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부 드디어 밀산
##1921년, 다슈아이푸의 장쭤린
하얼빈에서 다롄까지 이어지는 철길은 동청철도의 지선으로 러시아가 부설했다. 이 지선 가운데,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점령한 다롄에서 창춘 구간은 남만주철도 즉 만철이 됐고, 창춘에서 하얼빈 구간은 중동철도가 됐다. 창춘 왼쪽에 위치한 만철은 일제가 표준궤로 개축하면서 창춘은 표준궤와 광궤가 만나는 곳이 됐다. 중동철도와 동청철도는 모두 광궤였으므로 창춘에서 무단장까지는 하얼빈에서 갈아타지 않고도 갈 수 있었다.
창춘에서 저녁 8시에 출발하는 무단장행 기차가 천천히 철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했다. 전용 객실인 특별실은 여섯 명이 탈 수 있었고 안에는 세면대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창가 자리를 서로 양보하다가 결국 정정화와 오상렬이 서로 마주 보고 창가에 앉고 정정화 옆에 김의한과 정섭이, 오상렬 옆에 박영만이 앉았다.
검문 없이 무단장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일행은 저으기 안도했다. 정섭은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만주 벌판을 바라보며 지난 몇 시간의 일을 되새겼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구한 일, 장쭤린의 군대에 발견된 일, 그리고 다슈아이푸에서 벌어진 뜻밖의 만남까지.
"정섭 동지, 괜찮소?“
오상렬이 묻자 정섭은 '괜찮다'라고 대답한 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상렬 동지야말로 괜찮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오상렬의 붕대를 감은 머리를 보던 김의한이 오상렬에게 물었다.
"오상렬 동지. 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을 해 보시오. 군벌인 장쭤린이 왜 두 분을 그렇게 각별하게 대접한 것이오?"
"우리 두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입니다. 아니 어쩌면 김의한, 정정화 동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섭은 빙긋 웃었고, 다른 사람들은 의아해하는 얼굴이 되었다.
"장쭤린은 우리 임시정부와 동농 선생을 각별하게 대접한 것입니다.“
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
"운도 좋았고요."
하고 말을 붙였다.
"김의한, 정정화 동지는 뭐고, 임시정부와 동농 선생을 각별하게 대접했다는 말은 또 무슨 말입니까?“
박영만이 물었다. 그러자 오상렬이 장쭤린을 만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상렬은, 정섭과 자신이 기차에서 뛰어내린 경위, 떨어진 후 자신은 정신을 잃은 일, 그리고 둘이 장쭤린 부대에게 발견돼 다슈아이푸 본부에 가게 된 일, '소청'에서 오상렬이 치료를 받은 일, 그리고 다슈아이푸의 접견실로 안내된 이야기까지를 흥미진진하게 했다.
"다슈아이푸는 만주 일대를 지배하는 군벌 장쭤린의 본부로 창춘 외곽에 있었습니다."
모두들 한편 간담이 서늘해지고 한편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오상렬이 이들 일행에게 한 다음 이야기는 이렇다.
접견실에 앉아서 긴장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중에 접견실 안쪽으로 연결된 문이 열렸다. 청회색 군복을 입은 4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섰다. 작은 키에 빛나는 눈빛, 그리고 날카로운 이마, 무엇보다 선비처럼 기품 있는 모습의 남자였다. 조선말을 쓰던 군인이 통역을 맡았다.
장쭤린이 말했다.
"펑톈군 총사령, 장쭤린이오."
정섭과 오상렬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인사를 하고 악수를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분들이라 들었소. 쑨원 대원수께서 각별히 존중하고 여러 가지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 나는 대원수와 뜻이 같으니 여러분은 내게도 소중한 손님이오."
두 사람을 교대로 본 후 장쭤린이 다시 말했다.
"여기 다슈아이푸는 우리 가족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펑톈군 총사령부라 할 수 있소. 다슈아이푸에 오신 걸 환영하오."
