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의 제국-150년의 경제 전쟁
그날 저녁 톰슨으로부터 '아서 브룩스'라는 이름을 전해 들은 케인즈는 킹스 칼리지 자신의 연구실에서 브룩스가 쓴 글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하버드대학 경제학과를 이끄는 아서 브룩스는 '더 네이션'에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대공황의 처방에 대한 논문도 꽤 여러 편이 있었다. 케인즈는 일일이 그 글들을 읽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자본주의 시장의 자기 정화 능력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워킹페이퍼가 놓여 있었다. 이 논문에서 브룩스는, 대공황의 원인을 정부의 개입과 노동조합의 비합리적인 요구로 규정하고 이를 불순물이라 정의하고 있었다. 그는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자세히 설명한 후, 그러므로 과잉생산은 있을 수 없고 시장은 완벽하다는 고전파의 주장을 반복했다.
이 논리에 의하면, 실업이 발생하는 유일한 이유는 임금이 균형임금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금을 낮추면 실업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대공황은 끝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케인즈는 아담스미스 이래 고전 경제학의 전통에 근거한 그의 '완벽한' 주장에 어떤 허점이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머리를 싸맸다. 그는 빈 노트에 이렇게 썼다.
'그는 과거의 경제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오늘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갖고 있지 않다.'
과연 그는 이 생각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불순물'을 처지 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일까? 케인즈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황이 야기한 이 혼란을 시장의 순수한 질서라는 시선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세계관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담스미스나 마셜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라는 강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미 아담스미스가 말한 그런 순수한 현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연구실 바깥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노크와 함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화가 던컨 그랜트, 그리고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가 샌드위치와 음료를 들고 들어섰다. 런던의 차가운 밤공기와 달리, 그들의 표정에는 케인즈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는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었다.
"자네 얼굴이 런던의 안개보다 더 창백해졌네. 며칠째 잠을 못 잔 모양이군."
포스터가 케인즈의 어깨를 두드리며 샌드위치를 건넸다. 포스터는 최근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소설이 성공하면서, 인간의 연결과 이해를 문학의 핵심 주제로 삼은 휴머니스트 소설가로 떠오르고 있었다. 케인즈는 한숨을 내쉬며 샌드위치를 받아 들었다. 포스터를 보던 케인즈가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기만 하면..."
하고 말한 후 뒷말을 잇지 못하자 포스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울프가 케인즈의 말을 받아 문장을 완성했다.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기만 하면, 파편화된 삶에서 벗어나리라!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언제 들어도 좋은 글귀야, 포스터"
케인즈가 포스터에게 말하고 짐짓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던컨 그랜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장검의 밤'에 정적들을 숙청하고 전체주의적 광기를 드러내고 있네.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과연 파편화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자 포스터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던컨, 한참 기분 내고 있는데 히틀러라니..."
그 말을 듣고 쑥스러워하는 그랜트를 보고 케인즈가 웃었다. 그랜트는 케인즈 뒤로 돌아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모두들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케인즈는 모두를 향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자 케인즈는 마셜의 육필 논문집에서 발견한 파레토의 편지와 그가 그 편지에 그려 넣은 문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케인즈의 말에 집중했다. 문양이 150년에 걸친 살인 사건의 연결고리가 된 것부터 아서 브룩스라는 이름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버지니아 울프는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손을 모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케인즈를 바라보았다.
"케인즈,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사람이 아니라 어떤 신념이 다른 신념을 죽인 것처럼 들려. 가장 위험한 것이 신념인 시대라니..."
그녀는 인간 내면의 그림자와 시대의 광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는 작가였다. 그녀는 최근 집필 중인 소설에서, 개인의 광기가 시대 전체의 광기와 맞물리는 모습을 그리려 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이걸 논리 살인, 혹은 신념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랜트가 불꽃이 타오르는 벽난로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런던의 암울한 현실을 담아낸 캔버스 위 그림처럼 깊고 어두웠다. 그는 최근 실업자들이 거리를 떠도는 풍경을 화폭에 담으려 했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긴 절망과 분노를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붓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논리 살인…"
포스터가 그 말을 되뇐 후 말했다.
