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탈하기로 한다
봄이 머무는 길이다 풍경이 따뜻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도시는 멀리있다 설렘도 잦아들고, 혼자라는 두려움도 조금씩 흐릿해질 무렵, 길게 늘어진 강줄기 옆에 두고 앉았다 볼에 스민 강바람이 포근하다
탈선 없이 올라온 봄의 단어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잎의 가슴을 만지고 바람의 피부를 쓰다듬다가 그동안 뒤에 숨어 있던 낯선 나를 만난다 서로 쑥스럽고 미안하여 어색하다 어느새 그림자가 점점 길러지고 저녁이 걸어오고 있다
집은 나를 놓치고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세탁기도 청소기도 밥솥도 모두 휴업 중이다 식탁에 놓여 있는 커피잔도 날 찾고 있을 것이다
고향 남당리, 보는 순간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나를 단숨에 알아본다 배 한두 척 오가고 노을이 깊게 물든 풍경에 지친 마음을 씻는다 쉴 사이 없이 울리던 휴대전화도 꺼두었다
달려오는 서녘 바람에 나무 냄새가 짙어진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을 마주한 풍경의 표지들이 눈 속으로 빨려들어 온다 머리는 말개지고 마음은 느슨해지고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이야기들 무릎 사이로 쏟아진다 이곳은 내가 숨기 좋은 곳, 돌아갈 곳이 있어 난,
아직 잠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