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찾는 평일 늦은 오후의 수영장. 탈의실, 샤워실, 수영장 등 마주치는 장소만 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 일정하게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 시간, 수영장의 풍경 같은 사람들. 수영장을 다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킥 판을 잡고 자유형 발차기 연습을 하다가 걷기 레인을 이용하는 분들 쪽으로 물이 잔뜩 튄 적이 있었다. 수영의 '수'자도 모르던 풋내기 시절이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께서 혼을 내셔서 굉장히 머쓱했는데, 그 일이 있고 다음 날 그분께 전 날의 일을 사과드리게 되면서 수영장에서 일별하는 얼굴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혼내신 아주머니, 그분과 늘 함께 오시는 다른 아주머니, 그분들의 앞뒤로 함께 걸으시는 분들께도 인사하게 되고, 같은 레인을 비슷한 시간에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 날은 비슷한 듯 약간의 다른 포인트가 있는 수영복을 바꾸어 입고 오신 분이 있어 속으로 '수영복을 바꾸셨구나' 생각했다. 말을 건넬까 말까 고민하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쳐서 넣으려던 말을 슬그머니 꺼내어 본다. "수영복을 바꾸셨네요, 잘 어울리세요." 기대 없이 꺼낸 말에 함박꽃처럼 피어난 얼굴로 기뻐하며 "어머, 알아보겠어요?" 하신다. 그 외에도 내색하진 않지만, 새 수모를 쓴 아저씨, 방학을 맞은 손주들을 데리고 함께 수영장을 찾은 할아버지, 한 달 전보다 눈에 띄게 실력이 늘어난 고등학생, 발차기를 하며 버둥거리는 내 앞을 보란 듯 첨벙거리며 지나가는 개구쟁이 초등학생까지. 비슷한 시간을 공유하며 면면하게 운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무심한 척 유심히 지켜본다. 한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되며 흘러가는 시간. 비슷한 때에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매일같이 마주치는 알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관용 속을 헤엄치는 기분으로 오늘도 수영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