"이런 시대에는 더욱 위험한 생각이겠군. 거리에는 굶주림에 지친 시위대가 넘쳐나고,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광기에 더해 여기 런던에서는 정체불명의 살인범이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공포와 광기가 논리라는 가면을 썼을 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네."
울프는 몸을 움츠리며 포스터의 말을 받았다.
"이젠 밤길이 무서운 세상이 됐어. 어제도 길을 걷다 시위하는 모습을 봤는데, 굶주림에 지친 그들의 눈빛이 잊히지 않아. 그들의 눈빛은 분노보다 절망이 더 커 보였어.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 같았어. 브룩스가 말하는 완전한 시장 논리가 그 절망과 '꽝' 하고 부딪치면 세상이 유지될 수 있을지, 두려워."
울프의 말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잠시 후 포스터가 케인즈의 책상 위에 쌓인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펼치고, 증권거래위원회를 설립해서 시장을 규제하고 있어. 하지만 자네 표현에 따르면 브룩스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모두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불순물'이 될 텐데... 그렇다면 자네도 안전하지 않은 것 아닌가? 자네의 이론도 그에게는 불순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들의 말을 듣는 케인즈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런던의 안갯속에 숨겨진 150년을 건너뛴 살인 사건이, 대공황이라는 시대의 불안과 미국의 정책 변화와 어떻게든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케인즈는 최근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경제학자는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경제학이 인간의 희망과 공포를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 이 순간 케인즈는, 언젠가 아내인 리디아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한 말을 기억해 냈다.
'케인즈, 그가 아무리 많은 숫자와 싸워도, 결국은 그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고민하는 사람이야.'
울프는 그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케인즈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역시 아내'라는 말을 덧붙였었다. 비슷한 맥락이었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에도 케인즈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톰슨이 아서 브룩스를 만나기 위해 클라리지스 호텔로 간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케인즈는 같이 가지 않았다. 톰슨이 혼자 먼저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케인즈의 생각이었다. 그를 사건의 관계자로 공식화하고 압박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 시간에 해리 도슨의 아내를 만나겠다고 했다.
브룩스가 런던에 있는 동안 머물고 있는 클라리지스 호텔 로비는 따뜻한 빛과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 앤티크한 가구, 그리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숙녀들의 웃음소리가 톰슨의 낡은 트렌치코트와는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이 공간의 완벽한 질서를 방해하는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스위트룸 문이 열렸다. 그를 맞이한 것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하버드 대학의 석좌교수 자리에 오른 아서 브룩스였다. 그는 실내임에도 흐트러짐 없는 쓰리피스 슈트 차림을 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빗어 넘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톰슨을 마치 자신이 연구하는 연구 대상을 보듯 훑어보았다. 브룩스는 톰슨을 거실로 안내하며 커피를 권했지만 톰슨은 정중히 사양하고 소파에 앉았다.
"런던의 살인 사건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경위님?"
브룩스는 톰슨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톰슨은 그의 태도에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서 브룩스 교수님은 저희가 수사 중인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십니다."
톰슨은 그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여유 있게 말했다. 그의 태도에 브룩스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중요... 참고인이라니, 흥미롭군요. 참고인이면 참고인이지 중요 참고인은 뭡니까?"
"용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참고인이라 그렇게 불러봤습니다."
브룩스가 코웃음을 쳤다.
"제가 무슨 사건의, 용의자에 가까운 중요 참고인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톰슨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해 온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피해자가 살해되었던 지난달 22일 저녁, 그리고 두 번째 피해자가 살해되었던 지난 5일 밤에 교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셨는지 말해 주십시오."
톰슨은 피해자들이 살해된 시각을 상기시키며 물었다. 브룩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누구고, 두 번째 피하자는 또 누군가요? 무슨 사건인지 정도는 말씀해 주셔야 순서가 맞지 않습니까? 너무 성급하신 것 같은데."
