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크 스트리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보육원. 부모를 잃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쉼터이자 안식처. 우리들은 원장의 부름에 아침부터 깔끔한 옷을 입고 강당에 모였다.
"이, 이 분께서는... 이제부터 너희들의 '아버지'가 될 분이란다."
보육원장이 긴장한 채 말했다. 보육원 아이들의 반 이상을 강당에 모아둔 상황에서, 원장이 소개하는 이는 다섯 거리의 실질적 지배자─ 칼리자르 베켄하임 공작.
"저 사람... 공작 아니야?"
"왜 우리들을 입양하려는 거지?"
"그것도 이렇게 많이..."
주변의 아이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강당 내에 맴도는 부정의 여론에 원장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한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여기 있는 아이들 대부분은 어른들을 믿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에게 배신당했거나─ 혹은 부모가 다른 어른에게 배신당했거나.
간혹─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도 있긴 했다. 그들은 보육원을 자주 방문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주었고, 그들에게 입양된 아이들은 행복해하며 가끔씩 우리들에게 안부편지를 전했다. 하지만─
저 사람은─
결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내일 새벽에 전부 공작저로 보내두도록."
"예, 옙...!"
베켄하임 공작은 우리를 물건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를 노예로 쓰려는 걸까...?"
레베카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마당에 풀어놓고 사냥할지도 몰라...!"
벤 역시도 걱정이 많은 듯했다.
나는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는 범죄자의 자식이라 입양될 가능성도 없었고, 보육원에서 평생 지내기엔 질린 참이었다. 공작가에서 노예 취급을 받든, 장난감 취급을 받든─
원래 내 아버지였던 사람보다는 낫겠지.
내 어머니를 죽이고 사형당한─ 그 사람보다는.
그래도 뭐─ 죽기보다 더 하겠어?
*
"꺄아악!"
레베카의 팔에 거대한 침이 꽂힌다. 거칠게 피부를 뚫고 혈관을 헤집는 주사바늘에도 그녀는 저항 대신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양팔과 양다리는 구속 되어있으니까.
"꺄아아아!"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레베카의 비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다음 차례인 벤은 내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벤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하나 같이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시끄럽거나 방해되는 아이들은 이미 저 구석에 조용해진 채로 쌓여있으니까.
공작저의 지하. 우리들은 저택으로 오자마자 '아버지'가 될 인간은 만나지도 못한 채, 사용인과 사병들에 의해 지하로 끌려왔다. 보육원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마론은 패거리들과 함께 바로 큰 목소리를 내며 저항했지만, 곧바로 목이 잘려버렸다.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본보기를 보여준 거겠지.
"으으... 아아..."
레베카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앞서 바늘이 꽂힌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이 되어버렸다. 아니─ 그냥 시체가 되었다.
그리고 레베카의 옆으로 보이는─ 어른들의 키의 두 배가 넘는 크기의 검은 돌. [마나 감응]을 통해 보았을 때, 레베카는 심장의 마나까지 전부 뽑혔고, 그렇게 추출된 마나는 전부 저 돌의 주위로 뿌려졌다.
"제, 제발... 사, 살려줘요...! 으아아─"
저택의 사용인들은 큰 자루에 레베카의 시체를 담고, 레베카가 누워있던 자리에 벤을 눕혔다. 그리고 이전에 했던 일들의 반복.
"끄아아아아아아!"
벤 역시도 체내의 모든 마나를 빼앗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마나로 둘러싸인 저 검은 돌은─ 예전에 아버지라는 인간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페톨리움.
통상의 페톨리움은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에너지원이지만, 제 역할을 다한 페톨리움은 마력을 강제로 해제하는 대(對)마도구가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비워진 페톨리움 주변에 새로운 마나를 억지로 뿌리고 있다. 그것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나로만 말이다.
"으으... ...... ......"
벤도 레베카를 따라 자루에 담아졌다. 이제는 내 차례구나.
"......"
난 별다른 저항 없이, 벤이 있었던 자리에 눕혀졌다. 무자비하게 찌르는 바늘 역시도 조용히 받아들였다. 바늘을 통해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게 느껴졌다.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려고 눈을 살포시 감은 그 때─
"─이건 쓸만하군."
베켄하임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습니까, 공작님. [악마의 병]은 차질없이 진행 중입니다."
"이 아이는 뭐냐. 혼자서 일백(一百)의 수량을 채울 듯한데."
