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주전자

by 뚜기 김윤숙

삶은 언제나 어떤 그릇에 담겨 흘러간다.

나는 그중에서도 막걸리 주전자다.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았다. 우리 집에는 대·중·소, 세 가지 크기의 주전자가 있었다.


어릴 적 아빠는 나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셨다. 내가 들 수 있을 만큼, 지금으로 치면 막걸리 두 병 정도. 그때 나는 샛노란 병아리처럼 귀여운 주전자였다. 내 곁에는 늘 막걸리 잔이 있었고,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였다.


엄마는 그런 나를 늘 깨끗하게 닦아주셨다. 엄마의 손길은 따뜻했고, 나는 그 속에서 빛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심부름길에 부딪혀 찌그러지고, 사람 손때에 물들어 억척스러운 인간미를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빠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다. 술과 담배로 건강이 악화되어 폐결핵을 앓게 되셨고, 그 후 나는 막걸리 주전자가 아닌 물주전자가 되었다.


- 소자는 밥상 위 물주전자

- 중자는 물 긷는 주전자

- 대자는 할머니가 아끼는 목욕용 물 데우는 주전자


내 친구 잔도 물 잔으로 쓰이게 되었다.

엄마는 그때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술이 웬수지, 네가 무슨 죄냐. 손에 익은 손때 묻은 주전자야.”

그 말에 나는 살 수 있었고, 살아남았다.


세월이 흘러 우리 집은 변했다.

서까래가 내려앉아 기와집은 기억 속으로 물러나고, 양옥집이 새로 들어섰다.

낯선 마당과 부엌, 새로 놓인 찬장에 그릇들도 하나둘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노란 찜통, 노란 냄비, 노란 주전자, 노란 잔이 들어와 우리 집에 눌러앉았다. 새로운 집은 낯설었지만, 그릇들은 서로 기대며 또 다른 세월을 함께 살아갔다.


삶는 용도의 소독 선수, 라면 끓이는 선수,

잔과 부딪히며 인간애를 나누던 선수.

그러나 건강에 해롭다는 말이 들려오자,

나는 다시 막걸리 주전자로만 겨우 살아남았다.


이제는 집이 아닌 식당에서만 나를 만날 수 있다. 스테인리스나 유기 주전자가 선호되는 시대,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더 맛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닳고 닳은 세월 속에서, 삶의 깊은 맛이 꽃처럼 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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