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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pr 12. 2022

너는 참 무색이야

라이킷에 대한 상념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 동생과의 다툼이라고 해도 네 살 어린 동생이었기에 나 혼자 다다다다 퍼부어대고 끝나는 형국이었다. 남편과의 지난 10년간도 언성을 높이며 다퉈본 적이 없는데, 둘 다 그런 성향이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유형의 인간이라 극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조차 없었다. 작은 일도 털어놓으려고 하면 울음이 터져 나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다소 추잡한 상태가 되는 것을 알기에, 감정을 추스른 후에 필요한 이야기만 다듬고 다듬어 메시지로 주고받아 상황을 정리하고는 한다.

철이 들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쭉 그래 왔다. 친구들과 함께 무리 지어 놀다 보면 연령 불문하고 성향에 따라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감정 소모전이 생겼다. 갈등의 주요인이 된 친구들은 각자 자기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포섭하느라 눈물 콧물 짜며 마음을 털어놓았다. 양측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신이 아닌데 진실을 판단할 수도 없고, 사실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되기에(혹은 귀가 매우 얇은 편이기에) 어느 쪽도 비난하거나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양쪽 친구들과 모두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결국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은 내 몫이 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어느 한쪽을 선택을 해야 하는 애매하고도 유치뽕짝인 상황 속에서 밤마다 눈물짓던 10대 소녀의 감성이란...

대학생이 되어서라고 크게 달랐으랴.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또 결국 무리가 나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서로 얼굴을 보네, 안보네 하는 익숙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토록 버거웠던 일이 20대의 삶에서 유사하게 발생한 것에 기겁하며 일찌감치 뒤로 발을 빼고 도망쳤다. 무리의 진실게임에서 빠져나와 선후배와의 술 모임으로 바쁘게 지내며 인물관계도가 정리될 때까지 관망하고 있었다. 그래도 성인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나는 또다시 중간자의 입장에 서있었지만 비난받는 일은 없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서운했을 수도 있었겠다만, 내 몫의 고민은 아니었다.

"너는 참 무색이야."

그쯤 친했던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그는 학과 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나에 대한 칭찬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무려 20년 전에 들었던 말임에도 지금까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관계 안에서 고민해야 했던 나의 정체성을 규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나만의 신념이나 고집, 취향 그런 것이 내게는 딱히 없다. 굳이 찾으려고 해 보면 편식을 하는 정도? (물론 남편은 나의 편식을 가장 어려워한다. 회, 곱창, 족발 못 먹어서 미안.)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는데, 내게 와인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글을 쓴다고 알린 적이 없기에 글을 쓰라는 권유를 듣고 혼자 어찌나 놀랐던지. 남편과 1년 넘게 와인을 마셔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와인의 디테일을 잘 모르겠다. 함께 와인을 마시며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붙인 남편은 어떤 향이 나냐고, 어떤 맛이 나냐고 자꾸 묻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자세히 구분을 못하겠다. 나는 오감마저도 둔한가. 책에서 봐서 아는 몇 가지의 향기 '바닐라, 체리, 초콜릿' 등을 최대한 떠올려 비슷한 것을 찍어서 대답하고는 한다. 그럼 그는 혼자 갸우뚱하며 다시 향을 맡아본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을 뿐, 글을 쓸 수는 없겠다.

"너는 참 무색이야."

그 말을 들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색이 없다. 주변 비슷한 또래들을 보면 드라마에 홀딱 빠져 지내기도 하고, 배우나 아이돌에게 마음을 빼앗겨 소위 덕질을 하기도 한다. 혹은 요리의 고수가 되기도 하고, 자녀 교육의 달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그들의 열정이 참으로 부럽다. 그 무엇에도 마음을 다해 쏟지 못하고 맹숭맹숭하게 살아가는 나의 삶은, 아마도 나의 글에도 담겨있지 싶다. 다른 글들을 보면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지니기도 하고, 감수성이 가득하기도 하고, 혹은 위트가 넘치기도 한다. 내게는 그 무엇도 없다. 메말랐다고 하기엔 또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 싶지만 무엇인가를 가득 실어 드러낼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그런 나의 삶을 담는다.

정말이지 얼결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누군가가 나의 글을 내보이는 감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글에 대한 대단한 재능을 가진 자가 아님을 스스로 알고 시작했기에, 휴대폰으로 소소하게나마 울리는 라이킷의 알림기다리던 누군가의 연락을 받을 때처럼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글이 단지 누군가의 시간을 축내는 것은 아닐지,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는 것은 아닐지 계속 염려하며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글은 더더욱 무미건조해지고 있지는 않을지 고민이 된다.

나는 무색이다. 나의 글은 무색이다. 모두 자기만의 강렬한 색채를 지녀 다채로운 장면 가운데 잠시나마 눈을 쉴 곳, 무색의 어딘가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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