신해혁명 이후 각 성이 자체적으로 군과 재정을 장악했을 때 봉천성 독군으로 있던 장쭤린이 봉천성을 장악했기 때문에 장쭤린의 부대는 처음부터 봉천군이라 불렀다. 봉천의 중국 발음이 펑톈이다. 삼년전, 쑨원의 중화민국 정부가 장쭤린으로 하여금 만주 지역 세 개의 성을 관할하게 한 후 장쭤린은 동북 지역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동북 3성은봉천성, 길림성, 그리고 흑룡강성으로, 봉천성은 공업, 길림성은 상업, 흑룡강성은 북만주 초원의 농축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쑨원 대원수께서 조선을 동방의 아일랜드라고 하신 연설을 나도 감명 깊게 들었소. 만주 역시 일본군이 맹렬한 기세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어서 동북 3성을 지켜야 하는 우리로서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오."
장쭤린은 일본을 견제하는 여러 대책 가운데 북간도와 만주 일대에서 조선 독립군이나 무장 부대를 암암리에 묵인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쭤린에게 조선 독립군은 일종의 완충지대이자 일본과의 흥정에 필요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상렬이 장쭤린의 말을 받아 말했다.
"그러니 중화민국 정부도, 동북 3성의 지배자인 펑톈군도 만주에서 일본군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가 되는 셈입니다."
"바로 그렇소. 신해혁명 전에 우리 대원수께서 중국혁명의 대의에 급급한 나머지 중화민국 건국은 장성 이남에 한정하고, 만약 일본이 중국혁명을 지원한다면 만주와 몽고는 일본이 취하는 것도 좋다는 식으로 발언하는 바람에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소."
신해혁명 직전 쑨원의 이 발언은 일본의 만주 진출을 고무시킨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5.4 운동 등 민족주의 운동과 장쭤린 군벌의 방해로 일본의 독점적인 만주 지배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장쭤린이 말머리를 돌려 말했다.
"상해의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선생은 미국에 가 있는 듯하고, 국무총리가 이동휘 선생이던가요?"
오상렬이 답했다.
"이동휘 선생께서는 얼마 전 사임하시고, 현재 예관 신규식 선생께서 국무총리 대리로 행정부의 수반이십니다."
그러자 장쭤린이 갑자기 동농의 안부를 물었다.
"참, 동농 선생께서는 건강이 괜찮으십니까? 연세가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쭤린의 입에서 동농의 안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정섭이 깜짝 놀라 얼떨결에 대답했다.
"건강은 그런대로 괜찮으십니다. 그런데 동농선생은 어떻게 아십니까?"
장쭤린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신문으로 봤지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 아니오. 대한제국의 최고위직 관리가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을 하다니. 이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것만 해도 조선 사람들은 큰 자랑거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정섭과 오상렬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섭이 감회에 젖어 말했다.
"저희가 밀산을 가는 것도 동농 선생님의 밀서를 북로군정서에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동농 선생은 북로군정서의 고문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랑삼아 말을 붙였다.
"청산리에서 왜군 수천 명을 섬멸시킨 것이 북로군정서입니다."
장쭤린이 웃으며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군을 물리친 조선 독립군의 이야기는 나도 들었소."
뒤이어 오상렬이 김의한과 정정화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임무에는 동농 선생의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쯤 아마 창춘역의 시계탑이나 창춘역에서 가까운 찻집에서 걱정을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장쭤린이 놀란 기색을 했다.
"아들에 며느리까지?"
정섭이 얼른 답했다.
"두 분이 얼마나 용맹하고 독립 정신이 강한지, 국무총리 대리이신 예관 신규식 선생께서 두 분을 조자룡에 빗대시며 '도시 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장쭤린이 호탕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
"다른 분은 몰라도, 기회가 되면 동농 선생은 내 한 번 꼭 보고 싶소."
잠시 후 통역을 하는 군인까지 모두 장쭤린의 가족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탁에는 푸짐한 만주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장쭤린은 일행에게 술을 따라준 후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조선과 중국은 모두 일본이라는 적을 마주하고 있소. 부디 여러분의 뜻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라오. 건배!"
식사가 끝날 무렵 장쭤린이 러시아어에 능통한 장교 한 명을 불러 뭔가 지시를 했다. 통역하는 군인이 장쭤린의 지시가 뭔지를 전했다.
"총사령께서 창춘에 있을 여러분의 동료들을 모시고 창춘역 러시아 수화물 통관소장을 찾아가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장쭤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정섭이 통역하는 군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조선분 같은데 어떻게 펑톈군에 들어오셨습니까?"
