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아서 브룩스

은화의 제국-150년의 경제전쟁

by 정섭

경시청이 캐임브리지대학 도서관 고전 열람실을 수색하기 위해서는 영장이 필요했다. 피터슨 경사는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수사보고서와 선서진술서를 작성한 후 치안판사에게 달려갔다. 피터슨이 나가자 케인즈는 런던 금융가 근처에 위치한 제이콥 모건 시장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 내부는 고전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고급스런 분위기였다. 부인은 응접실에서 케인즈를 맞았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로 인해 상실할 것들에 대한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케인즈는 자신을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라고 소개하고, 살인사건 때문에 왔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부인은 케인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케인즈 교수님?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님께서 살인사건에 왜 관심을 가지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궁금증이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은 케인즈가 부인에게 물었다.


“시장님께서는 생전에 도시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셨지요?”

“예. 대공황의 충격이 계속되고 있고, 도시에는 실업자들이 넘치잖아요? 남편은 공공건설이라도 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도로, 학교, 주택단지 등... 그러나 시의회의 절반 이상이 반대했습니다.”


잠시 말을 쉰 부인이 눈물을 훔치고 말을 이었다.


"반대하는 시의원들을 설득하느라 남편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밤낮이 없었지요. 그러다 그만..."


부인의 눈물이 다시 터졌다. 케인즈는 부인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부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케인즈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부인에게 보였다. 사건 현장에 있던 은화를 찍은 사진이었다.


"괴로우시겠지만, 이 동전을 혹시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이건... 1실링짜리 은화가 아닙니까?"


살인 사건 현장에 은화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세히 살펴 보시죠. 뒷면에 알지 못할 문양이 있습니다."

"!"


문양 이야기가 나오자 놀란 눈으로 사진과 케인즈를 번갈아 바라본 부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방으로 들어가 이내 돌아왔다. 부인의 손에 동전이 들려있었다.


"이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케인즈는 부인이 건제주는 동전을 손에 들었다. 두 번 볼 것도 없이 같은 문양이 새겨진 1실링짜리 은화였다. 케인즈는 저으기 놀랐다.


"혹시 어디서 났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가지고 오셨어요. 늦게 들어와서는, '밖에서 멀쩡하게 생긴 신사와 언쟁을 했다'라고 하면서 '그 자가 줬다'라고 하더군요. 문양이 있는 게 신기해서 따로 챙겨 놓았습니다."

"혹시 누구라는 말은 하지 않던가요?"

"아니요... 요즘 시의원 설득하러 다니느라 늦게 다녔고, 또 공공연하게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만 생각했죠."


실망하는 듯한 케인즈의 표정을 보던 부인이 말했다.


"이 은화가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까?"


케인즈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어서 조금 더 확인하고 있습니다."


케인즈는 은화를 돌려주고 집을 나왔다.


'은화가 살인사건 이전에 이미 세상에 나왔다!'


이 얼마나 대담한 살인자인가. 케인즈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케인즈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살해당한 노동조합 간부 해리 도슨의 집이었다. 그의 집은 동부 산업지구의 협소한 주택가에 있었다.


낡은 초인종을 누르자, 문 안쪽에서 느릿한 발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안경 너머로 창백한 얼굴, 굵은 주름이 깊이 새겨진 노인이 그를 맞았다.


“해리 도슨 씨의 가족 분이신가요?”
“그의 장인입니다. 누구신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부 교수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라고 합니다.”


노인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신문에서 본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그렇습니다. 사위분의 사망사건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보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유명한 케인즈 교수를 안으로 들였다. 집안에는 노인 외에는 없었다. 노인은 딸과 손주들은 모두 자기 부부 집에 갔고, 자신은 잠깐 다니러 왔다고 말했다. 작은 응접실은 창이 작고, 공기마저 가득 찬 느낌이었다. 먼지 낀 책꽂이, 낡은 가구와 함께 벽에 걸린 손글씨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임금은 권리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여러 장의 전단지와 회의자료 같은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 케인즈는 전단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전단지의 구호는 평소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짐작케 했다.


‘긴축 반대’,

‘임금은 최소한의 생계비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케인즈는 벽난로 앞의 의자에 조심스레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주장은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주장이군요. 노동조합 내부도 같은 의견이었습니까?”

“웬걸요. 이 때문에 위원장 로버츠와 크게 다투었다고 들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에서 사위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로버츠는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자고 했고, 조지는 그걸 굴욕이라며 분노했습니다.”

