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시간을 통해 충만해질 거라 노력했던 과거"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다'라는 느낌은 아마 나를 포함해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바랄 것이다. 충만함은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때 비로소 따라오는 것이라 여겼었기에 인정욕구가 가득했던 과거 자연스레 스스로 나아지기 위한, 즉 성장을 위한 시간에 높은 가치를 두었다. 성장 관련 영상을 늘 곁에 두고 살았고, 퇴근 후에는 필요한 공부를 하고, 운동을 통해 신체를 단련하며 계획한 하루를 완수하는 것에 만족해하며 젊은 시절을 충만하게 채워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상한 사람은 아니었던 터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게 원인일 수 있겠지만 그러한 노력 뒤에도 뭐랄까... 해소되지 않는 허함이 잔존하곤 했다. 아마 그즈음이 진정한 충만함과 그 출처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었다.
"잠시 작가의 배경에 대한 설명"
이쯤에서 나의 배경을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회사에 다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기숙사 생활을 이어가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잦은 연락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형태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주어진 과제나 외로움 등은 스스로 고민하고 이겨내는 게 습관인 사람이다. 사실 가족끼리 떨어져 지내는 게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경우도 아니었다. 또한 성인이 외로움을 운운하는 게 유난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물리적·심리적인 모든 문제를 능히 다룰 수 있다 여겼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사람이었다.
"가치와 상관없이 가치 있는 시간을 통해 얻은 충만함"
오래 잊고 있던, 그리고 스스로 정의하는 '충만함'에 가까운 경험은 출가했던 형제자매들이 부모님과 모이는 추석 연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가족은 조카와 강아지 포함 12명인 흔치 않은 대가족이라 모두 모일 때는 참 북적북적하다. 그럼에도 그 북적거림은 명절 연휴에 비해 유지기간이 짧곤 했는데, 시가를 가는 누나는 그렇다 치고 집에 붙어있도 될 형과 남동생조차 꼭 하루를 머물지 않고 돌아가버려 집은 금세 한적해지곤 했다. 그런데 그해는 유난히 길었던 명절 연휴 때문이었을까? 연휴 첫날 모인 가족들은 이틀을 꽉 채워 붙어지내며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계산 없이 경청하고 공감했고 주말에조차 안 자던 낮잠도 늘어지게 자며 말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낭비하며 보냈던 것 같다. 밀도가 낮았던 그 시간은 별안간 오래 잊고 지냈던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음을 상기시켰고 내 마음의 곳간을 꽉 채워두었다. 덕분에 연휴 다음 한주 동안은 그 무엇을 하던 마음에 허함이 없었더랬다.
"충만함의 출처와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것"
삶에서 성장과 성취는 의미 있는 관계로부터 세워진 토대가 있고 난 이후 가치가 더해지는 것 같다. 충만함은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성취하는 순간보다, 나의 그 순간을 함께 붙잡아 줄 관계에 있었다. 내 특별했던 순간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내 의견을 존중해 주는 누군가로부터 얻어내고 있었다. 소중한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고, 깨달음 이후 허함이 없던 한 주의 시간 동안 나에게 실제로 필요하며 현실적으로 가질 수 있는게 무엇인지 결론지을 수 있었다. 늘바라기에 꽉 찬 충만함은 벅찬 기쁨이다. 그 기억을 통해 얻은 '결여가 없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그 정도의 마음이면 나는 일상에서 나를 위해 노력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그들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붙잡아 주는 노력할 수 있다고 말이다.
+ 뇌과학적으로 나와 타인에 대한 뇌의 정보 처리 영역이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때문에 타인 존중은 곧 자기 존중과 유사하며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또 다른 생각"
가족과 같이 소중한 관계를 통해 내가 행복했듯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관계를 통해 삶의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혹은 어떠한 계기로 응당 누려야 할 이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이에 대해 나 개인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어떤 노력을 지속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