기억능력은 뇌가 아니라 눈에 적용된 능력이 아닌가...
["아이리스, 루루와한테 다섯 발 쏨."]
["도망칠 때 소리 들음. 삐익 소리, 탕 소리."]
"루루와가 했던 증언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 많아."
"아이리스는 루루와가 도망치고 나서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마지막 [탕 소리]는, 누군가가 아이리스에게 총을 쏘면서 난 소리인가요?"
"그래. 루루와의 증언과, 사건의 타이밍을 비교하면 확실해. 근데 그거 말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두 군데야."
나는 페이시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펼쳐보였다.
"하나─ [삐익 소리]. 이건 아이리스가 설치한 방범용 마도구에서 난 소리겠지."
방범용 마도구는, 처음 흘려넣은 마나와 다른 마나를 가진 존재에만 반응하는 마도구이다. 그래서 애초에 마나가 없는 수인인 루루와가 들어왔을 때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리스를 살해한 [진범]이 들어와서 난 소리... 입니까?"
"아니. 타이밍 상, 그건 아이리스가 들어오면서 난 소리일 거야."
아무리 루루와가 빠르다지만, 총을 쓰는 이단심판관의 명중률이 낮아진 건 표적과의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아이리스는 처음엔 방 밖에서 총을 쏜 것이고, 이후 환풍구에 들어선 루루와를 쫓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가─
"─분명 본인이 설치한 마도구였을 텐데, 갑자기 울렸으니 당황했겠지."
"다른 사람이 방범용 마도구를 바꿔치기했다는 겁니까?"
"맞아. 범인은 자신의 마나를 흘려넣은 마도구와 바꿔 놓았어. 방에 있던 증거품도 바꿔치기하려고."
범인은 방범용 마도구를 조작해서, 본인이 쉽게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범인이 증거품들에 이미 조작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증거품이라면...?"
"둘─ 루루와에게 쏜 다섯 발의 총알. 힌트는 거기에 있어."
리볼버의 최대 탄창 수는 여섯 발이다. 아무리 아이리스가 신중하다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쏘기 위해서는 조준이 아닌 [난사]가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째서 한 발을 남겨둔 걸까? 도망치려는 표적을 맞추려면 빠르게 다 쏘고 장전하는 게 나았을 텐데."
"아, 원래부터 다섯 발 밖에 없었군요...!"
"맞아. 범인이 아이리스를 만나면서 아이리스의 리볼버에서 한 발을 빼놓은 거야. 그리고 방범용 마도구까지 바꿔놓고."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레이 백작. 그러니까, 아버지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과 바꿔치려고. ─그러니 아이리스를 죽인 범인은, 르코야."
그렇게 하면, 그레이 백작을 살해한 범인은 아이리스가 된다.
"아마, 루루와처럼 누군가가 빼돌린 증거품을 다시 가져갈 거라 예상했을지도 몰라."
─탐정을 유인하는 데에는 사건만한 게 없으니까.
"르코는 그걸 이용해서, '아이리스가 [진범]이다'라는 그럴싸한 진실을 남겨둠과 동시에, 적절한 숙청까지 해낸 거지. 본인은 잘 빠져나가면서─."
"그렇다면─ 그레이 백작 부부 사건은, 르코 한 사람이 그랬다는 겁니까?"
"그래. 아이리스는 백작 부부를 살해하지 않았어."
애초에 아이리스와 르코, 두 사람이 동시에 신호를 맞춰 쏘는 건 사전에 합의된 게 아니면 어렵다. 더욱이 두 사람의 처음 목표는 그레이 백작 부부를 살해하는 게 아니라, [조작된 증거]를 심어두러 온 거였기도 했고.
["총알 크기나 총의 종류가 다르니까─ 서로 다른 두 총으로 쏜 거겠지."]
─두 분의 총상의 형태가 달랐던 이유는, 서로 다른 총이어서가 아니다. 같은 리볼버에서 다른 종류의 총알을 쏜 것이다.
["아이리스와 르코는 탐정 사무실에 [조작된 증거]를 심어두러 간 것입니다."]
─유르하르드의 유언에 따르면, 그들은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왔다. 우연히 그 '증거' 중에 총알이 있었던 것.
난 리볼버에 총알을 전부 채워놓지 않았었으니까─ 본인들이 가져온 총알을 섞어서 쏘는 바람에 '우연히' 총상이 달라진 것이다.
