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의 제국-150년의 경제전쟁
다음 날 아침 케인즈는 이른 시간에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런던의 매캐한 새벽 공기와는 달리, 도서관의 묵직한 오크 문을 통과하자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차분한 지적 무게가 그를 감쌌다. 킹스 칼리지 교수직은 그에게 학문적 자유와 함께 사색의 공간을 허락했다. 특히 이곳 도서관은 케인즈에게 단순한 책들의 집합체가 아닌, 시간과 지식이 응축된 거대한 우주와도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케인즈는 경제학 고전 자료들을 모아 놓은 낡은 서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인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곳이다. 오래된 책들이 풍기는 독특한 냄새와 함께 서가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아침 햇살을 받은 먼지 입자들이 춤추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가 흘렀다. 어제 톰슨 경위가 자신의 아내를 빗대어서 말한 '비합리적인 것의 합리성'이라는 말이 떠올라 케인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다시 그는 런던에서 연이어 벌어진 두 건의 잔혹한 살인,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있던 의미를 알 수 없는 은화를 떠올렸다.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암시가 아닐까? 케인즈는 자신이 너무 쓸데없는 일에 집중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케인즈는 익숙한 걸음으로 알프레드 마셜의 자료들이 있는 서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여러 권의 책 사이에서 마셜의 논문집 하나를 뽑아 들었다. 마셜이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간 육필 원고를 모은 것이었다. 마셜은 케인즈의 스승이자 위대한 경제학자였지만, 그의 이론으로 지금의 위기를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결국 마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라고 케인즈는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책의 중간쯤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집중해 읽고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오래된 종이 한 장이 페이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종이는 접혀있었다. 이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어'
하는 탄식과 함께 케인즈는 종이를 꺼내 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스쳤다.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마셜이 뭔가 발표하지 않은 비장의 이론을 숨겨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었다. 종이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종이를 펼치자 나타난 글자는 정갈한 필체의 이탈리아어였다.
'이탈리아어?'
퍼뜩 글의 맨 아래에 쓴 사람을 확인했다. '빌프레도 파레토(Bilfredo Pareto)'라는 이름 옆에 서명이 선명했다. 그제야 맨 위를 보자 마셜의 이름이 있었다.
'친애하는 알프레드'
종이는 다름 아닌 파레토가 마셜에게 보낸 편지였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케인즈는 파리 강화회의에 영국 재무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었다. 당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사용하는 외교관들과의 소통은 필수적이었다. 다행히 케인즈는 이튼 스쿨과 케임브리지에서 라틴어를 비롯해 이 세 나라의 언어를 배운 적이 있어 크게 도움이 된 경험이 있었다. 케인즈로서는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것이 읽는 것이었다.
다소 경건한 마음으로 편지를 펼쳐 든 케인즈의 눈이 첫 문장에서 멈췄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있던 잠수함의 엔진이 묵직한 시동을 거는 것처럼, 깊은 사유의 바닥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쿵'하고 때렸다.
"존경하는 벗이여, 나는 1790년 런던에서 벌어졌던 그 기이한 살인 사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음을 고백하네."
케인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790년 런던? 살인 사건? 그는 편지를 내려놓고 논문집의 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분명 마셜의 것이었다. 파레토의 편지가 마셜의 논문집에 끼어있는 것도 기이하지만 파레토가 오래된 살인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1790년 아담스미스 시대에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니.
케인즈가 편지의 첫 구절에 소름이 끼친 것은 자신의 시간에도 그의 관심을 끄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각각 다른 날 발생한 노동조합 간부 살해 사건과 웨스트민스터 시장 살해 사건이 자신의 뒷머리를 당기며 관심사로 떠오른 바로 그 시기에 파레토의 편지를 발견한 것이다. 왠지 단순히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그 답지 않은 비합리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신이 발견했다가보다 편지가 발견당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케인즈는 편지의 다음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편지 속에서 파레토는 1790년 런던에서 일어난 '토마스 크롬웰 살인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었다.
"크롬웰은 당시 런던 직물 시장의 선구자이자 혁신가였네. 그는 길드의 낡은 관습과 비효율을 타파하고, 새로운 대규모 공장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지. 1776년 출판된 국부론에서 아담스미스경이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네.
'사익'을 추구하는 그의 행위는 런던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아담스미스경의 예언대로 '공익'으로 인도되었네. 마치 양조업자, 빵집 주인, 정육점 주인이 자신의 사익을 추구한 결과 사람들의 저녁 식사가 마련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일쎄. 금이나 은과 같은 재보가 국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소비하는 노동생산물의 양이 국부의 원천이라는 아담스미스 경의 혁명적 발상은 크롬웰의 공장에서 실천되었네. 한 마디로 그는 아담스미스 경의 자식이었네.
그런데 말일세, 마샬. 그의 성공과 별개로 말일세, 당시에 민중들이 얼마나 괴로운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하지 않겠나. 내 기억에 괴팍한 천재 맬서스, 낭만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언 정도가 그나마 그런 고민의 한 자락을 붙잡고 씨름했던 정치경제학자였네. 공리주의자인 밀이나 공산주의자인 마르크스는 뒤의 일이지.
