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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ug 30. 2022

나의 소신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지인을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브런치카페에 갔다. 혼자 있었지만, 반대편 테이블에도 한 여자분이 나와 똑같이 홀로 앉아 아아를 마시고 있어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에게 브런치 메뉴가 가득한 한 접시가 서빙되는 것이 아닌가. 마주 보고 있는 테이블이라 의도치 않아도 고개를 들기만 하면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왼손에는 폰을 들고 무엇인가를 보며, 남은 한 손에 든 포크로 식사를 야무지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 브런치 카페에서 '나홀로' 식사라니!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사실 기본 브런치 메뉴들은 살림 좀 한다면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을만한 것들이 많아서 (비록 맛은 동일하다 보장할 수 없을지라도), 특별한 솜씨 없는 나도 집에서 주말 아침에 종종 가족들에게 만들어주고는 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브런치 가게의 메뉴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에이, 내가 해 먹으면 훨씬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다.'라는 나름의 이유(라고 쓰고 핑계라고 읽는다.)로 굳이 약속이 있지 않으면 찾아가서 먹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곳에서 혼자 여유롭게 앉아서 커피를, 음식을, 분위기를, 햇살을 누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그 정도의 돈과 시간은 투자할 수 있다는 나름의 소신을 지닌 것이 아닐까? 그날 밤에 아이들을 재우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얼마 전 소신대로 사는 것, 또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세상이라는 친구의 토로가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인데, 생각이 많은 그녀 덕분에 '초'단순파인 나는 얼결에  일상적이지 않은, 꽤나 추상적인 단어 '소신'을 종종 떠올리며 그렇다면 나의 소신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소신'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나의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에 자괴감 비슷한 감정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소신(명사)
1.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

아무리 화가 나도 아이들을 그 무엇으로도, 심지어 말로도 때리지 말자.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아깝다고 '먹어서 치우는' 일은 하지 말자. 학원은 가까운 것이 장땡이다. 분리수거를 위한 봉지를 구입하지는 말자.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은 꾸준히, 변함없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을 정도만 하자. 아무리 고민해봐도 나에게 '소신'은 이 정도뿐이다. 이거 더 산다고 생기는 것은 맞나?라고 고민하던 찰나에 어느 책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해 읽으며 나의 생각을 한방에 표현해주었구나 싶은 것을 찾았다.

"Do No Harm."

의사들이 환자와 의술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제1원칙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이 나라의 국민으로, 지구에 사는 지구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딘가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좋지만,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해는 입히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한다. 현재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는 일을 넘어서서, 미래의 나와 가족, 지구상의 생명을 위해.

다시 한번, "Do no harm."

간단한 문장인데, 생각할수록 깊고 심오해지는 문장이라 수시로 되뇌어 보고는 한다. 하찮은 나의 발음으로는 정확히 딱 떨어지는 '두. 노. 함.'이 되어 뭔가 낯선 상자 이름 같은 어감이 되어버리기는 한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쓰던 물티슈를 아예 안 쓰는 것까지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종이 재질의 친환경 물티슈로 교체하였다. 배달음식은 일회용품이 너무 많이 나오니 최소한으로 이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비도덕적인 기업의 상품은 아무리 할인을 많이 해준다고 하더라도 구매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소소한 행동들이지만, 어디에서인가 나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한 명씩 있다면 그 힘이 모여 적어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지. 그리고 나에게 당장 내 자녀의 교육에 대한 강한 소신은 없지만, 나의 삶의 이런 노력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정도 그들의 삶에 배어들지 않을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 나의 소신을 묻는다면 비장하게 대답하리라. 두. 노.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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