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
- 나에게도 딸이 생겼다.
충분히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
당시 나는 스물여섯 애송이 엄마였다. 아이를 잘 양육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PET(부모 역할 훈련)을 시작으로, YWCA에서 진행하는 부모 교육 과정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딸 고등학교 시절에는 헬리콥터 맘이 되어, 딸의 학교와 학원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딸이 대학에 진학 후 가족 상담학 공부를 시작했다. 아들과 딸은 대학 입시에서 나름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느껴졌다. 가족 상담 공부를 하면서 나의 불안이 아이들에게 흘러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부터 변해야 하는구나! 아이들에게 향했던 초점을 나에게로 맞췄다. 그곳에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 시간 외면했던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가계도를 그리며 나의 원가족에서부터 학습된 나의 부정적인 행동 패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나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한편으론, ‘TCI 기질 검사’를 통해 내 부모로부터 좋은 기질을 물려받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엄마 아빠가 내게 좋은 기질을 물려주셨구나"
부모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컸던 나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을 나가시는 성실함을 가졌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또한 엄마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환경에 굴하지 않는 강한 생존력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나의 원망 뒤에 깔려 있던, 엄마 아빠의 좋은 자원들이 하나둘씩 떠 오르기 시작했다.
상담사 수련을 하면서 ‘엄마를 원망하는 내담자, 불행한 결혼 생활의 원인을 모두 남편 탓으로 돌리는 내담자’ 등을 만났다. 마치 과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상담사 수련 동안 매주 자기 성찰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때로는 오장이 끊어질 듯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더 변화되고 성장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아픔을 딸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큰 원동력이 된 것 같았다.
7년의 상담 공부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상담 공부 전에는 일주일에 1~2회 정도 우리 집에 오시곤 했다. 집에 오셔서 살림도 도와주시고 점심 식사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사전 약속 없이 와서 헛걸음을 몇 번 하시더니 점차 발걸음이 뜸해지셨다. 처음에는 “공부하면서 애가 변했다”라며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어느새 비슷한 연배의 동네 친구분들을 사귀셨다. 함께 점심 식사도 드시고 나름 즐겁게 지내시는 것 같았다.
“엄마, 요즘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돼?”
“응, 오늘은 서윤이 할머니랑 산책하고 밥 먹느라 벨 소리를 못 들었어.”
이젠 엄마랑 함께 식사하려면,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 정도다. 요즘은 친구분 소개로 시니어 공공 근로 일도 함께하신다. 사람도 만나고 용돈벌이도 된다며 나에게 자랑도 하신다. 엄마는 원래부터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강한 생존력이 있는 분이셨던 것 같다.
‘그동안 나와 너무 융합돼서 가진 힘을 제대로 발휘 못 하셨을까?’
나에게 초점을 맞추며 변화되기 시작하니, 엄마도 변화되기 시작하신 것 같다. 작년 여름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등, 졸업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가운을 입은 딸의 모습이 더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졸업식장에서 내 또래의 졸업생이 박사학위 받는 모습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엄마도 우리 학교 박사 공부해, 엄마도 할 수 있어!”
“고마워, 나도 언젠가 도전해 볼게! ”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딸이 참 고마웠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대학 졸업 이후부터 혼자서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영특하게도 딸은, 스스로 제 살길을 참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먼저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딸도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갖는 것 같다.
“딸아, 엄마가 너를 너무 걱정하고,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 너의 결정을 존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 엄마는 이제 너의 선택을 믿고 응원하고 싶어. 너의 행복이 엄마에게 가장 중요해. 언제나 네 곁에서 지지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네 길을 걸어가길 바라. 사랑하고 축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