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높았지만 평온했던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연주

by 레오

지난 4월,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레닌그라드)을 듣고 난 지휘자인 Jaap van Zweden의 팬이 되었다. 아니 그가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이었을 때부터 팬이 되려고 했다. 기본적으로 뉴욕필의 음악감독은 내게 상수이다. 그런 그가 서울 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니 얼마나 기대했겠는가. 그런 그가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 들어보지 못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들려주었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로 어수선한 시기에 12월 12일은 우리나라의 서울의 봄 출발점이고 서울의 봄의 배경의 날이니 사람들은 그런 부질없는 의미를 부여하는데 난 이날 하루 오후 8시만 기다렸다. Zweden 감독이 브루크너 7번을 공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자면 쇼스타코비치와 브루크너는 말러 음악과 함께 즐겨 듣는 작곡가이고 7번 교향곡은 서울에서 들을 기회가 없었다. 숨은 고수가 남들이 손대지 않은 걸작을 꺼내어 내게 주는 선물 같았다.

모처럼 추위가 매서웠지만 30분 일찍 공연작에 도착해 티켓 출력도 하고 어느 분이 이 음악을 들으러 오는지 분위기를 훑었다. 미리 지정된 좌석에 않아 무대를 보니 큼지막한 튜바가 뒤에 반듯하게 누워있다. 역시 부르크너 교향곡의 대편성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일부 플룻과 클라리넷 연주단원이 앉아 2악장의 주요 부분을 연습하여 기대감을 높인다.

브루크너 연주 앞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도 좋았지만 시간이 더뎠다.




인터미션 후 앞선 피아노 협주곡 연주자의 두 배는 되는 인원이 입장한다. 연습 소리도 크다. 악장이 들어와 조율하고 Zweden 감독이 아우라를 풍기며 지휘대에 선다.

1악장은 긴장감을 높인다. 현파트도 관악기 파트도 마음을 긁은 소리로 긴장감을 높이며, 교회 오르간 주자였던 브루크너가 연말에 1년간 지은 죄를 고백하는 순간처럼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2악장과 3악장은 부드럽고 모든 주자의 연주가 절제되고 균형감이 있었으나 가끔 브루크너 포즈로 "아, 지금 브루크너 듣는 중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연주였다. 세계적인 관현악단 로열콘체르트헤보의 호른 수석과 플루트는 대편성의 현파트를 절대적으로 압도할 만큼 브루크너 교향곡에 걸맞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4악장에서 Zweden은 과하지 않았으나 음악 자체가 웅장하나 평온한 연주였음은 기대와 달랐다. 음악 평론가들이 아마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혹독한 평가를 할 듯하다.




시골뜨기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인물자체는 무색무취인 브루크너는 사후 클래식 매니아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 브루크너 음악은 대편성이면서 아름다운 그리고 폭발하듯 하며 하느님을 향하는 균형감이 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가운데 3번은 바그너에 헌정할 정도로 바그너 추종자이고 음악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금수저 바그너는 '나잘난' 맛에 음악하고 예술한 사람이다. 난 브루크너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흑수저 브루크너를 지금도 응원하고 있다. 생전의 연주도 많은 비판을 받아 소위 말해 '뜨지' 못했지만 난 어느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를 연주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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