"─르코 혼자, 두 분을 다 쏜 거야."
한 사람이 하나의 총만으로 순식간에 두 사람을 쏜다는 건─ 보통은 어렵다. 게다가 표적의 위치도 달리하면서 쏘기엔 더욱이. 하지만─ 스킬을 쓴다면 다르다.
릴리가 죽었을 때─. 르코가 품 속에 손을 넣고 리볼버를 꺼낼 때까지, 릴리는 반응하지 못했다. 릴리의 [관찰]로도 총을 쏘는 과정을 놓친 것.
─어느 순간에, 르코의 손에 리볼버가 들려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단심판관인 아이리스조차, 르코에게 반응하지 못했다.
총을 이용한 버프계 스킬, [패스트 드로우(Fast Draw)].
총기를 빠르게 뽑아서, 빠르게 조준하여 사격하는 스킬.
릴리도 몰랐던, 르코의 [스킬]이었다.
***
"...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일까요?"
르코의 표정엔 [당황]이 드러났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일단, 차는 고마워. 약만 안 발라져 있었으면 맛있게 마셨을 텐데."
난 오른손에 든 찻잔을 그대로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았다.
"...... 그건..."
"내 앞에서 당당히 마시더라. 차에 뭐 안탔다고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마냥─."
르코는 내가 찻잔을 들기도 전에, 본인이 먼저 마셨다. 내가 알던 르코는, 적어도 손님이 먼저 찻잔을 들기 전에 들이켜는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
"보통 사람들은 오른손잡이니까. 손잡이가 오른쪽으로 가게 해서 잡았을 때, 입에 닿을 수 있도록─ 미리 약을 발라 둔 거지? 수면제 같은 걸 두 잔에다가 다."
르코는 왼손잡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왼손으로 찻잔을 들어올렸다. 두 잔에 전부 발라놓은 약이, 자신의 입에는 닿지 않도록.
"처음부터 내가 잔을 고르게 유도한 것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안심해서 차를 마시도록 한 거 아니야?"
난 계속해서 르코를 몰아붙였다.
"... 그걸 어떻게 전부..."
르코의 표정에는 약간의 [공포]가 서렸다. 아무래도, 나를 보고 릴리를 떠올린 모양인데─.
여기서는 확실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설마─"
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몰랐겠어?"
르코의 눈과 릴리의 벽안이 마주쳤다.
"으아아아!"
르코가 비명을 질렀다. 본인이 죽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등장하면, 나도 이렇게 놀라려나? 르코의 반응 덕분인지는 몰라도─ 흉통도 거의 멎었다.
"뭐야, 너... 리, 릴리...?"
"아니? 난 샤를로트인데? 근데 왜 반말이야?"
난 괜히 딴청을 부렸다.
"그 눈...! 그리고 그 추리력...! 그러고보니 싸가지없는 말투까지...!"
이렇게까지 당황한 르코는 처음봤다. 유르하르드는 그래도 [정보의 바다]에서부터 날 알아봤었는데.
근데 뭐? 싸가지?
"너무 겁먹지 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대신─"
레드 라이트를 [마녀사냥]할 때, 릴리에게 보여줬던 장부. 그것만 있으면 된다.
"─[절후회]를 무너뜨릴 증거. 그걸 줘. 너가 가지고 있잖아, 르코."
"으... 정말 그것만 주면 날 살려주는 건가요?"
르코는 일단 굽히는 태도를 보였다. 르코 입장에서는 하급 기사를 이길 수가 없으니까. 품 속에 총이라도 없는 이상─
탕!
순식간이었다.
내 눈엔 르코가 품 속으로 손을 넣는 것이 [관찰]되었고─
르코는 나의 심장을 향해 [패스트 드로우]를 사용했다.
"으윽..."
단발의 총성 이후─ 방 안에는 옅은 신음소리가 흘렀다.
"대체... 왜..."
총에 맞은 건 르코였다. 르코가 총을 쏘려는 전조가 보이자마자, 그의 바로 앞쪽으로 얇은 얼음벽을 [채색]했으니까. 벽에 부딪힌 총알은 위력은 줄겠지만 르코에게 튕겨나가 피해를 입힌 것이다.
원래 소드 마스터의 마나로도 일반 총알 정도는 튕겨내는 [오러 실드]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샤를로트의 마나라면 충분히 르코의 [패스트 드로우]를 튕겨낼 수 있었다.
