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1일

첫 출근!

by 고인물

사실 지금도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취업했을 당시에도 대학교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려웠다. 물론 충청권 지방대학을 나왔기에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만이 좋은 기업에 취업하던 시기였고, 지금은 많이 시들해진 듯 하지만 공무원이 되기 위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시기였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 연봉 2,000만 원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말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초봉이지만 당시 나의 심정은 그랬다. 그만큼 취업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요즘이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봉만 높아졌을 뿐! 단지 요즘과 가장 큰 차이점은 공무원의 인기가 조금 줄어들었다는 점 정도다. 그랬던 시기였다. 취업이 어려웠던 시기, 이력서를 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취업이었다. 지방대였기에 면접을 볼 기회도 거의 없었다.

첫 면접이 생각난다. 4학년 2학기 아직 졸업 전에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졸업 전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들뜬 마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들뜬 마음에 면접을 보러 찾아간 회사. 경기도로 기억한다. 차로 찾아가도 찾아가기 어려운 길! 넓은 벌판 위에 뜬금없이 있는 공장! 지금이라면 모 그럴 수도 있지 하겠지만,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고자 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이런 회사뿐일까?'라는 실망감에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아! 여기는 도저히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대로 차를 돌렸다. 더 좋은 회사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그러게 나의 첫 면접은 시작조차 못해보고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의 성장성과, 문화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회사의 위치와 외관은 크게 중요치 않았을 텐데 그렇게 시도조차 못한 내가 참 안쓰럽다. 그래서 그런가 그렇게 면접을 포기한 이후 다시 면접을 보기까지는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서류탈락이 지속되면서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졌다. 거기에 함께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하나씩 자신의 취업소식을 알린다. 점점 더 조급해지고 '나는 왜?'라는 생각에 더욱 자존감만 떨어진다. 취업준비는 변명이 되고 어느새 술을 마시러 다니는 것에 더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취업이 안되니 집에 있기는 눈치 보이기에 자꾸 밖으로 나간다. 돈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술이나 얻어먹으러 다니는 하이에나가 되어 있다. 나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탓하게 된다.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 "이 많은 일자리 중에 내가 일할 일자리가 왜 없는 것이냐?", "있는 놈들만 더 있게 만드는 세상.", "서울권 대학이 아니면 취업도 안 되는 세상." 등 온갖 이유를 갔다 붙여 내 탓이 아니라는 변명을 대기 바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나였다. 나를 먼저 돌아봤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그때의 나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아주 유명한 말을 해주고 싶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이다. 그 원인은 스스로에게 찾아야 한다고, 취업이 안 되는 이유가 부족해서라면 어떻게 하면 채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취업에 지쳐갈 때쯤 진탕 술에 취해 취업사이트의 10개 페이지에 모든 업체에 이력서를 냈다. 그전에는 자기소개서도 회사에 맞게 썼지만, 그런 건 사치였다. '어차피 떨어질 건데 뭘 하러 자기소개서를 쓰냐."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낸 이력서. 어떤 회사에 넣었는지, 아니 내가 이력서를 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기회가 없었던 면접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도 3개 기업에서 말이다. 참, 사람의 인생은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그렇게 보게 된 면접. 난 그중 2군데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2005년 3월 21일.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첫 출근을 하게 된 날이다.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는 기억이 난다. 여기저기 불러 다니며 신입사원이라고 소개를 하며 최대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였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어색함,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우왕좌왕하던 모습,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몰라서 말을 걸어줬으면 하는 기대감 그리고 이제 정말 직장인이구나 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서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에도 이상하게 느꼈던 구성의 부서였다. 이사가 3명, 과장이 1명, 대리가 2명, 그리고 나. 이렇게 총 6명이 하나의 팀이었다. 총 6명 중 과장님은 캐드를 전문으로 하는 분이셨고, 대리 중 한 분은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었다. 이 두 분 중 캐드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은 지금 부장님으로 캐드파트의 총괄을 맡고 계신다. 드라마에서나 회사를 봐왔던 나에게 조금은 신기한(?) 구성이었으나 당시에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느낄 정도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냥 마냥 신기하고 마치 군대 이등병이 처음 자대 배치를 받은 것처럼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신생부서였기에 기존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불쌍하다고 뒤에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제 신생부서로 체계가 잡히지도 않았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부서에 배정받은 것이 아마도 불쌍해 보였던 것 같다. 당시 그리고 지금도 회사의 주축인 부서를 배정받은 동기에게 나중에 들었던 내용이라 맞는 말일 것이다.(참고로 이 친구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날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20일도 아닌, 2년도 아닌, 20년 전의 일인데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날이 중요했던 날이었다는 반증이다. 어떤 이는 나와는 반대로 잊고 싶은 기억이 될 수도,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던 하루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같이 추억이라 할 수 있는 기억이 많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의 시작을 직장인으로 시작을 한다. 사업으로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비율은 굉장히 적다. 많은 사람들의 시작인 직장이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나중에 더 좋은 직장을 후배들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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