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나랑 옷 교환하러 같이 가줄 수 있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4시 이후에나 시간이 돼”라고 말했다.
“4시 이후는 시간이 너무 늦어
잠깐이라도 더 일찍 시간 낼 수 없어?”
“엄마,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그러자 엄마가
약간 상기된 말투로 덧붙였다.
“나는 내일 말고는 시간이 안돼.”
순간 뭔가 이상했다. 주객이 뒤바뀐 느낌.
“엄마 옷을 교환하는 거잖아. 내 옷을 교환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시간을 맞춰야지.”
엄마는 짧게 말했다.
“그럼 다음 주 수요일쯤에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흔들렸다.
'약속 다시 잡을까'
예전 같았으면 벌써 나를 끌고 가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나를 흔들지 못했다.
아니야. 내 일정이 먼저였어.
이번엔 내가 내 시간을 먼저 지키기로 했다.
황당했지만,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내 입장을 정확히 말했고,
내 자리를 지켰다.
누구의 감정에도 휘말리지 않고,
내 선택을
내가 승인한 하루.
이젠, 엄마보다 내 일정이 먼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