타이밍에 맞춰 반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상대가 [패스트 드로우]를 쓴다는 걸 알고만 있으면, 표정이나 전조만 봐도 바로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릴리가 죽었을 때에도─ 르코가 품 속에 손을 넣는 순간만큼은 [관찰]했었으니까.
"끄으으..."
르코는 총도 던져 놓은 채, 자신의 허벅지를 감싸쥐고 있었다. 각도를 딱히 계산한 건 아니었기에, 치명상은 피한 듯했다.
"동굴에서처럼─ 그냥 거리낌 없이 쏴버리는 구나?"
나는 르코가 떨어뜨린 총을 주워들며 말했다.
"여, 역시... 릴리 맞잖아요! 끄으으..."
"아니? 샤를로트라니까?"
"으으... 날 죽일 거죠? 제가 탐정님을 죽였으니까...!"
"릴리뿐만 아니라, 백작 부부도 죽였지. [마녀사냥]으로 수많은 사람들도 무고하게 죽였고."
나는 주워든 총을 그냥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근데 이번엔 너 안 죽이려고. 대신 [장부]나 내놔."
"... 그걸 주면 어차피 나도 죽는데요?"
"알고 있어. [절후회]에서도 '꼬리 자르기'하는 마당에, 왜 진행자에 불과한 너를 살려두었겠어?"
["기사들이 눈치채기 전에 제가 직접 조사해서 구해온 거니까요."]
"그 [장부]─. 정말로 너가 따로 구한 귀족들의 [약점]인 거지?"
"... 알면서 왜..."
"아마 [생체 링크]라도 되어 있겠지. 너가 죽으면 [장부]가 [정보의 바다] 같은 곳으로 등록되도록 말이야. 그래서 [절후회]의 높으신 분들도 너를 [숙청]하지 못한 거고. 릴리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이유 중에 하나도─ 그 [장부]를 한 번 봤던 게 알려져서─. 맞지?"
"... 그러니까 잘 알면서 왜─"
"너가 죽을 걸 알면서 왜 내놓으라 그러냐고? 그러니까─ 그거 주고 너 알아서 하라는 거야, 르코. 그대로 [절후회]에 숙청당하든─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살아남든─."
"그럴 거면, 그냥 날 죽이고 [장부]가 퍼져나가도록 해도 되잖아요? 왜 굳이..."
"그래도 같이 일한 정이 있어서? 내 손으로 죽이긴 뭐하니까?"
─르코가 릴리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
─뭐, 그거대로 르코에게는 큰 업보겠지만.
"그래서? 나한테 [장부] 줄 거야? 아니면 목숨으로 사죄할 거야?"
나는 빙긋 웃으면서─ 손가락 끝에 [살별]을 모았다.
[마나 감응]이 아니더라도, 눈에 보일만큼 화려한 [살별]을.
*
르코는 집안 깊숙히 숨겨둔, [장부]를 꺼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내게 장부를 건넸다. 그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탐욕스러운 르코가, 자신의 목숨을 타인에게 맡길 리가 없으니까.
장부를 받자마자, 나는 [소유권]을 확인했다. 장부에 마나를 흘려보내자, 가장 먼저 보인 정보는 판매자에 대한 정보였다.
'발 로베르트'. 로베르트 공작가의 가주이다. 그리고─
"이거... 구입한 사람의 이름도 뜨네?"
"... 몰랐어요? 알고 그런 줄 알았는데."
"뭐, 이 사람이 판매자일 줄 알았지."
─구매자. 보통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지만, 단일 구매자라 그런지 이번엔 기록이 되어 있었다.
매매되는 아이들을 구입한 사람은 '칼리자르 베켄하임'.
─최종 보스였다.
이 정보가 [날개]를 타고 뻗어나간다면─ [절후회]는 이전에도 없던 큰 피해를 받을뿐더러, 주동자인 베켄하임까지 타격을 입을 것이다.
"... 그나저나, 어떻게 살아나신 거예요?"
"왜? 또 죽이게?"
"... 아뇨. 죄송합니다."
"그럼 나도 하나만 묻자. 너 총으로 사람 쏠 때, 남자는 머리 맞추고 여자는 심장 쏘는 거. 그거 버릇이야?"