수많은 숙련공의 일자리가 사라졌을 것이네. 수백 년 이어온 길드의 전통과 장인들의 자부심은 산산조각이 났고. 길드 구성원들의 절망과 분노는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하네. 아마도 그들은 크롬웰을 비롯한 신흥 자본가를 탐욕스러운 괴물로,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는 악마로 여겼을 걸세. 아담스미스가 축복한 합리성이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그 비합리적인 상황을 그들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일세....
크롬웰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순간, 나는 누가 합리적이고 누가 비합리적인지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되었네.“
여기까지 단숨에 편지를 읽은 케인즈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파레토는 크롬웰의 죽음이 '효율성' 추구의 비극적인 결과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살인사건에 대해 파레토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효율성이 가져온 비극이라...' 생각하던 케인즈가 편지를 계속 읽었다.
"이런 사고의 과정 끝에 나는 크롬웰의 죽음을 합리적 개인들의 효용의 문제로 생각해 보기로 했네. 그의 죽음은 그 자신에게는 극단적인 비효용이지만, 그에게 원한을 품은 길드 집단의 장인이나 도제들에게는 극단적인 효용이라고 전제하는 걸세. 이 경우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로서는 매우 흡족한 해피 엔딩일 가능성이 높네(그러고 보니 벤담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군).
내가 이 사건을 집단적 저항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세. 현장에서 발견된,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석탄 조각도 하나의 근거이네. 석탄 조각에 새겨졌다는 이상한 문양은 100년 전 수사기록을 정리한 어느 법조인의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네. 두 개의 원이 서로 접하는 모양이었네. 과거 세계와 현재 세계가 만나 파열음을 낸다는 의미일까?”
케인즈가 편지 읽기를 중단하고 편지의 귀퉁이에 그려진 문양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두 개의 원이 서로 접하는 모습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파레토가 편지를 쓰다 말고 그린 것일 터였다. 케인즈는 문양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파레토가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케인즈의 눈에 마치 그것이 무차별곡선처럼 보였다. 에지워스 박스에 있는 수많은 곡선들이 이렇게 접하지 않는가? 그때 갑자기, 어쩌면 파레토는 이 문양에서 무차별곡선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케인즈는 다음 글을 얼른 찾았다.
"나는 이 문양의 의미를 해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했네. 하긴 이런 살인 사건을 통해 뭔가 대단한 통찰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 그러나 이 사건은 마치 어떤 불가해한 힘, 인간의 이성이나 정교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잔류물(residui)'이 작용한 결과 같다는 내 생각은 남겨 놓으려 하네. 인간의 행동이 언제나 합리적인 동기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나의 이론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었네. 그러나 이 사건은 내 사유 속에서 내 이론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네. 내가 내 한계를 실험하는 도구로 이 사건을 이용한다고 느껴질 정도네.
마샬, 나의 벗. 인간의 합리적 행위 이면에 숨겨진 예측 불가능한 충동, 혹은 불확실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장의 합리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이 불가해한 비합리성... 현재의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임을 고백하네. 그러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사람의 머리를 돌로 내려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네. 안 그래도 바쁜 자네에게 괜한 소리만 지껄여 미안하네.
1903년 8월, 자네의 벗, 빌프레도 파레토"
1903년은 시기적으로 보면 '효용은 측정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파레토나 제본스 같은 효용이론 대가들이 이를 극복할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다. 아담스미스 시대의 살인사건이 그의 관심을 끈 것도 그런 강박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1906년에야 파레토는 그의 저서 '소득분포법'에서 무차별곡선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효용의 크기를 몰라도 선호의 순서만 알면 된다는, 경제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개념이었다. 이 편지를 쓴 것이 1903년이라면 1790년 크롬웰 살인 사건에서 발견된 문양이 파레토에게 지적 영감을 줬다는 상상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읽은 케인즈는 편지를 바닥에 놓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낡은 종이에 담긴 파레토의 고뇌가 선연했다. 파레토의 지성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사건의 비합리성은, 어쩌면 케인즈가 씨름하고 있는 대공황의 비합리성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파레토의 편지를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고 케인즈는 도서관을 나섰다. 그 사이에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흐린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레토의 편지 가운데 '예측 불가능한 충동'과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유독 케인즈의 뇌리에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케인즈의 머릿속은 1790년 크롬웰의 살인 사건과 며칠 전에 죽은 노동조합 간부와 제이콥 모건 시장 살인 사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파레토의 편지 덕에, 150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세 개의 살인 사건이 이제는 단순한 우연을 넘어 어떤 고리로 연결된 느낌이었다. 1790년의 그것이 생산성 혁명의 격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쇄락한 기득권의 고통과 분노가 촉발한 폭력이었다면, 1934년의 그것은 시장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닥친 대공황의 그늘이 만든 폭력이었다. 통제 불능에 빠진 시장 시스템의, 예측 불가능한 충동이 빚은 비극이었다.
(목요일에 3화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