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당일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다. 지난해 12월 그리고 금년 2월 두 번 방문했을 때 으슬으슬한 추위와 부슬부슬 내렸던 비가 기억나 짐 꾸릴 때 우산부터 넣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감이 오지 않아 지인에 날씨를 물어보았다. 아침엔 쌀쌀하고 낮엔 덥다는 애매한 답이 왔다. 가벼운 트렌치코트와 최근 새로 장만한 울 블레이져를 런던에서 마수 하리라 마음먹고 넣었다.
늦은 오후에 런던 히드로 공항을 빠져나오니 역시 서늘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창밖의 런던은 서울에서 보냈던 지긋지긋한 여름 느낌은 아니었다. 최근 일 년 내 세 번째 방문한 런던은 날씨로 기대가 생겼다.
한국은 추석 명절 마지막 날이었지만 런던에서 일과는 9시부터 시작했다. 8시의 날씨는 좀 서늘했고 트렌치코트가 드레스코드로 적당했다. 우리가 3일간 상대할 부처에서 마련한 회의 장소는 런던 외곽이다. 대학 캠퍼스 느낌이 나는 연구기관인데 어떤 직원들은 패딩도 입고 다닌다. 회의를 마친 시간이 4시 무렵이어서 지인이 알려 준 한낮의 더위는 경험 못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공기도 시원했다.
다음날 회의 장소는 British Library 내 연구소였는데. 파란 하늘과 어울린 벽돌 그리고 붉은 이층 버스의 조화로 눈이 호강했다. 너무 날씨도 좋고 하늘이 푸르러서 기후변화 때문에 런던 날씨가 좋아진 건가 하는 무식한 걱정도 들었다. 회의 전 날씨를 소재로 아이스브레이크했더니 런더너들은 이 무렵 날씨가 좋다고 설명해 준다
3일간 회의도 좋았지만 날씨 때문에 연휴 반납을 런던이 보상해 준 느낌이다.
귀국을 못하고 다음 출장지가 말레이시아와 헝가리여서 토요일 이동을 해야 했다.
4시 비행기가 고맙게도 내게 런던에서 두말 오전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런던을 구경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 박물관'에 따라 박물관을 가 볼까 생각했는데
주말에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번화가 산책과 음반가게와 서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여유롭게 버스 타고 나가 Sound of Universe라는 음반가게를 들어갔다. 여러 종류의 중고 LP와 CD가 참 많았지만 내가 보고자 했던 아티스트 음반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브런치 시작 후 첫 소재가 런던이고 두 번째 소재가 Duran Duran이었는데 음반을 보니 많이 반가웠다. 물론 난 이 음반을 아직 가지고 있어 음반 가게를 나와 서점으로 향했다.
우리말 책도 읽기 힘든데 웬 서점이냐마는 요즘 꽂힌 작가가 Yaa Gyasi이다. 그녀의 Homegoing이라는 소설이 우리나라에 '밤불의 딸들'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다른 소설인 Transcendent Kingdom은 아직 없어 싼 가격에 원서를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대를 잔뜩 하고 Foyles 서점에 왔지만 K-서점처럼 구매자가 검색하는 시스템이 없어 직원에 문의했더니 당 매장엔 재고가 없고 다른 지점에도 없단다. 예약해 주면 나중에 찾아오라는 친절함도 있었지만 내겐 소용없다.
인제 공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숙소로 향하는데
이게 왠 Banksy숍인가. 들어가 봤더니 내부엔 입장료 받고 관람하는 전시장이 있고 그와 관련된 기념품을 파는 곳이었다. 기념이라고 10파운드 가격의 머그 컵을 사들고 나오며 Banksy는 벽화로 봐야 진짜지 생각하며 서둘러 튜브를 탔다.
과거 영국이 세계사에 두각을 나타낸 18세기 이후 세계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은 나라란다. 산업혁명의 증기기관은 너무 유명하고 기치, 전화기, 노트북도 다 영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과거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어려워져 살기 팍팍하단다.
그러나 Great Britain의 수도 런던은 여전히 따뜻했다. 문화 강국이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불쑥 찾아간 음반가게에서 휘적휘적 음반을 발굴해도 주인은 방문자를 위한 선곡에 몰두했었고 내가 찾는 책이 없어 실망한 나를 위해 "Where do you live?" 라며 그 책을 구해 주려 했다. Banksy 숍의 직원은 여기에서 돈 내고 보는 것보다 실제 건물에 있는 그림을 보라고 권했다. 관광객 모드인 내게 어디서 욌는지 물으며 화장실 필요하면 사용하라며 심장을 폭격했다. 세 번째 방문한 런던을 그리워하게 된 경험들이다. 이렇게 런던은 걸어다니도 넉넉해 지는 도시이다. 특히 가을이니 다음 런던 방문을 크게 기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