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의 제국-150년의 경제전쟁
며칠 후, 케인즈는 다시 런던 경시청 톰슨 경위의 사무실을 찾았다. 톰슨은 예상외의 재방문에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케인즈는 톰슨의 책상에 놓인 커피 잔과 쌓여있는 서류들을 보며 그가 이 사건에 매우 몰두해 있음을 짐작했다.
"케인즈 교수님, 경시청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뭐 좀 알아내신 게 있습니까?"
톰슨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의 말투에는 피곤함 속에서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막연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범죄에 대한 케인즈 교수의 독특한 접근 방식이 톰슨으로서도 흥미로웠던 것이다.
"알아냈다기보다는, 새로운 질문들을 가지고 왔네, 톰슨 경위. 특히 지난번 비교적 덜 중요하게 다루어진 노동조합 간부 살인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네만."
케인즈는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톰슨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서랍 속의 서류철을 꺼냈다. 사실 톰슨은 이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상부에 보고한 바 있었다.
"그 사건은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종결 처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자가 현장에서 잡혔고, 증거도 명확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논쟁을 원치 않는 듯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씨먼즈 브라더스 앤 컴퍼니 노동조합 간부 해리 도슨 살인 사건은 웨스트민스터 시장 제이콥 모건 살인 사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고, 대부분의 수사 인력은 모건 시장 사건에 집중되어 있었다. 종결 처리를 앞두고 있다는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케인즈가 물었다.
"체포된 범인은 누구인가? 동기는?"
"한 번에 하나만 물으시지... 범인은 해고된 공장 노동자 존 피터스입니다. 동기는... 그저 우발적이라고 본인은 주장합니다. 범행 당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추정합니다. 일단 그는 해고 상태였습니다."
톰슨은 상황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케인즈는 그저 눈을 감고 듣고만 있었다. 케인즈는 우발적이라는 말을 듣자 파레토의 편지가 다시 떠올랐다.
'우발적인 충동이라... 파레토는 예측 불가능한 충동이라고 했지...?'
그러다 문득 그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러자 톰슨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그는 어젯밤 사망했습니다."
케인즈가 놀라는 표정으로 톰슨을 봤다.
"교도소에 간 지 닷새만의 일입니다. 교도소장의 말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합니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그 옷으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제가 갔을 때도 달리 다른 수상한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 당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케인즈는 이를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문득 케인즈는 살인 사건에서 발견되었다던 은화가 떠올라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참, 이 사건에서도 모건 시장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은화가 발견되었다고 했었지?"
그걸 이제야 물어보느냐는 표정을 지은 톰슨이 자신의 책상 서랍을 다시 열어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케인즈에게 내밀었다. 봉투를 건네받은 케인즈가 반신반의하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은화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건..."
케인즈가 놀라 톰슨 경위를 바라봤다.
"네, 도슨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은화입니다. 모건 시장 시신 옆에 있던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케인즈가 은화를 꺼내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아직 흙이 묻어있었고, 가장자리는 마모된 낡은 1실링짜리 은화였다. 앞면은 조지 5세의 옆모습, 뒷면은 사자와 방패 문양이 새겨져 있는 평범한 은화였다. 케인즈가 톰슨을 힐끗 보자, 경위는 자세히 보라는 눈짓을 했다.
은화의 뒷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던 케인즈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은화의 뒷면, 사자 발톱 아래쯤에 지름 2mm 남짓한 작은 원 두 개가 나란히 접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두 원은 도려낸 듯 반질반질하게 깎여 있었다. 누군가 아주 정밀한 도구로 정확한 각도와 깊이로 조각해 넣은 것이 분명했다. 놀랍게도 이는 파레토가 그려놓았던 것과 같은 형태의 문양이었다.
"분석 결과 그 문양은 모건 시장의 시신 옆에서 나온 것과 동일한 곳에서 만든 문양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케인즈가 다급하게 큰 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모건 시장의 시신 옆에서 발견한 은화에도 같은 문양이 있었다는 말인가?"
톰슨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케인즈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문양은 파레토의 편지에서 보았던, 1790년 아담스미스 시대에 일어난 살인사건 현장에 있던 석탄조각에 새겨진 문양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케인즈의 반응을 보며 톰슨은 모건 시장의 시신에서 은화를 발견했을 때의 불길한 예감을 다시금 떠올렸다. 톰슨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톰슨으로서도 이는 이상한 사건이었다. 연속해서 일어난 두 개의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동일한 상징.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케인즈가 톰슨을 향해 말했다. 톰슨이 케인즈를 향했다.
"이 문양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나?"
"아직은 어떤 의미인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며 톰슨은 책상 위 지도를 펼쳤다. 톰슨이 펼친 지도 위에는 런던의 주요 상업 및 산업 지구가 표시되어 있었고, 두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점에는 붉은색 핀이 꽂혀 있었다. 그는 피로한 얼굴로 핀을 가리켰다.
"두 사건 현장 모두 금품은 손대지 않았고, 시신 옆에는 같은 문양을 한 1실링짜리 은화가 놓여 있었죠. 박물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봤지만, 어떤 가문의 문양도, 특정 길드의 문양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저 오래된 은화에 누군가 사적으로 새겨 넣은 것 같다는군요."
