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 듣기를 시작한때는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이다. TV에서 원조 오빠인 조용필이 부르는 단발머리에 크게 매료되었다. 특히나 당시 생소한 전자악기의 '뿅뿅뿅'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쬐그마한 녀석이 주말 쇼 프로그램 매니아가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김수철 노래를 들으며, 음악은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편곡 그리고 연주실력이라고 음악 듣기 실력을 업그레이드했다. 중학교 입학해 영어를 배웠고 난 음악 듣기의 대상을 팝으로 확대해 영어를 활용했다.
참 많이 들었다. 그때엔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라이센스 발매가 불가한 19금 음악도 있었다.
Queen의 Bohemian Rhapsody가 대표적이다.
<Bohemian Rhapsody가 없는 Queen 4집 라이센스 음반>
그래서 주한미군 방송에서 주말마다 공개되는 American Top 40를 들으며 차트를 외웠고 19금 음악에서 자유로웠다.
1980년대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득 수준은 3,000달러에 이르지 못했고 1988년 올림픽을 치렀어도 South Korea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나라였다. 당시는해외는 팝의 르네상스 시대라 불렸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해외여행이 어려웠다. 심지어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에도 여권 받으면 안기부의 대공 교육도 있었다. 당시 친구 아버지가 미국, 영국, 일본 출장이라도 가면 친구들은 선물로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원판을 구해오시곤 한다. 저작권 개념 없는 우리들은 공테이프를 맡겨 원판 수록 음악을 떠 내었다.
1990년대부터 음반가게는 사라지고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한 CD의 시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 동안의 MP3로 음악을 듣다가 스마트폰에 탑재된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당시 음반가게를 생각해 보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음악 듣기 좋은 환경이었고 많이 듣고 장르별로 듣는 고수들도 많았다.
다시 1980년대를 돌이켜 보면, South Korea가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인기 팝스타들이 한국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변변한 공연장도 없었고 구매력도 낮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많이 들어도 직관 기회가 없어 갈증은 있었다. 마이클잭슨이 내가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6년이었으니 Billie Jean, Beat It 인기 이후 13년 만이다. 이것도 빠른 편이다. 내가 좋아했던 퀸은 로저테일러와 존디콘이 내한해 공연을 논의했으나 금지곡 문제로 무산되었고 주말 프로그램인 100분쇼에 얼굴 비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스타의 공연을 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레이프가렛, 에어서플라이, 둘리스, 보니엠, 빌리지피플 등 정말 한물간 스타들이 와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한몫 챙겨감을 경멸하기도 했다. 그래도 유료 관중이 많았다고 신문에 기사도 났다.
근래에 업무로 중부 유럽인 헝가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출장 기회가 많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재미있는 걸 자주 발견한다.1980년대 팝 르네상스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의 공연포스터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직도? 시간 내어 볼까, 목소리는 나올까 연주는 잘할까? 보는 사람이 있을까......
신기하고, 궁금하고, 아쉽고 참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포스터이다. 아니 요즘 세상에 온라인으로 광고하지 전봇대에 포스터는 뭐야... 하며 원시인 취급도 했다.
하지만 내 음원 스트리밍에는 여전히 이들의 음악을 플레이이스트로 넣어뒀다. '포스터'가 반가운 건 사실이다.
그 옛말 아버지가 방송국에서 찔레꽃 노래를 직관하시고 어머님께 자랑하시던 일이 떠 올랐다.
어렸을 적 어른들은 왜 가요무대를 보고 흘러간 옛 노래에 즐거워하시는지 이해 못 했다. 지금은 공중파의 언저리에나 들을 수 있고 본업이 아닌 근황 묻는 프로에 출연하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내가 살짝 보기도 한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훨씬 넘은 지금 난 그들을 올드보이로 귀환해 전봇대 포스터로 만나도 반가운 만큼 여전히 팬이 있음을 삶으로 확인했다. 그들은 말한다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음악을 듣는 팬이 있다면 노래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