자신의 고향이 충주라고 밝힌 군인은 정섭을 물끄러미 보더니, 자신은 조선인 이주민이었는데, 푸순 탄광 경비대로 취직했다가 펑톈군의 습격으로 포로가 된 후 자신의 선택으로 군에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외에도 만주 한인 청년 가운데 중국어가 능한 경우 현지 보증인이 추천서를 써주면 군사학교에 다닐 수 있는데, 2년 과정을 마치면 임관해서 펑군에 들어오기도 하고, 또펑군 정보과가 직접 신원 확인을 해서 통역관이나 서무병으로 채용하기도 합니다."
다슈아이푸 정문으로 나가니 검은 자동차가 앞에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봤던 러시아어 통역 장교가 차 옆에 서 있었다. 장쭤린이 오상렬에게 악수를 청하며 '부디 무사히 당도하라'는 인사를 전했다. 정섭도 그와 인사했다.
그들이 차에 오르고 러시아 통역 장교가 앞자리에 타자 차가 출발했다.
##1921년. 하얼빈행 기차 안
오상렬과 정섭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김의한이 말했다.
"장쭤린은 일본과는 협력하면서도 경계하는 미묘한 관계요. 표면적으로는 일본과 협력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일본의 간섭을 최소화하려 합니다. 우리를 도운 것도 일본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었을 겁니다."
정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쭤린은 만주를 자신의 영토로 여기고 있어요. 일본이 너무 깊숙이 간섭하는 것을 원치 않죠. 그래서 우리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은밀히 돕는 겁니다."
박영만이 말을 보탰다.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장쭤린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군벌일 뿐이에요.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일행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정섭은 이 복잡한 국제정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1920년대의 대한 사람들은 일본, 중국, 러시아, 심지어 마적들 사이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섭은 깊은 감동을 느꼈다.
정섭이 자신들이 기차에서 뛰어내린 다음에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정정화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며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야스카와가 장지앙하오에게 죽은 이야기, 김의한이 그 와중에 야스카와의 권총을 슬쩍한 이야기 등을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일행은 다시금 그들의 만행에 치를 떨며 공분했다. 한참 이야기꽃이 피었다 지나가자 정섭이 오상렬에게 물었다.
"무단장에 도착한 후 밀산 가는 길은 얼마나 멉니까?"
오상렬이 대답했다.
"무단장에서 해림과 호림을 거쳐서 약 160킬로미터 정도 되는, 긴 거리입니다. 완다산맥의 구릉지대와 침엽수림까지 넘어야 하기 때문에 마차를 타도 3일은 족히 걸립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겁니다."
자신이 왔던 길을 회상하며 오상렬이 덧붙였다. "특히 완다산맥은 마차가 없이는 넘어가기 어려운데, 이즈음에는 운이 나쁘면 진흙에 빠져 5일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러시아 국경 쪽 흥개호 방향의 오지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군의 순찰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정섭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 그는 북만주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현대에서 온 그에게 이 모든 것은 생소했지만, 동시에 역사책에서만 보던 독립운동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리고 또 달렸다. 하얼빈을 지나 무단장으로 향하는 그들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만주 땅은 그들의 뜨거운 독립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광활했다.
##1921년. 마침내 밀산
밀산. 동북 3성 가운데 하나인 흑룡강성의 동남부 우수리강 유역에 위치한 국경도시이다. 남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동북지역 최대 호수인 흥개호(興凱湖)가 바로 옆에 있다.
1889년 연해주에 거주하던 조선 농민 세 가구가 당벽진(當壁鎭)으로 이주해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후 1000호로 증가하였다. 1909년에 이상설의 부탁으로 이승희가 봉밀산 부근에 토지 12 팍지를 매입해 100여 호의 조선인을 이주시키고 이름을 한흥동으로 지었다. 대한제국을 부흥한다는 의미이다. 이승희는 농장과 학교를 세우고 대종교 분사를 설치하는 등 한흥동을 국외 독립운동 제3기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실천해 나갔다.