그레이 백작 부인, 릴리, 아이리스, 그리고 방금 전에 샤를로트까지─ 르코는 여성을 쏠 때 심장을 노렸다. 머리를 노린 아버지만 유일한 남성이었다.
"아뇨... 전 원래 심장만 노리는 타입인데... 그때 그레이 백작님은 금속 케이스가 달린 목걸이가 있었거든요... 혹시라도 가슴을 쐈을 때 방탄이 될까봐, 그때만 머리를 노렸... 어요..."
"어라? 아버지─ 아니, 백작님은 목걸이 원래 안 하셨는데?"
"... 목걸이 케이스에 사진을 세 개까지 넣을 수 있었더라고요... 두 칸에는 이미 백작 부인과 플로라 씨의 사진이 채워져 있었고요."
"......"
남은 한 칸에는─ 날 채우고 싶으셨구나. 그래서 그날, 탐정사무소에 찾아온 건가.
그런 목걸이를 한 백작을, 딸이 죽였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아이리스나 르코가 그걸 챙겨서 떠난 거고.
"어떻게 했어? 그 목걸이."
"잘 처분했죠."
"...... 그냥 내 손에 죽자."
─난 피가 흐르는 르코의 허벅지를 강하게 때렸다.
***
"그래서─ 르코는 살려둔 채로 온 건가."
헤르카가 커피를 들이켜며 말했다.
"뭐, [장부]를 손에 넣기도 했으니까."
나는 퇴원한 루루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회복력이 높아서 그런가,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벌써 다 아문 상태였다.
"그대답지 않군. 이전에는 위협이 될 존재는 반드시 제거해야한다고 하지 않았나."
"진짜 정 때문에 살려준 거야?"
아니카가 옆에서 거들었다.
"... 아니. 그 녀석은 [생체 링크]를 쓸 줄 알거든. 분명 본인이 죽었을 때, 죽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남도록 손썼을 가능성이 높아."
만약 내가 르코를 죽였다면, 릴리든 샤를로트든─ [정보의 바다]에 내 존재가 알려졌을 것이다. 당연히 [절후회]에게도 전해지겠지.
"일단, 그대가 준 장부는 방금 막 라키에게 전했다. 이걸로 [절후회]에서도 르코를 숙청하려 할 테지만, 그를 살려두는 게 과연 맞았는지..."
"맞아! 샤를의 원수잖아!"
─정확히는 릴리의 원수지만.
아니카의 말대로, 르코는 릴리의 부모님과 릴리 자신을 해친 원수다. [생체 링크] 때문이든, 정 때문이든, 이 정도 조치는 자비를 넘어 호구짓에 가까울 정도─.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아는 르코는 굉장히 욕심히 많거든."
"그게 무슨 의미야?"
"누구보다 탐욕스러운 르코가, 자신의 목숨을 타인에게 맡길 리가 없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잠깐. 이건..."
단말기형 마도구를 보고 있던 헤르카가 읊조렸다. 내 예상이 맞다면, [정보의 바다]에 [장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등록된 것.
"벌써 [날개]가 작동했을 리가 없을 텐데...?"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온 정보에, 헤르카는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건 라키가 한 게 아니다.
["아마 [생체 링크]라도 되어 있겠지. 너가 죽으면 [장부]가 [정보의 바다] 같은 곳으로 등록되도록 말이야."]
"─자살한 거야. ... 르코는 이기적인 아이였으니까. 보복을 당할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지."
르코는 방금 죽었다. 그와 동시에, [생체 링크]를 통해 [절후회]의 약점이나 다름없는 [장부]가 세상에 공개된 것.
"라키한테 전해줘. 굳이 [날개]를 가동시킬 필요 없다고. 지금 같은 상황에, 굳이 우리가 단서를 줄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일부러 살려둔 거야...?"
아니카가 놀란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 기왕 복수할 거라면, 확실하게 이용해먹는 게 낫지 않겠어?"
나는 억지 웃음과 함께 말했다.
"... 거기까지 다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지. 너무나도 잘.
인정하긴 싫지만─ 탐정과 조수로서 같이 지낸 날이 얼만데.
"─설마 몰랐겠어?"
나는 가슴에 손가락을 얹고,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쩌면─ 릴리가 죽고 나서부터 가끔씩 느껴지던 흉통은, 르코의 배신에 의한 복수심과,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정에 의한 관용이 부딪히면서 생긴 환상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