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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섭 Nov 15. 2024

(소설) 모여드는 사람들(7)

현해탄보험에서 지펴 올린 사무직 노동운동의 불꽃

일주일 전이었다.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나 가는 상태에서 아직도 매듭 지워지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임원진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 문제의 핵심은 위원장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성대회를 일주일 앞둔 상태에서 그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은 다시 동화루에서 만났다.

“다른 준비는 대충 끝난 것 같은데, 오늘은 마지막으로 임원진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시다.”

순구가 아주 쉬운 이야기를 꺼내듯이 첫마디를 꺼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돌아가면서 이야기합시다.”

형석이었다. 그러나 역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먼저 말할게”

역시 형석이었다.

“나는 인사부니까 우선 결성총회에 참가하는 것도 문제가 될 테니까 나는 일단 제외해야겠지.”

“나도 말할게요. 나는 학교 다닐 때 기독교 학생 서클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신중을 기하려면 위원장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순구가 어렵게 말을 하고 나자 태수가 말을 할 차례가 되었다. 두 사람이 하기 어렵다면 결국은 자신의 차례가 된다. 

그러나…

“솔직이 내 지금 상황을 말할게.”

목소리가 잠겼다. 그것을 두 사람이 눈치챌까 봐 두려웠다.

“지난 1월에 모교 일반대학원 시험을 쳤거든…”

아무래도 말이 잠겼다. 신경 쓰였다. 두 사람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이었다.

‘이왕이면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얼마 전에 합격 통지를 받았어. 우리 부장이 해고되고 난 다음부터 준비했었는데…”

술잔을 비우고 형석에게 잔을 권했다. 여유를 가져야 했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내 인생에 대한 계획은, 대학원 졸업하고 학교에 계속 남겠다는 것이야. 물론 노동조합의 결성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필요하고 정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어.”

태수에게 형석의 잔이 곧장 왔다.

“2년만 연기해라.”

형석이 단호하게 말했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자 태수로서는 야속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형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이 야속하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노동조합 결성은 물 건너 간 이야기가 되는 데 어떡하겠냐?”

형석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나도 생각이 같아요.”

순구의 말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하겠다는 결정만 하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힘 있는 데까지, 정말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태수의 입이 탔다. 형석이 권하는 술잔을 천천히 들면서 태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검게 탄 주름진 얼굴과 해고된 관리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과 그 사람들과 함께 나눈 직장에 대한 장래, 우리의 장래에 관한 말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아니면 깨어질지도 모를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숱하게 다짐했던 평생직장의 건설이라는 장밋빛 미래…

‘그래 총대를 매자. 2년만 연기하자. 내가 한 나의 약속을, 사람들과 같이 좋은 직장을 건설하자며 웃고 울고 분노하면서 받았던 노동조합 가입원서에 대한 마무리를 짓고 떠나자.’

“그래, 내가 총대를 멜께.”(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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