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 - 31일 차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환장들을 하고 먹어"
엄마는 음식 솜씨 좋기로 동네방네 유명하다. 그렇게 음식 솜씨 좋은 엄마는 방배동의 부잣집에서 오랫동안 일하셨다. 벌이가 일정치 않았던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는 그마저도 화투로 날려버리셨기에, 엄마는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다.
"아이고 젊은 주인 여자가 승질이 문댕이 같아. 그래도 다른 집보다 돈은 더 주니까, 너네들 다 공부시킬 동안은 참고 다녀야지. 그렇게 승질이 못돼도 어디서 그런 돈복을 타고난 건지.."
엄마는 한 번씩 넋두리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니들도 다 키웠고, 힘에도 부치고 이젠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서 오늘부터 안 가기로 했다. 주인여자가 오늘도 괜히 승질이 나서 나한테 악을 쓰고 난리를 치길래,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그 여자 앞에 집어던졌다. 내가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 이제 두 번 다시는 그 집 안 간다 "
엄마는 아주 넌덜머리가 난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부잣집 사모님의 친정엄마한테서 전화 연락이 왔다.
'내 딸이 성격이 그런 사람이니 아줌마가 이해하고 다시 와주면 좋겠다'는 내용인 듯했다.
또 며칠 후 이번엔 대단한 부잣집 사모님이 직접 엄마를 만나러 우리집 근처까지 왔다. '우리 아들이 왜 엄마는 음식도 못하면서 아줌마를 나가게 했냐고, 엄마가 가서 아줌마 다시 오게 해 달라'는 얘기를 전했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단호한 태도였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다시 와달라'는 전화연락이 왔지만 엄마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갈 것 같으면 애초에 그러고 나오지도 않았어. 그 집 두 번 다시 가기 싫다"
그 대단한 부잣집 사람들도 엄마음식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평생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할 일 없어 보이는 부잣집 사모님이, 엄마의 단호한 거절에도 몇 번을 다시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만의 비장의 무기를 가졌다.
자식들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오랜 세월 동안 사모님의 고약한 승질을 견뎌낸 징글 징글한 모성애도 위대하다. 자식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