도산 안창호는 1909년 신민회 단원을 보내 심리와(十里洼) 지역 45만 평의 땅을 사 연해주와 조선의 조선인을 집단 이주시켰다. 이때 북만주로 간 2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정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산출한 농산물은 독립군의 군량미가 되었다. 봉밀산을 중심으로 항일 교육기관과 독립투쟁의 근거지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당벽진, 봉밀산, 심리와는 모두 밀산 구역에 속한다. 1913년 이동휘가 밀산무관학교를 설립해 총포술과 야전 및 공병 훈련을 실시했다. 밀산무관학교는 동림무관학고, 신흥무관학교와 함께 독립군 양성의 삼각편대를 이루었다. 밀산무관학교가 1920년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수백 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봉밀산과 완다산맥 일대의 소부대에 편성이 됐다.
야스카와와 장지앙하우의 조작으로 훈춘사건이 터진 후 이를 빌미로 일제 관동군 2만 명이 간도지역 80여 개 마을을 학살, 방화, 약탈, 파괴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이른바 간도참변이다. 이를 피해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 등 독립군은 3만여 명에 달하는 한인들을 이끌고 눈보라 속에 밀산과 우수리강 방향으로 이동했다. 완다산맥의 삼림지대를 넘어야 갈 수 있었던 밀산은 일본군의 추격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다. 이렇게 해서 밀산은 임시 피난촌 겸 무장 재편 기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밀산에 모인 독립군의 규모는 3,500명 정도였다.
밀산에 도착한 독립군은, 서일을 총재로 하고 김좌진을 참모부장으로 하는 북로군정서를 비롯, 홍범도를 총사령으로 하는 대한독립군, 지청천을 군정서장으로 하는 서로군정서 등 모두 12개 부대였다. 이들 독립군의 대표들이 한 차례의 예비회담과 두 차례의 공식회의를 한 결과, 2개 여단 6개 대대 18개 중대로 구성된 대한독립군단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공방 끝에 지휘권은 총재 서일, 부총재 홍범도, 그리고 참모장 김좌진의 삼두체제로 정해졌다.
오상렬이 아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김좌진 장군의 밀명을 받고 동농 선생에게 서찰을 전달하기 위해 떠난 지 벌써 15일가량이 지났다. 그나마 돌아가는 길은 이 지역을 지배하는 군벌 장쭤린의 도움으로 다소나마 빨라진 셈이었다.
하얼빈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일행도 객실 밖으로 나와 바람을 맞으며 인파를 구경했다. 창춘에서 하얼빈까지 달려온 기관차가 분리돼 '급수탑'이라고 써진 목재 건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새 기관차가 객차에 연결되었다. 꼬리 쪽에서는 화물차 일부가 분리되고 새로운 화물차가 결합이 됐다. 이러느라고 기차는 꽤 오랜 시간 하얼빈 역에 서 있었다.
출발을 알리는 안내와 함께 기차가 다시 출발했다. 지금까지 동쪽으로 왔다면 이제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일행이 무단장 역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오후 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창춘에서 출발한 지 13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기차가 가쁜 기적 소리를 내지르며 무단장역에 미끄러져 들어가자 유연탄이 내뿜는 하얀 연기가 승강장을 뒤덮었다. 붉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시계탑이 9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창밖으로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선로를 정리하던 러시아 노동자가 “Муданцзян(무단장)!” 하고 외치자, 객차 문이 덜컥 열렸다.
오상렬이 모자를 눌러쓰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북만주입니다.”
일행은 호각 소리에 떠밀리듯 플랫폼에 내렸다. 회색 벽돌 본관의 현판에는 ‘牡丹江驛’이라는 검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역무원이 들고 다니는 초록색 램프빛이 증기 사이로 어른거렸다.
역 밖으로 나서자 개썰매처럼 이어선 대여용 마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부들은 붉거나 초록 천을 채찍대 끝에 매달아 요금을 표시했다.
오상렬이 요금표를 훑어보더니 능숙하게 중국인 마부 하나를 불러 세웠다.
“밀산, 다섯 명, 하루 2원 반에 말 두 필, 마부와 먹이값 포함.”
둘이 뭐라고 옥식각신하더니 오상렬이 돌아와 말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소. 밤도 늦고 밀산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마부도 채비를 해야 한다고 하오. 오늘은 무단장에서 눈을 붙이고 내일 출발합시다."
