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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Sep 20. 2022

집 나간 그 녀석을 찾습니다.

-밥심으로는 안되겠니-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1박 2일로 시댁에 다녀왔다. 다음날 아침, 배 부분이 이상해서 옷을 들춰보니 불긋불긋 피부 트러블이 올라오고 있었다. 범위가 넓어서 어리둥절해하다가 잘 살펴보니 선이 그려지는 것을 깨달으며 싸한 느낌을 받았다.

'요놈, 또 기어 나왔구나.'

병원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라고 약을 한아름 처방해주셔서 품에 안고 왔다. 내 인생에 벌써 세 번째 대상포진이다. 처음은 정든 직장에서 옮기게 되어 마음의 준비를 하던 스물여덟. 그다음은 첫째에게 모유 수유를 하며 임신 전보다 7킬로 그램이 빠져서 초등시절 체중으로 돌아갔던 서른넷. 오랜만에 귀국했다가 내 몰골을 본 후배가 눈물을 애써 참아야 했다던 그 시절이다.

마흔둘에는 척추에 곱게 숨어있던 수두 균들이 줄줄이 줄지어 나올 만큼,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사연이 없다. 의사 선생님도 뭘 했길래 이렇게 되었냐고 해서 시댁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웃으며 더는 묻지 않으셨다. 사실 편도 3시간이 넘는 장거리라서 그렇지, 1박 2일 동안 8명의 설거지를 끼니마다 해야 하는 것 말고는 크게 무리할만한 일이 없었다. 이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2박 3일을 그렇게 하던 것을 1박 2일로 줄였기 때문이다. 아하하.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초장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입하여 수두 균은 쫓아낸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소화력과 체력을 덩달아 쫓아버렸나 보다. 학교 앞에서 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다가도 갑자기 쏟아지는 잠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마트에서 배송받은 2L 생수 6병 한 묶음을 현관에서 들어 옮기려다가 실패했다. 바로 한 달 전에도 양손에 하나씩을 들어 베란다에 옮겨두던 나인데, 이게 무슨 일인지.

지난 주말에 지인과 친척 결혼식 두 곳을 연달아 방문하고(모두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곱게 실려서) 이모네 집에 다 같이 모였다. 이미 체력이 방전되어 식사 후 다 같이 한잔하는 시간에 맥주 한잔 입에 못 대고 소파에 기대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모습이라 그런지 깨어난 나를 보고 다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이모들이 모두 한약과 온갖 좋다는 약을 이야기하며, 몸을 꼭 잘 챙겨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어쩌다 보니 60대 어르신들 앞에서 가장 약한 자가 되어버려 죄송스럽고 부끄러웠다.

아이들을 차례로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앉으니 또 잠이 쏟아져 한잠 자고 일어났더니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스스로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던 생활패턴을 갖게 되어 불만족스러운 요즘이다. 그런데 또 움직이려고 하면 에너지가 없다. 참 환장할 노릇이다. 할 일이 눈앞에 쌓이는데 조금 움직이면 눈부터 감기니 말이다.

요즘 내 상태를 들은 친구가 영양제 같은 건 뭘 먹냐고 물었다. 이 나이 되니 저런 질문은 잠시 긴장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새 어디 가지 치는 곳에 가입했나 의심부터 해야 하는 나이랄까.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정말 밥심으로 살고 있었다. 그 질문을 듣고, 친구가 챙겨 먹는다는 걸 들으며 내가 나를 방치해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때 나의 별명 중 하나는 '에너자이저'였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을 외치던 그 녀석처럼 지치지 않고 놀고, 걷고, 마셔댈 수 있던 나였다. 40대에는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으니 답답하다가도, 아 이렇게 한 살 한 살 먹어가는구나 한다. 50대에는 또 어떨까. 오 마이 갓. 이래서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말이 있구나 싶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은' 청춘이 아니라는 것을 차마 다 담을 수 없어 뒷 문장은 생략한 거겠지.

아이들 영양제를 찾는 정성으로 내 영양제를 찾아봤다면 벌써 구입했을 수도 있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다음 달에 둘째 녀석 유치원 체육대회니 뭐라도 하는 척이라도 하려면 뭔가 먹긴 먹어야겠다. 수두 균은 다시 숨어 들어갔는데, 체력은 어디로 숨은 건지.

몸에서 나가버린 내 체력 찾습니다.
그 녀석 찾는 법 아시는 분, 연락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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