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서 근무하는 나는 금요일에 서울에서 회의가 많다. 내가 일정을 정해야 하는 경우엔 대부분 금요일을 선호한다. 금요일 정시퇴근 후 서울행은 고달프기 때문이다. 외부 기관에서 날 필요로 하는 회의가 금요일일 경우는 특히 고맙게 참석한다. 8월 입추도 지났는데 여전히 사우나 같이 푹푹 찌는 날짜에 서울의 공공기관에서 내게 회의 참석을 요청했다. 주소를 보니 내가 30년 전에 살았던 동네가 아닌가. 보통 회의를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데 이번 회의는 많이 기다렸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곳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회의를 마치고 내 머릿속에 그려둔 동선대로 움직인다. 우선 성당이다. 30년 전 이 성당은 부지만 있고 신자들이 새 성전을 건립해야 했다. 상가 지하에 임시 성당이 있었으나 그 동네를 떠날 무렵 완공이 되었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 내에 우뚝 서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미사 참례하고 기도한 일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성당에서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아버지 장례 미사 기억만 있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는 전공의가 떠나 진료와 수술이 어렵다. 2000년에도 병원이 파업을 했더랬다. 이듬해에 아버지는 근처 대형병원에서 눈을 감으시기 직전까지 완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황이 없었던 어린 나는 성당에 신부님께 아버지를 의탁해야 했다.
살던 아파트 동으로 가 보았다. 변한 건 없다. 보통 아이 때 살던 동네에 어른이 되어 가보면 좁아 보이는 게 보통이다. 살던 당시 20대 초반이었는데 지금 보니 퍽 좁아 보이는 데 신기했다. 뭐 변 한 게 있는지 기분은 어떤지 느끼기 위해 동 주변을 두 바퀴 돌아봤다. 별 감흥이 없어 오히려 서운했다.
30년 전 난 공군학사 장교로 입대해 3년을 원주에서 지냈다. 그땐 토요일도 근무해서 토요일 오후면 원주에서 서울로 와 집에 있지 않고 친구들 만나기 위해 나가 밤늦게 귀가했다. 일요일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침엔 TV 보다 점심 먹고 또 나가 저녁엔 들어오지 않고 바로 원주로 가'버렸다'. 군에 보낸 아들 걱정하고 반가워하며 주말을 기다리던 부모님은 머릿속에 없었다.
그리고 주변 공원 등 공공사업비가 투입된 시설은 더욱 정비되었고 길 건너 노후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으로 고층아파트 단지로 상전벽해했다. 그래도 감흥이 없다.
뭐, 그 동네도 내가 30년 만에 왔다고 반가워하지 않는 거 같다. 당시 내 나이보다 젊었던 어머니께 전화 걸어 오랜만에 와 있다 말씀드리니 궁금한 게 많으신가 보다. 어떻게 변했느냐 등 이거 저거 물으시고 우리 살던 집 옆집 주인은 아직도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도 그 집에 살았던 10년간은 좋았다고 하시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별로 와 보고 싶지 않다신다.
내가 감흥이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 집에서 대학도 졸업하고 공군 장교 생활도 했고 첫 직장을 다니게 되어 꿈이 컸던 시기임은 맞으나 내 인생에 첫 상실감을 경험한 기억이 있는 공간이다. 이후 내 동생은 나보다 먼저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네 식구가 모여 살던 우리 집은 어머니와 나만이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또 10년을 살았다. 물론 지금의 나도 결혼해 어머님과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다.
30년 전 살던 곳에서 우리 가족은 하늘나라를 비롯해 각각 다른 공간에서 자주 못 보며 살고 있다. 그 집 이후로 가족이 그렇게 흩어져 살게 되었다. 물론 이후 30년 동안은 참 열심히 살았고 정년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았고 어머니는 80대 노인이 되었고 동생도 아들을 낳았다. 네 식구 살 때보다 식구는 두 명 늘었다.
별로 감흥이 없었다지만 30년 만에 가본 동네가 며칠 머릿속에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동생이 살던 때를 그리워했던 거 같다. 그 집이 마지막이었으니 인제 서야 서운한 모양이다. 감흥이 없었던 것은 젊은 시절의 날과 밤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렸 던 기억들인가 보다. 젊었던 내가 꿈을 꾸며 '내 맘대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인생의 소중한 인생의 경험을 알게 해 준 곳, 30년 전의 그 공간은 감흥을 기대하며 대할 곳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를 보호해 준 공간이었다. 난 공간을 또 찾아가지 않겠지만 오랜만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자투리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