일행은 조선인이 운영하는 신흥여관에 방 두 개를 잡았다. 주인은 오상렬과는 면식이 있었다. 목욕통은 공동으로 사용했지만 온돌로 난방이 되는 여관이었다. 긴 여정에 지친 일행은 저녁으로 가게에서 사 온 만두로 요기를 하고 씻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먼동이 트자 멀리서 송유관의 증기가 하얗게 솟아올랐다. 새벽 작업을 하는 철도노동자들의 고함과 기적 소리가 교차했다. 여관 주인에게 미리 알려서 만들어온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자 잠시 후 마차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밀산까지 3일 일정을 하고 선금으로 마차삯을 치르자 마부는 등불 아래 지도를 펴고 밀산까지 여정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런 다음 최근 조선 독립군이 밀산에 집결해 인근 일본 헌병대의 감시가 심해졌다는 사실, 어제저녁에도 붉은 완장을 찬 일본 헌병대가 마차 대여소를 뒤졌다는 사실 등을 알리고 일본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에 가까운 흥개호로 우회해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흥개호는 경치는 좋으나 진흙 때문에 고생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역 사정을 대략이나마 아는 오상렬이 그렇게 하자고 한 후, 일행은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일행이 마차에 올라타자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 깊은 곳에는 3일간 여정에 대비한 약간의 장작과 비상시를 대비한 덮을 거리와 돼지고기를 말린 육포 등이 있었다.
첫날 이들은 무단장에서 약 40km 떨어진 해림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림에는 역참이 있어서 말을 먹일 수 있었다. 다만 왜군이나 펑톈군 순찰이 있을 수 있어 일행은 숲에서 내려 숨어있고 마부만 가서 말을 먹이고 빵과 온수를 사 들고 왔다.
빵으로 요기를 한 후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해 저녁 무렵에 랴오닝 기슭의 호림에 도착했다. 호림까지 마차는 주로 보급로로 조성된 임도를 따라갔다. 화강암 바위 절벽과 침엽수로 가득한 길은 자칫 길을 잘못 들면 돌아오기 어려운 길이라고 했다.
랴오닝 기슭의 호림은 완다산맥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깊은 숲속은 5월이지만 속이 덜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마부가 말들이 내일 랴오닝 고개를 넘으려면 오늘은 쉬어야 한다고 하면서 익숙하게 숙소를 찾았다. 숙소라고 해야 벌목하는 인부들이 막사로 사용했던 통나무 오두막이었다.
솔향이 짙게 밴 오두막에 들어선 일행은 불을 피운 후 해림에서 먹다 남은 빵과 마부가 건내 준 육포로 간단한 요기를 했다. 깊은 산이라 해는 빨리 떨어졌다. 오두막 구석에 쌓여있는 짚 더미를 끌어와 바닥에 깔고 마부가 비상용으로 준비한 담요까지 꺼내 잠자리를 본 후 일행은 오두막 벽에 기대앉았다. 가운데 피운 모닥불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보였다.
정섭이 모닥불을 나뭇가지로 뒤적이며 말했다.
"오상렬 동지, 이런 속도로 가면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요?"
오상렬이 힘없이 대답했다.
"별일이 없다면 모레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상렬이 마부에게
"일본 헌병대나 경찰은 대개 언제쯤 순찰을 옵니까?“
하고 묻자 마부가
"여긴 워낙 깊은 곳이라 보통은 거의 오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조선 독립군과 피난민이 이동한 뒤로는 기병들이 간혹 오긴 합니다."
문틈 사이로 달빛이 들어와 통나무집 바닥을 비췄다. 밖에서는 가끔 말이 콧김을 내뿜으며 발굽을 두드리는 소리가 타닥타닥 났다. 그 소리에 정섭은 자신이 너무 먼 곳에 있다는 감상이 몰려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둥근달이 뜨고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감상에 젖어 있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났다.
일행은 산짐승이나 왜병에 대한 대비를 위해 불침번 순서를 정한 후 잠에 들었다. 모닥불을 피워두고 외투를 입은 채 짚 더미 위에 누워 담요를 덮으니 추위는 막을 수 있었다.