"아, 이 녀석이 그 녀석입니다. 그─ 마법사의 아들 놈이요. 저번에 비도크의 식당에서 [마녀사냥]했던 마법사 말입니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덕분에 완성을 앞당길 수 있겠어."
... 저게 다 무슨 말이지? 마나가 빠져나가면서 사고도 흐릿해지는 건가? 왜 이해가 안 되는 걸까?
...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토록 원망했던 아버지가,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
... 앞서 죽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마나를 빼앗겼다.
이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 아빠. 엄마.
─이제 볼 수 있는 거지?
***
["이 병에 성수를 가득 채워오거라."
악마가 말했어요.
악마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조건으로, 소년에게 빈 병을 하나 주면서 과제를 제시한 것입니다. 만약 이를 시행하지 않을 시, 소년의 영혼은 악마에게 빼앗기고 말 거예요.
교회를 돌아다니며 성수를 아무리 모아도─ 병은 가득차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소년은 병의 밑바닥을 살펴보았는데, 미세하게 금이 가있었네요. 성수를 넣어도, 다 새어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악마에게 속은 걸 눈치챈 소년은, 화가 난 나머지 병을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난 병.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유리 조각들을 멍하니 살펴보던 소년은─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았습니다.
바닥에 나뒹구는 조각들을 전부 손으로 쓸어 담았습니다. 날카로운 단면에 의해 소년의 손에는 수많은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흘러나왔지만, 소년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걸음에 교회로 달려가─
비밀리에 숨겨져 있는 성수의 샘을 찾아─
병의 조각들을─
─전부 던져넣었답니다.
성수의 샘은 소년의 피와 악마의 병 조각에 오염되었고─
"소원을 이루어주겠다."
─악마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타났습니다. ]
"나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칼리자르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인들과 사병들을 다 물러나게 하고, 혼자서 저택 지하의 남은 채로. 그의 시선은 거대한 페톨리움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너지가 다 쓰인 페톨리움은, 오히려 주변의 마력을 강제로 해제한다. 아무리 마법을 퍼부어도, 다시 에너지를 채워넣을 수는 없었다. 마치─ 악마가 건넨 병처럼 말이지."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마나는 조금씩이나마 페톨리움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칼리자르는─ 이야기 속 소년처럼─ 페톨리움이라는 빈 병을 억지로 던져넣은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마나의 샘 속으로.
"일천(一千)의 아이들은, 고귀한 희생에 죽어서도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이다...!"
칼리자르는 전율했다. 그의 말마따나, 얼마 안 있으면 이 페톨리움은 죽은 아이들의 마나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아랫것들에 의해 흔들리는 권력 따위는 필요없다. 부와 명예가 아닌─ 힘으로 지배하여 군림하는 것만이─ 진정한 권력이 되는 것이니...!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거대한 [병]은, 존재만으로도 세상 모든 거리에 공포를 심어줄 것이다! 크하하하하!"
실성한 듯─ 한참을 페톨리움 앞에서 웃던 칼리자르는, 몸을 뒤로 돌렸다.
"로베르트 공작. 그리고 엘나스 추기경. 그대들의 공은 참으로 컸다. 덕분에 [악마의 병]을 만들 시간이 마련되었으니 말이지..."
칼리자르는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지하의 계단을 올랐다. 그의 야망은 얼마 안 있으면 실현될 테니─
"... ... 음?"
칼리자르는 위화감을 느꼈다. 주변시로 보이는 반짝임. 눈동자를 돌려보니, 왼팔에 감아둔 마도구가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건... 대체 왜..."
칼리자르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도구는, [세이브 포인트]였으니까.
[세이브 포인트]. 신성력을 이용해 만든 마도구로, 어떤 경우라도 죽을 운명을 한 번 회피하게 해준다. 뛰어난 성능만큼이나 제작도 어려운 마도구이고, 추기경 급 되는 신성력을 지닌 이들만 일생 동안에 겨우 1~2개 만들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다섯 거리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칼리자르 베켄하임 공작의 재력 정도는 되어야 지닐 수 있는 마도구인데─
지금 그 마도구가 작동하려 하고 있다.
"내가 곧 죽는다고? 어째서? 죽을 이유가 없는─"
그때였다.
지하에 들어오는 통로 쪽에서─ 순간적으로 섬광이 일었다. 고막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들'과 함께.
─엄청난 열과 압력이 지하를 향해 덮쳐왔다.
yes24, 북센, 알라딘에 검색하면 단행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것과 내용은 똑같고, 대신에 미공개 일러스트와 본편에 나오지 않은 설정 등의 내용이 추가된 굿즈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