케인즈는 지도 위의 핀들을 번갈아 보았다. 노동조합 간부와 시장. 그들은 사회경제적으로 극과 극에 위치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는 은화와 그 위에 새겨진 문양뿐이었다. 문양은 두 개의 원이 한 점에서 위태롭게 접하고 있었다.
"굳이 박물관 전문가에게 물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양이 어느 시대의 문양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알아낼 수 없었을 뿐입니다. 저로서는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정도입니다."
케인즈는, 파레토가 마셜에게 보낸 편지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여전히 1790년 런던에서 벌어졌던 그 기이한 살인 사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음을 고백하네.'
케인즈는 150년 전 살인사건에서도 동일한 문양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편지의 한 귀퉁이에 그려져 있던 두 개의 원이 접하는 문양. 그리고 도슨과 모건의 살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은화에 새겨진 문양. 도대체 우연일 수 없는, 150년을 뛰어넘는, 문양으로 엮인 이 살인 사건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이야말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케인즈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케인즈는 천천히 은화를 뒤집어 문양을 다시 확인했다. 지름 2mm 남짓한 작은 원 두 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작게 새겨져 있는 문양. 파레토는 이 문양을 '과거 세계와 현재 세계가 만나 파열음을 낸다는 의미일까?'라고 추측했었다. 이제 케인즈에게 그 문양은 단순한 추측의 대상이 아니라 뭔가 깊은 비밀을 숨긴 상징이었다. 케인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야. 이건... 150년에 걸친 일종의 연쇄 살인일세, 톰슨 경위."
케인즈가 무의식적으로 마지막에 톰슨을 부를 때 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톰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50년이라니요, 연쇄 살인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
케인즈는 톰슨을 자리에 앉히고 파레토의 편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1790년에 일어난 토마스 크롬웰 살인 사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석탄 조각, 길드의 몰락 등 살인 사건 당시 영국 사회의 상황,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파레토가 마살에게 쓴 편지, 편지에 그려 넣었던 문제의 문양 등.
톰슨은 처음에는 케인즈의 이야기가 너무 황당하게 들렸지만, 은화의 문양이 1790년 사건 현장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말에 이르자 완전히 몰입했다.
"말씀인즉슨... 지금 범인이 1790년의 그 살인 사건을 모방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톰슨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섞였다. 케인즈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범인이 150년 사건과 관련 있는 자라고 가정해 보세. 아직은 단정할 수 없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모방을 넘어선 것이네. 나로서는... 이들은 150년 전의 사건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네"
케인즈는 은화의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두 개의 원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접하고 있다는 것이네. 1790년에는 길드와 자본주의의 접점, 그리고 지금은... 대공황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접점..."
"그럼 범인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겁니까? 어떤 것을 재해석하고 있는 겁니까?"
"글쎄, 범행의 악랄함을 감안하면 이는 일종의 심판 행위가 아닐까 싶네만."
케인즈는 창밖으로 비 내리는 런던 시내를 응시했다.
"이 가설을 적용하면, 수백 년 전통의 길드 입장에서는 자본주의는 어떤 불순한 요소 때문에 발생한 이물질이었을 걸세. 파레토의 표현을 빌자면 잔류물인 것이지. 그렇다면 이는 심판의 대상, 단죄해야 할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단죄의 명분이 분명하니 범행도 잔혹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늘날 벌어진 두 개의 살인 사건은 대공황과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겠지... 그러나 나의 가설이 맞다면... 아마 이들 역시 대공황이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떤 불순한 요소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 그들이 왜 이 두 사람, 하필 그 노동조합 간부와 그 시장을 살해했는가는... 아마도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조사하면 드러날 걸세."
톰슨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의 말씀은... 어떤 미치광이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말입니까?"
케인즈는 톰슨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물론 이건 내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의 신념은 의외로 잔혹한 측면이 있네. 자네가 말했듯이 비합리적인 것도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이런 짓을 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톰슨이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하나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일한 문양이 150년을 건너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자 케인즈는 톰슨을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그걸세, 톰슨 경위. 바로 그 연결점을 찾는 것이 지금부터 자네와 내가 해야 할 일이지."
톰슨은 흥미가 생긴 표정이었다.
"대략 추론이라도 해 보시죠."
"생각해 보게. 일단 두 가지 가능성 정도가 있을 수 있지 않나?"
"글쎄요... 우선 길드의 유산을 세대를 건너 이으려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을 수 있겠군요. 150년 전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가족이나 길드 회원의 후손 중 누군가의 범행이라는 가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매우 적절한 추론이군. 또?"
"글쎄요. 이번에는 교수님께서 해 보시죠."
가만히 톰슨을 바라보던 케인즈가 이윽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파레토와 관련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은 없을까?"
"그건...?"
"파레토의 편지를 나만 봤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게. 나보다 먼저 파레토의 편지를 발견한 누군가가 있다고 말일세. 그가 그 문양을 보았고, 우연히 그가 오늘날 대공황을 당시 초기 자본주의 상황에 빙의했다면 말일세."
"그렇다면 그가 자생적인 계승자를 자임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톰슨의 눈이 반짝이더니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캠브리지대학 고전 열람실에 출입한 사람의 명단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케인즈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그럼 우리 지금부터 함께 사건의 실체 안으로 들어가 볼까?"
톰슨이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피터슨 경사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보던 케인즈가 톰슨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난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봤으면 하는데,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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