새벽안개가 침엽수로 가득 찬 숲을 감싸고 있을 때, 일행은 호림을 떠났다. 한참을 가던 마차가 섰다.
마부가 소리쳤다.
"흥개호 북쪽 늪지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가야 합니다. 늪지대가 마차의 무게를 버티지 못합니다."
일행은 내려서 걸었다. 발밑이 질척거렸다. 자작나무 사이로 스며든 물기가 바닥을 늪지로 만들어 놓았다. 마부는 마차 안에서 나무판자를 꺼내 늪지 위에 놓아 길을 만들었다.
"뗏목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일본 순찰이 가끔 지나갑니다. 우회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일행은 늪지를 조심스럽게 건넜다. 그렇게 그들은 해가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해가 질 무렵, 흥개호 남안에 도착했다. 멀리 우수리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너머가 러시아 땅이었다.
"밤에는 물길 구분이 어렵습니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부가 말했다.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일행은 농로를 따라 밀산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농부들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평범한 시골길이었다. 러시아 국경 초소를 우회하기 위해 산기슭으로 돌아갔다.
"일본 헌병들이 이쪽까지는 안 옵니다. 국경 지역이라 러시아인들과 마찰도 있고, 완다산맥을 넘는 일이 보셨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점심나절쯤 마침내 밀산 현성이 보였다. 오상렬에 의하면 밀산은 작은 성곽 도시였지만, 무기와 정보가 오가는 독립운동의 요충지라고 했다.
마부가 감격에 겨워 외쳤다.
"도착했습니다. 저기가 밀산입니다."
정섭은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진짜 독립운동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1980년, 평양, 대동구역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일어나 대문 쪽을 바라보는 김의한의 얼굴에 불안과 분노가 교차했다. 당번 학생은 귀가한 뒤였다.
"누구십니까?“
엄항섭이 큰 소리로 물었다.
"김동철입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김의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현은 긴장한 채로 할아버지와 요시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선생님, 급한 일이 있습니다. 문을 열어주십시오.“
대문밖에서 김동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김동철의 다음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요시오 선생도 함께 계실 겁니다. 모두 알고 있으니 문 열어주십시오."
방 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요시오가 있는 걸 알고 있다니, 추격했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요시오를 향하자 요시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엄항섭이 대문을 열자 김동철이 황급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박진호도 함께였다. 못마땅한 표정의 김의한이 김동철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요시오 선생이 함께 있는 걸 알다니, 그럼 탈출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따라왔다는 말이야?"
"그런 건 아닙니다, 선생님."
엄항섭이 목청을 높였다.
"그럼 뭐라는 거야? 둘이 짜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 소리에 놀란 요시오와 김동철이 서로를 바라봤다. 김의한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며 벌떡 일어났다. 그 서슬에 김동철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선생님, 제 말씀 좀 들어보시라요."
급한 마음에 김동철의 평양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수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쳤다.
"두 사람, 저를 이용해서, 저를 궁지에 몰고, 또 구해주는 척하면서, 할아버지 비밀을 캐려 한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요시오는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김동철이 목을 고른 후 말했다.
"요시오 선생이 평양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일본 정보국이 수현 양을 따라붙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네다. 처음에는 '이놈들 봐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잘 이용하면 좋겠다 생각한 것도 사실입네다."
김의한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수현 양을 구출하는 척해서 김의한 선생께 보내면 뭔가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전가옥 숲에 있던 요시오 선생에게..."
김의한이 김동철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김동철은 황급히 한 걸음 물러서더니 말했다.
"선생님, 수현 양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작전을 수행했습네다... 그카고 수현 양이 김의한 선생 만나 뵈는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영영 비밀을 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리..."
하더니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다. 김의한은 그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박진호를 노려보며
"당신도 한 패야?"
하고 호통쳤다. 박진호는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김의한은 '한심한 남쪽 놈들 같으니' 하는 표정을 짓고는 돌아서서 소파에 앉았다. 김동철과 요시오 두 사람에게도 앞자리에 앉으라고 한 후 말을 시작했다.
"이왕 이리되었고, 그 덕에 수현이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리고 내 나이도 나이고..."
