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길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확신 없이 걷는 시간에 대하여

by 담빛

선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선택 이후다.


막상 길을 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진다.


이게 맞는 걸까.
괜히 돌아온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건 아닐까.


확신이 생기면 움직이겠다고

말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확신을 찾고 있는 상태가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맞는 길’인지 확인하고 싶어 할까.

아마도 틀린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노력은 아깝게 느껴지고,
다시 시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가는 길이 맞다는

보장을 원한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완벽하게 맞는 길이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맞는 길’은
사실 결과가 좋아졌을 때

붙이는 이름에 가깝다.

성과가 나오고,
주변에서 인정받고,
스스로도 후회가 줄어들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 이 길이 맞았구나.”


하지만 그 말은
시작할 때의 확신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 위에

덧붙여진 해석이다.


대부분의 길은
걸어보기 전에는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걸어보는 동안에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떤 길이 맞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결과보다도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의 상태에 가깝다는 점이다.

나는 이 선택을
남의 기대 때문에 했는가,
아니면 나 스스로 납득했는가.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마음이

오래전에 떠나버렸는가.


조금 느리더라도
이 방향에서 배워가는 것이 있는가.


길이 맞는지는
속도가 아니라
내가 그 길 위에서

어떻게 서 있는지로 알게 된다.


계속해서 도망치고 싶고
자꾸만 남의 길이 부러워지고
매 순간이 억지로 느껴진다면
그건 방향을 다시

살펴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틀린 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불안은 종종
잘 가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흔들리는 자신을 보며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흔들림은
길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진지하게 걷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확신은 출발 조건이 아니라
걸어온 시간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선택이
경험과 고민을 지나며
점점 나의 이야기가 될 때,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이 길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 길을 견뎌냈기 때문에
맞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 길이 맞나요?”가 아니라
조금 달라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길을
어떤 태도로 걸어가고 있는가.


지금의 선택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조금씩 답할 수 있다면,
그 길은 이미
완전히 틀린 방향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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