여전히 조롱하는 듯한 말투였다.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첫 번째 사건은 씨멘스 브라더스 노동조합 간부 해리 도슨 살인사건, 두 번째 사건은 웨스트민스트 자치구 시장 제이콥 모건 살인사건입니다. 그 두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십니다."
브룩스는 자신의 몸을 쭉 훑는 제스처를 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보입니까? 무슨 근거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더구나 난 미국 사람입니다."
톰슨이 일부러 억양을 높혀 문양에 대해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 문양!... 그 문양을 아는 사람이 브룩스 교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나 브룩스는 태연했다.
"문양이라니, 무슨 문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2년 전에, 그리고 석 달 전에 캐임브리지대학 도서관에서 알프레드 마셜의 육필 논문집을 열람하셨죠?"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왜요? 학문적 연구도 이젠 검열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톰슨은 가방에서 은화를 찍은 사진을 꺼냈다.
"이 문양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사진을 한참 자세히 살피던 브룩스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아는 체를 했다.
"어, 이거 파레토 교수가 쓴 편지에서 본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문양이 살인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은화가 두 살인 현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브룩스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몰랐습니다. 아, 그래서 제가 용의선상에 오른 거군요! 그렇다면 협조를 해 드려야죠. 죄송합니다, 이거."
브룩스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가만 언제라고 했습니까? 지난달 22일과 지난 5일이라고 했던가요?"
런던 사람 중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건이었다. 은화가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도 이미 보도가 되었다. 톰슨은 브룩스를 노려보면서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였다. 브룩스는 검지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생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띄엄띄엄 말했다.
"그러니까... 지난달 22일과 지난 5일이라... 지난달 22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고... 지난 5일이라면.. 아, 생각났습니다."
그러더니 톰슨 쪽을 향해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홀로 런던 시내를 산책했습니다. 영국에 오면 으레 하는 제 오랜 습관이지요. 특히 이번에는 런던의 실업자들을 보면서 제가 믿는 이론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확신했죠. 아, 그런데 불행히도, 저는 혼자 있었기 때문에 제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사람은 없군요."
브룩스는 이렇게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지난달 22일에는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있었을 겁니다. 케인즈 교수님의 논문을 검토하면서 씨름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밤 열 시까지 말이죠. 이것도 누가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증명해 줄 사람이 없겠군요."
브룩스는 완벽한 대답을 내놓았다. 빈틈없지만 또한 증명할 수도 없는 알리바이였다. 그러나 톰슨은 실망한 기색 없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케인즈가 물어보라고 한 질문이었다.
"브룩스 교수께서는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브룩스가 의외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톰슨을 빤히 쳐다보고는 또박또박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불순물'이라고 말씀하셨고요."
톰슨은 불순물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이 역시 케인즈의 주문이었다. 브룩스는 톰슨 맞은편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시장은 그 자체로 완전한 질서입니다. 불순물이 있으면 안 되죠."
브룩스의 푸른 눈에 섬광이 스쳤다. 그는 톰슨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케인즈 교수님은 정부 개입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망상에 불과합니다. 아담스미스 이래로 시장은 점점 완벽해졌고, 이론 역시 완벽해졌습니다. 시장은 자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톰슨은 지금의 혼란을 외면하고 전개하는 그의 논리에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일종의 시장에 대한 맹종, 혹은 시장이라는 신에 대한 맹목적 신앙, 일종의 광신이 느껴졌다. 수사관의 본능이 되살아난 톰슨이 불쑥 물었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지키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까?"
브룩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하는 기색이 지나갔다. 톰슨이 일어나서 문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다시 물었다.
"혹시 제이콥 모건 시장이 살해되기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모건 시장이 죽기 전에 그에게 은화를 전달한 것이 브룩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던진 질문이었다. 브룩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브룩스를 지긋하게 바라보던 톰슨이 모자 걸이에 걸어 둔 모자를 쓴 후 모자챙에 손가락을 얹어 인사에 대신하고 그대로 뒤돌아 방을 나왔다.
(화요일에 8화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