“사위분은 어떤 주장을 했습니까?”
“해리는 ‘임금인상이 없으면 빵도 없고, 빵이 없으면 도시는 무너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딸애한테 그 말을 전해 듣고 저는 해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원장과 대립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면, 그는 그만큼 압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혹시 사위분이 어떤 압력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건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한 노인은 뭔가 생각난 듯이 말을 이었다.


"다만... 내 딸이 한 말에 따르면, 해리가 죽기 며칠 전,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동업자 한 명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남편에게 지금 같은 불황에 임금 인상 투쟁은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라며, 제발 파업을 철회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어요."

"파업 철회를 설득하러 온 것이군요."

"그 사람은 임금이 높으니까 실업자가 생기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게 시장 질서라고. 그런데도 임금을 올리자고 하니 세상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이라고도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위께서는 어떻게 대답했다고 합니까?"

"해리는 끝내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업자는 순순히 그대로 돌아갔답니까?"

"네, 그 동업자는 결국 해리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혹시 그 동업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제 딸아이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던 케인즈는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은화를 찍은 사진을 꺼내 노인에게 보였다.


"혹시 이 동전을 혹시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이게 해리의 시신에서 발견됐다던 그 은화군요…“


사진 속 은화를 살펴보는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는 처음 봅니다만... 딸아이가 혹시 뭔가 알 지는 모르겠습니다.“


딸이 있는 자신의 집 주소를 건네면서 노인은 침통하게 말했다.


"내 나이 이제 65세인데, 우리는 꽤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51세의 케인즈는 65세 영국인 노인이 겪었을 삶의 궤적을 떠올렸다.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 태어나 10대에 방직공장에 들어가 실크틀을 돌렸을 것이다. 40대에 맞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군수물자 공장에 징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실업과 공장 폐쇄가 반복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집이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농촌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어쩌면 그는 퇴역군인일 수도 있다. 혹은 수공업자였을 수도... 지금은 일자리가 없을 것이고, 산업 노동자 출신이라면 폣병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사위는 조지 오웰이라는 소설가를 좋아했습니다. 해리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오웰의 소설을 읽고 감동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러더니 노동당이 31년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에는 더 급진적으로 변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있었죠."


케인즈 역시 탐욕스런 부르주아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급진적 혁명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케인즈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세력들이었다. 케인즈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전형적인 영국인 노인에게 한 마디쯤은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혼란이 지나가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날이 올 겁니다."


그날 밤, 케인즈는 자신의 서재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셜의 육필 논문 사이에 끼워진 파레토의 편지에 처음으로 등장한 문양이, 150년 후,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상에 나타났었다. 과연 그 자는 누구인가? 실체에 가까이 간 듯하면서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편, 저녁 나절에 캠브리지대학 고전열람실에 대한 수색 영장를 확보한 피터슨 경사 일행은 곧장 캠브리지대학으로 달려갔다. 사서의 안내를 받아 고전열람실로 들어간 피터슨 일행은 마샬의 논문을 열람한 기록부를 찾아 뒤지기 시작했다. 펜글씨로 쓴 이름들은 저마다 다른 필체였다. 가장 최근의 것에서 시작해서 열람부를 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사관들의 눈에 하나의 이름이 들어왔다.


"경사님, 여기 있습니다! 마샬의 논문집 열람부에 서명한 이름. 아서 브룩스!"


피터슨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가 보고 있는 열람부에 시선을 보냈다.


"아서 브룩스? 언제 열람한 것으로 되어 있나?"

"이게 날짜가... 재작년 3월입니다."

"2년 전이라고?"

"네."

"그렇게나 오래된 거야? 도대체 누구야?"

"아서 브룩스... 직업 란에... 아니 이럴 수가..."

"무슨 일이야. 직업이 뭐라는 거야?"

"경사님, 그게...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교수라고 적혀있습니다. 사실 그 이름으로 한 달쯤 전에 열람한 기록이 있는데, 설마 하버드대학 교수는 아니라 생각해서 넘어간 건데, 2년 전에 열람한 것이 또 있는 겁니다. 그 사이에 마셜의 논문집을 열람한 사람은 없습니다."


피터슨 경사는 열람자 명부에 눈을 박을 채 굳어버렸다. 하바드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왜 캠브리지대학 도서관에 와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마셜의 육필 원고를 열람했다는 말인가? 그는 즉시 톰슨 경위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도서관 밖으로 뛰어 나갔다.


(토요일에 7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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