하며 옆에 앉은 수현을 봤다. 잠시 후 김의한이 김동철과 요시오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자료에 대해 이야기하겠소. 대신 그전에 두 사람이 내게 약속할 것이 있소."
김동철이 '뭐든 말씀하십시오. 선생님.' 했고, 요시오도 '말씀하시지요.' 했다.
김의한이 수현 쪽을 다시 한번 본 후 말했다.
"수현이가 안전하게 남으로 갈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시오. 그것만 약속하면 내 모두 말하리다."
김동철이 반색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시라오. 저희도 불필요한 마찰은 결단코 원하지 않습네다. 제가 책임지고 수현 양을 남으로 내려 보내겠습네다. 선생님."
요시오도
"저도 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을 다 동원해서 기꺼이 돕겠습니다."
두 사람의 약속을 들은 후 김의한이 옆에 앉은 수현의 손을 가만히 잡고 수현의 가방에 있는 편지를 꺼내 보라고 말했다. 수현이 편지를 꺼내자 김의한이 겉봉을 찢으라고 말한 후
"이건 수당에게 보내는 편지다."
하더니 김동철과 요시오를 향해
"이 편지에서 당신들이 관심 있어할 대목을 읽어주겠소“
하고는 편지의 한 대목을 가리키며 수현에게 읽으라고 했다. 수현이 편지를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김의한이 가리킨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해방 후 북에 오기 전까지 수집한 독립운동 자료 가운데 친일파의 행적과 정신대 관련 기록은 따로 보관해 두었소. 그것은 당신과 내가 우연히 발견한 백범 선생 집무실 비밀공간에 있소. 아마 당신이 아니면 찾기 어려울 테니 수현이가 가면 함께 찾아보기 바라오."
여기까지 읽자 김의한이 수현에게서 편지를 받아 처음처럼 접어 봉투에 넣고 수현에게 주었다.
"들은 것처럼 이건 내가 수현에게 전달하려고 어제 작성한 편지이고, 그 편지를 수현이가 읽었으니 당신들이 못 믿을 이유가 없지 않겠소. 틀림없는 사실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물론 수현이가 가야 수당이 비밀공간을 찾을 것이니 허튼수작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소."
박진호가 김의한에게 가만히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박정희 정부 들어서 임시정부 청사로 쓰던 건물은 내부 공사를 새로 했습니다. 거기서 따로 발견될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김의한이
"그렇다면 그건 분명히 아직 거기 있는 거요. 그 비밀공간은 아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그런 곳이오."
김의한과 박진호가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김동철이 문득 생각난 듯 박진호를 보고 물었다.
"박진호 선생, 우리가 남에서 백범 선생 집무실에서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박진호 선생이 보증을 설 수 있겠소?"
그러자 박진호가 김의한과 수현을 한번 본 후
"물론입니다.“
하고 짧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요시오가 김의한에게 쭈뼛거리며 물었다.
"선생님. 혹시 박정섭 씨를 알고 계십니까?"
김의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 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엄항섭 쪽을 바라봤다.
"글쎄... 박정섭이라는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소. 왜 그러시오?"
"박정섭 씨가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첩보가 있습니다."
김의한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시간... 여행?"
"예, 박정섭 씨는 수현 양의 남자친구인데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김의한이 놀란 듯 수현을 바라봤다. 김의한이 이내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려면 이제 다들 나가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엄항섭도 박정섭이라는 이름을 듣고 저으기 놀란 듯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그런 엄항섭을 보고 김동철이 물었다.
"엄항섭 선생께서는 혹시 박정섭이라는 인물을 모르십니까?"
김동철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엄항섭이 부러 소리를 쳤다.
"근데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자고 몰려와서 노트를 내놔라, 자료를 내놔라, 하더니 이젠 시간 여행 어쩌고 하는 황당한 소리를 하면 어쩌자는 것이오?"
더 이상 물어도 얻을 답이 없다고 생각한 김동철이 '알겠다' 하고 한 발짝 물러섰다. 김동철은 수현에게 김의한 선생과 하룻밤 같이 자고 내일 선양행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제14화에 계속)
#sf소설 #판타지 #회중시계 #독립운동 #시간여행 #타임슬립 #독립전쟁 #의열단 #상해 #임시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