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늘 미래에서 시작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말들이 반복된다.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이미 늦은 느낌이 들어요.”
처음에는 모두 감정의 문제처럼 보인다.
불안, 위축, 무기력, 이유 없는 눈물.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한 채
그저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라는 질문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늘
그 감정부터 묻는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순간에 더 심해지는지,
그 불안이 가장 크게
고개를 드는 장면은 언제인지.
그렇게 이야기를 조금 더 따라가다 보면
대부분의 감정 아래에는
비슷한 장면 하나가 숨어 있다.
선택 앞에 서 있는 모습.
누군가는
이미 정해진 길 위에 서 있었고,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숨이 막히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직 아무 길도 정해지지 않은 채
모두가 앞서 가는 것만 같아
뒤처졌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선택이 틀리면 어떡하죠?”
“지금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꿈이 없다는 게 이렇게 불안한 일인지 몰랐어요.”
이 말들은 겉으로 보면
진로에 대한 질문처럼 들린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늘 같은 마음이 있다.
틀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아이들이 힘든 이유는
마음이 약해서도,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라는 걸.
너무 이른 시기에
너무 큰 질문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감정을 다루다 보면
결국 선택의 문제로 흘러가고,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앞으로’에 대한 질문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마음을 먼저 본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이 왜 선택 앞에서
더 흔들리는지,
왜 청소년기의 불안이
유독 미래와 엮여 나타나는지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려 한다.
아마 앞으로의 글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자주 등장할 것 같다.
공부 이야기,
관계 이야기,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그 이야기들의 끝에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진로’라는 단어도 놓이게 될 것이다.
아직은
답을 건네기보다
질문 옆에 함께 앉아 있는 쪽이 익숙하다.
하지만 그 질문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이제 조금 분명해졌다.
나의 글은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들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을
조금 더 따라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