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과 그침[46]- 한시와 함께 하는 골프투어 7

미주(美酒)와 담소로 고뇌를 날려라

by 나승복

골프의 재미에는 라운드 후 살살 녹는 술맛과 박장대소의 분위기를 뺄 수 없다. 18홀이 끝났다고 하여 식사를 건너뛰고 바로 귀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늘집의 새참이 있었다 해도, 4~5시간 동안 초록필드에서 백구(白球)를 날리노라면 허기의 부름을 피하긴 어렵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옥반가효(玉盤佳肴)와 금준미주(金樽美酒), 호방한 웃음과 화통한 정담을 건너뛸 수 없기 때문이리라.


명나라 3대 문사(文士)인 양신(楊慎)의 사(詞)는 라운드를 마친 골퍼의 여흥을 한층 돋군다. 주흥(酒興)과 인향(人香)이 어울리는 곳이라면 한번쯤 애송할 만하다.


<임강선> 양신(명)

장강의 물은 도도히 동으로 흘러, 그 많은 영웅들이 파도에 사라졌네.

옳음과 그름, 성공과 실패, 모두가 고개를 돌려보면 헛된 것이거늘,

청산은 의구하고 석양은 변함 없이 지지 않던가!

백발의 어부와 나무꾼은 강가에서 수없이 세월의 변화를 보아 왔거늘,

한 주전자의 탁주와 함께 상봉의 즐거움을 나누며,

그 많던 고금의 세상사를 웃음과 정담에 부쳐 버리세.


<臨江仙> 楊愼(明)

滾滾長江東逝水, 浪花淘盡英雄. (곤곤장강동서수, 낭화도진영웅)

是非成敗轉頭空, (시비성패전두공)

青山依舊在,幾度夕陽紅. (청산의구재, 기도석양홍)

白髮漁樵江渚上, 慣看秋夜春風. (백발어초강저상, 관간추야춘풍)

一壺濁酒喜相逢, (일호탁주희상봉)

古今多少事,都付笑談中. (고금다소사, 도부소담중)


임강선(臨江仙)이라는 사(詞)와의 인연은 200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복건성 천주(泉州)시에 있는 회사로 출장간 적이 있었다. 고객과 회의를 마친 후 액자 안의 글귀가 보였다. 어려운 글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그 뜻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현지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중국사람들이 애송하는 사(詞)라고 소개하면서 한 구절씩 설명해 주었다. 그 순간 이 사(詞)가 주는 감동이 몰아쳤다. 귀국 전에 암송한 후 출장 선물로 간직해 오고 있다. 풍격 있는 술자리에서 이 사를 낭송하면 주흥(酒興)을 돋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곤 했다.


[Weihaipoint GC, 중국, 2017. 4.(필자 촬영)]


이 사(詞)에서 묘사하고 있듯이 라운드 후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정자에서 암향(暗香)이 넘치는 탁주에 화통한 담소를 나누며 박장대소를 즐겨보라. 거기엔 복잡한 인간사의 시비곡절이나 성공실패도, 그날 이루어 낸 버디 숫자나 드라이버 거리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것이야 말로 골퍼들이 라운드에 더하여 누리는 최고의 행복이리라.


위와 비슷한 행복의 경지는 이백(李白)의 “종남산을 내려오다 술잔치를 벌이며(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라는 시에서도 절절히 묘사되고 있다. “즐거운 대화 나누며 마음 편히 쉬고, 살살 녹는 술을 함께 드니 / 구성진 노래는 솔바람이 부르는 듯하고, 노래소리 다해 가니 은하수도 희미해지네 / 내가 취하니 그대는 다시 즐거워졌고, 그대와 나 너무나도 흥겨워 속세를 잊어버렸네.(戲言得所憩,美酒聊共揮 희언득소게, 미주요공휘 / 長歌吟松風,曲盡河星稀 장가음송풍, 곡진하성희 / 我醉君復樂,陶然共忘機 아취군복락, 도연공망기).”


이 시의 감흥이 넘치는 곳은 어쩌면 주말 골퍼가 속세를 떠나 초연히 당도한 해방구이리라. 하지만, 과도한 주흥(酒興)은 다음 날 숙취의 고통을 몰고 오니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도를 넘지 말지어다. ‘일취월장’이란 우스개 경구가 실감 나게 와 닿는다. ‘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류의 건배사들이 그 분위기의 풍격을 고상하면서도 운치 있게 만들어준다. 양신(楊愼)의 사(詞)나 이백(李白)의 시(詩)에서 한두 구절 정도 읊어 보면 어떨까? 주흥과 인향이 어우러진 분위기로 쉽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작자

✔ 양신(楊愼) : 1488~1559, 명나라 3대문사 중 1인

✔ 임강선(臨江仙) : 양신이 경치에 의탁한 서정사(抒情詞)

✔ 이백(李白) : 701~762, 당나라 시인, 시선(詩仙)

✔ 하종남산과호사산인숙치주(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이백이 도연명(陶淵明)의 영향을 받아 지은 전원음주시(田園飮酒詩)

한자

✔ 一壺濁酒喜相逢,古今多少事,都付笑談中 – 楊慎,

[일호탁주희상봉, 고금다소사, 도부소담중 – 양신]

한 주전자의 탁주와 함께 상봉의 즐거움을 나누며, 그 많던 고금의 세상사를 웃음과 정담(情談)에 부쳐 버리세.

✔ 壺: 주전자 호, 濁: 흐릴 탁, 都: 모두 도, 付: 부칠 부


● 다음 호부터는 “공자의 패션 가이드”에 관해 3토픽을 쓰고자 하며, 그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


골프는 클럽과 패션 스타일의 하모니를 요한다.
클럽은 과학의 도움을 받아 백구를 달랜다.
스타일은 자연을 무대 삼아 골퍼를 띄운다.
최고의 클럽은 골퍼의 최적 노력으로 숨쉰다.
최상의 스타일은 골퍼의 우아한 품격으로 빛난다.
둘의 하모니는 금상첨화(錦上添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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