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Jun 14. 2022

너와 나의 사랑의 언어

-feat. 유미의 세포들-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데, 아이들을 재울 때는 웹툰이 참 좋다. 웹툰을 보고 있으면 아이가 빨리 잠들지 않아도 화가 '덜' 난다. 보통은 읽는 순간 즐겁거나 슬프고 지나가는데, 이동건 작가의 "유미의 세포들(이상 '윰세')"는 달랐다. '유미'는 비교적 얼마 전에 경험한 나이의 삶과 고민을 담아내고 있어서 동일시의 대상이었다. 유미의 사랑과 이별, 특히 '유바비'('유바비'라 쓰고 '나쁜 XX'라고 읽는다.)와의 연애는 나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유바비에게서 연애하던 시절의 내 남편과의 닮은 점을 많이 발견하면서 더욱 애정을 가졌었다. 유바비가 다른 여자에게 옷을 벗어주는 일화를 보고 나서, 남편에게 한동안 절대 다른 여자에게 옷 벗어주지 말라고 뜬금없는 잔소리를 오밤중에 해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제 모르는 여자가 나한테 갑자기 잘해주는 건 내 장기 떼어가려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윰세 시즌1"이 드라마로 나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보게 되었다. 시즌 1에서는 '유미'와 '구웅'의 연애와 이별이 다뤄지는데, 남편은 끝까지 웅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나는 웅이파!"라고 외쳐댔다. 그들의 이별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남편에게 설명해주었다. 웅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웅이와 유미의 사랑의 언어가 달랐던 것이라고. 웅이는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으로 줄줄이 나열한 다음 고민되거나 애매한 단어들을 빨간 줄로 쭉쭉 지워내고, 한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 가운데 그것이 반복되었다.

Gary Chapman의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서는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이렇게 다섯 가지의 언어를 제시한다.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데, 위의 다섯 가지가 비중을 달리하며 나타난다는 것이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에게 서운함을 토로했을 때, 그는 화를 내며 "그래서 내가 너를 여기까지 장시간 운전해서 데리러 왔잖아!"라고 해서 정말 뜬금없는 반응이라 생각해서 어리둥절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였던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은 "난 여자 친구와 싸웠을 때, 손을 잡으면 마음이 다 풀려."라고 해서 그게 말이 되냐고 웃었었는데, 그는 스킨십이 주요 언어였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저 다섯 가지를 모두 표현하고, 받고 싶어 하지만, 내게 가장 우선순위는 '인정하는 말'이다. 나의 존재를, 나의 행위를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말이 필요하다. 거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더해지면 더욱 좋겠다.

아마도 유미의 1순위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회사에서의 보직변경에 대한 웅이의 언어적 지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SNS의 글에 대한 유바비의 언어적 칭찬에 감동했을 것이다. 사랑의 언어는 사랑을 지탱해나가는 중요한 코드가 된다. 자신이 느끼는 방식의 사랑이 채워지지 못하면 그 관계로부터 사랑의 충만함을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남편과 나는 언어의 1순위가 동일하다. 아니, 그것이 동일하기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동갑이지만, 특히 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는 존댓말을 써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주고받는다. 10년 넘게 지속해온 일이라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이것의 장점은 문자이기에 가려진 상대의 표정, 말투 같은 것이 경어를 통해 부드러움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자꾸만 나가서 일을 하고 싶었던 '나'라는 사람은 얼마 전에 또 채용공고를 뒤적이다 근처에 원서를 제출했다. 바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하고 나니, 현실적으로 내 아이들을 케어하는 부분을 고민해야 했다. 담당자분께 시간 조율이 가능한지 물었으나, 결국은 불가능함을 확인하고 면접을 포기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그래도 아직 나를 부르는 곳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그럼에도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내겐 여전히 허락되지 않는구나.'라는 허망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러저러해서 면접을 포기하고 저녁식사를 준비 중이라고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그러자 남편에게 온 메시지.

"멋진 도전이었어요!" 

내가 이래서 이 사람을 참 아낀다.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전 12화 나의 소신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