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기대 속에서 선택할 때

내가 아닌 기준으로 살아본 시간들

by 담빛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자기 기준을 잃는다.


처음부터 없어서가 아니라,
조용히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 길이 더 안정적이지 않아?”
“그 전공이면 취업이 쉽다던데.”
“그 정도면 괜찮은 선택이야.”


이 말들은 대부분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더 쉽게 마음에 들어온다.


틀린 말도 아니고,
무책임한 조언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참고만 하려 했다.
‘그래도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준이라는 건
한 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바꾼다.


남의 조언이
내 생각처럼 느껴지고,
타인의 기대가
내 선택처럼 포장된다.


겉으로 보면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다.


조건도 나쁘지 않고,
주변 반응도 나쁘지 않고,
스스로를 설득할 이유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자꾸만 조용해진다.


설명은 할 수 있는데
납득은 잘 되지 않는 상태.


그 미묘한 감정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조금 더 무거워진 마음.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지치는 하루.
괜히 다른 길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순간들.

사람은 힘든 선택보다
이유 없는 선택에서 더 지친다.


힘들어도
“내가 선택했어.”
이 한 문장이 있으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면
작은 어려움도 크게 느껴진다.


남의 기대에 맞춘 선택은
처음에는 편하다.


혼나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괜히 모험하지 않아도 된다.


무난하다.
안전하다.
그래서 흔들림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정감은
내가 중심에 서 있을 때의

단단함과는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질문이 시작된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한 걸까.
아니면 그냥 괜찮아 보이는 답을 고른 걸까.

이 질문을 오래 미루면
겉은 멀쩡한데
속은 계속 흔들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사소한 계기로
마음이 크게 요동친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말 한마디에
유난히 마음이 쓰리고,
작은 실패 하나에도
자기 자신을 심하게 의심하게 된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가
일의 강도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준이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걸.


선택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
길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기준의 주인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을
유난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선택 앞에서는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이게 안전한가 가 아니라,
이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결과가 좋아 보이는가가 아니라,
내가 이 선택을 오래 견딜 수 있는가.

완벽한 선택은 없다.
후회 없는 길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는
내 생각으로 이 길을 골랐다고.


기준이 내 것이면
후회는 배움으로 남는다.


기준이 남의 것이면
후회는 자책으로 남는다.


우리는 완벽해질 수는 없어도,
선택의 주인은 될 수 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다음 갈림길에서는
먼저 나에게 묻는 연습을 해보는 것.

이 이야기는

그 연습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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