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빌런은 있다.

빌런을 꼭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 말자.

by 고인물

한 군데서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고 이야기하는 내가 ‘어디든 빌런은 있다.’라는 글을 쓰는 게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많은 기업들과 협업을 하다 보니 웬만큼 이직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업들을 경험해 보고 협업하는 다른 직원들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여러 곳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다 보니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어디를 가든,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 그곳이 어디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사를 이직하는 경우를 보면 나와 맞지 않는 업무, 너무 많은 업무량, 많은 출퇴근 시간, 건강의 악화 그리고 조직 내의 트러블 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는 조직 내 인간관계이다. 조직 내 인간관계에서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난다.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왕따 문화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는 갈굼 등 정말 많다. 그리고 당신이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정도가 심하냐 덜하냐의 문제지 아예 없는 조직은 없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면 당신의 후입으로 학교후배가 입사했다고 생각해 보라. 당연히 다른 후배보다 한 번이라도 더 눈이 갈 수밖에 없고, 조금이라도 더 챙겨줄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다.

이런 조직 트러블 중 가장 문제인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갈굼이다. 마치 군대에서 선임이 의미 없이 후임을 갈구 듯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말들이나 행동을 한다. 이런 경우가 가장 큰 문제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런 빌런들은 어디를 가든 꼭 한 명씩은 있다.

어디에든 있다면 이제는 적응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적응을 한다고 해도 벽을 쌓는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결국 승진이나 인사고과나 회사에서의 불이익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싫어도 웃는 얼굴을 보이고 기분을 맞춰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빌런일수록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들에게는 약한 것이 특징이다. 강대강으로 밀고 나가서 이기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다. 분명히 가능성도 있다. 하지면 정말 쉽지 않다. 세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이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내 시선과 제3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현실은 아주 단편적이고 불공평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모든 것이 공정하고 공평하지 않다. 어느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말은 선거를 위한 투표와 지지 때문인 입발림뿐이다. 너무 비관적이 아니라는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한 대통령조차도 역대 최대의 부동산 사태를 만들어 낸 현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공평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된다는 사실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현실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다. 아니 오히려 희생량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인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빌런들은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는 이들이다.

일단 당신이 희생양이 되지 않아야 한다. 싫더라도 웃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 하기 싫은 운동을 해야 내가 건강해질 수 있듯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아주 가끔은 빌런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당신의 지원군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빌런에게 얕잡혀 보여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당당히 맞붙어 이기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런 사람 주위에는 나 대신 싸워 달라는 사람만 있다. 자신은 말은 못 하면서 남의 입을 빌려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빌런에게 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빌런은 이기기 위해서 꼭 싸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싸우지 않아도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기분을 맞춰주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빌런과는 벽을 쌓아 무관심하기보다, 맞붙어 싸우는 것보다, 조금은 비위를 맞추고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에 일상에서 찾아오는 빌런은 외계생명체가 아니다.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이가 아니다. 그저 그 역시 사회에서 피해 보기 싫어서 남들을 활용하는 비겁하고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나 역시 30대 후반 회사에서 싸움닭으로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었다. 내 뜻에 맞지 않으면 강하게 밀어붙였고, 싸움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냥 그때는 내가 정의이고 내가 하는 방법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몰랐지만 내가 빌런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굳이 싸울 일이었나 싶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었기 때문에 싸움을 했었다고 생각한다. 빌런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의 부족이었다.

빌런 앞에서 간이고 쓸개고 내놓을 것처럼 꼬리를 흔들라는 말이 아님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당당하게 빌런을 대하고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해라. 단지, 그 방법이 '강(剛)'이냐, '유(柔)'냐의 차이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리고 '강(剛)'보다는 '유(柔)'를 그 방법으로 활용하라는 말이다. 쉽지 않다. 젊은 시절 혈기를 쉽게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난 원래 이런 놈이야"라는 말로 피해 가려고 하는 마음도 안다. 하지만, '강하면 부러진다.'라는 말을 기억하자. 강할 때 강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늘 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당신이 빌런을 만났을 때 회피, 강함, 포기를 선택하기보다 유함을 선택하여 자신의 뜻을 이룰 줄 아는 그런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도저히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처음부터 안 되는 경우는 없다. 해보고 도저히 안 되는 경우라면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당신의 인생에서 아주 많은 빌런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 빌런들을 모두 무찌르는 것도 좋지만, 그 빌런들 중에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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