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Dec 23. 2021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작사가 김이나' 찬가)

우리 아이들은 AI 스피커와의 대화를 좋아한다. 성인인 내가 봐도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이 신기한데, 아이들은 오죽 신기할까. 종종 자신들이 궁금한 것을 묻고는 하는데, 막상 스피커는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잘 모르겠어요."라고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럼 아이들은 그 말 자체를 알아듣지 못하고 답답해하며 다시 질문을 해댄다. (아직 인격을 평가받을 정도의 불경스러운 단어를 아는 수준의 아이들이 아니기에 스피커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답답해하는 그 한 문장에 나는 뜨끔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장이건만 내게는 늘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나의 말은 나의 인격을 대변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말은 어떠한가?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나름 10년 넘는 세월을 학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쳤던 사람이기에 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고 하면 그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해지니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말을 할 때는 임팩트가 있어야 하고, 상대를 웃겨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무리수를 두어 단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을 해놓고는 하루 종일 곱씹어 볼 때가 많다. 그래서 말은 곧 인격이라는 말이 더욱 무겁다가온다.


한 방송사에서 잊혀진, 혹은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들이 이름을 찾기 위해 경쟁을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 2번째 경연이 제작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눈이 가는 것은 다만 가수들만은 아니다. '김이나'라는 작사가의 심사평은 그 내용 자체가 주는 따뜻함도 있지만, 그녀가 입 밖으로 하나하나의 단어를 내기까지 그 안에서 얼마나 단어를 벼르고 가는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쉽게 표현할 수 있지만 막상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외적인 젊음, 혹은 늙음도 그녀의 입을 거치면 소중한 가치가 된다. 시즌1에서 결국 우승을 했던(그리고 내가 응원했던) 가수 이승윤은 그녀의 말에 참 많이도 울었다. 내가 이승윤을 응원했던 것도 가창력을 넘어선 그의 언어적 감각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한 언어적 감수성을 갖춘 그였기에 김이나 작사가의 말은 그의 마음을 더욱 깊이 어루만져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단어를 선별하는 능력,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단어를 고르는 감각은 쉽게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많은 단어를 접하고, 또 이에 대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말하기 전 '한 번의 쉼'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고르는 시간이다. 나의 말이 전해져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거나, 상처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또한 나의 말로 인해서 기분 좋게 피식,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때, '참 따뜻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었지.'하고 미소 지을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인격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여유롭게 숨 한번 가다듬기를 연습해본다. (그동안 머리는 바삐 굴려야겠지만 말이다.)

이전 13화 너와 나의 사랑의 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