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참변의 날들

by 정섭

제15화 참변의 날들


#1921년 5월 18일, 자유시

미사노프 회의에서 박창은이 대한의용군의 총사령관으로 추대되고 오하묵이 부사령관이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김의한이 우려한 대로 대한의용군의 지휘체계는 순탄하게 운영되지 않았다. 희망적이던 분위기도 잠시, 동농의 바램같이 단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한의용군 총사령부 막사의 박창은으로서는 고민스러운 상황이었다.

박창은이 옆에 있던 참모에게 물었다.

"어제 내린 부대 재편성에 대한 지휘가 어떻게 이행되는지 확인이 되나?"

참모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총사령관님, 그게...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자유대대는 아예 응답조차 없습니다. 상해파에서도 박일리아 동지와 먼저 상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박창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참모가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참모부 동지들 모두 일손을 놓고 있습니다. 사실상 지휘체계가 무너진 것으로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

박창은이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사실 이런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소비에트의 적백내전이 적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코민테른 중앙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극동공화국 한인부라는 배경으로 대한의용군을 지휘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박창은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파 간 협력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총사령관 자리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박창은이 굳은 표정으로 참모에게 말했다.

"박일리아 동지에게 연락을 취하게."

몇 시간 후, 박일리아는 장도정과 함께 박창은의 막사를 찾았다. 장도정은 극동공화국 한인부의 대표 가운데 하나였다. 박일리아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박창은에게 '고생이 많다'는 인사를 건넸다. 박창은도 짐짓 웃으며 '수고가 많다'는 인사를 했다.

박일리아와 대면한 박창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내가 총사령관이 맞습니까?"

박일리아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기를 띠고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박창은 동지는 절차에 따라 뽑힌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명령은 군령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군령이 맞습니다."

박창은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군령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항명이지요."

박창은이 박일리아를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더 이상 항명은 없어야겠습니다."

"맞습니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던 박창은이 이윽고 의자에 앉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박일리아 동지, 제가 사퇴하겠습니다."

"..."

박일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박창은의 얼굴을 바라보던 박일리아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 됩니다."

"왜 이러십니까? 이미 제가 총사령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동지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박일리아가 그대로 서 있자 박창은이 박일리아의 어깨를 잡고 앉혔다. 박일리아가 자리에 앉자 박창은이 말했다.

"지난 며칠간 내가 내린 명령 중에 제대로 실행된 것이 없습니다."

"..."

"우리는 지금 일제와 싸우기 위해 모든 독립군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이제 그 일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박일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박일리아 동지가 총사령관이 되십시오. 그 외의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박일리아가 놀라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다시금 안 된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안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박일리아를 한 번 본 박창은이 박일리아 옆에 있는 장도정을 바라보고 물었다.

"장도정 동지. 동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지금 대한의용군의 지휘체계를 변모시켜 단일 대오로 나서게 할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장도정이 박창은과 박일리아를 번갈아 본 후 큰 소리로 말했다.

"박창은 총사령관 동지의 놀라운 충정에 감히 누가 토를 달겠습니까. 총사령관 동지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박일리아가 장도정을 바라봤지만 박창은이 쐐기를 박았다.

"그럼 그리 하기로 된 겁니다."

일사천리로 박창은의 사임이 발표됐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것과 그래도 이렇게 빨리 사임할지는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해파는 신속하게 새로운 지휘체계를 구성했다. 극동공화국 한인부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인 장교 그리고리예프를 연대장으로, 박일리아를 군정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리예프는 러시아 내전에서 활약한 40대 중반의 군인이었다. 박일리아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고, 무엇보다 상해파의 노선에 동조하고 있었다.

한편 김좌진은 이러한 상황을 심각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은 정섭이 김좌진에게 물었다.

"러시아는 일본과 그리 큰 원한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 독립군을 돕는 것입니까?"

국제 정세에 밝은 오상렬이 대신 답했다.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제국은 영국, 미국, 일본 등과 같은 연합국이었지 않소? 그런데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한 연합국이 일본을 앞세워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를 침범했소.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항일이라는 명분으로 북만주와 연해주의 항일 독립군들을 지원해 일본에 대적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오."

김좌진이 덧붙였다.

"극동공화국도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가 적백내전을 하는 와중에 극동 시베리아에까지 힘을 쓰기가 어려워 만든 임시정부라고 할 수 있네. 그러니 항일이라는 면에서는 우리 독립군들과 이해가 일치하는 것이지."

정섭이 뭔가 생각하다가 물었다.

"독립군은 민족해방이 목표이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의 승리가 목표인데, 두 개의 목표가 겨누는 공동의 적이 일본이니 힘을 합쳐 싸운다, 이거군요."

오상렬의 '바로 그거요' 하고 답했다. 옆에 서 있던 김의한이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소비에트가 적백내전에서 승리한 지금, 이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을 굳이 내세울 필요가 없어진 거요. 볼셰비키 혁명을 전면에 내세우고 우리를 동원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소."

모두 굳은 얼굴이 되었다.

바로 그 시기, 김좌진의 우려대로 이르쿠츠크에서는 대한의용군의 내부 권력 투쟁과 무관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코민테른 극동지역대표부가 극동 시베리아의 무장 배치에 전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코민테른 극동지역대표부의 대표 보리스 슈마츠키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거대한 지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슈마츠키는 50대 초반의 폴란드계 볼셰비키로,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는 급진적인 세계혁명론자였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소비에트 혁명을 확산시키려는 불타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지들, 보시오!“

슈마츠키가 회의실에 모인 코민테른 간부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가장 약한 고리입니다. 여기서 혁명이 성공하면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본토까지 혁명의 불길이 번져갈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과격하면서 단순한 것이었다. 일 단계, 칼란다리쉬빌리를 총지휘관으로 파견해 4천여 명의 한인 유격대원들을 장악한다. 이 단계, 이들을 이르쿠츠크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시킨다. 삼단계, 그들을 앞세워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해 조선으로 전격 진입한다는 것이었다.

칼란다리쉬빌리는 40대의 아나키스트 성향이 강한 국제사회주의자로 이르쿠츠크에서 적색 게릴라를 지휘했던 경험이 있었다.

회의실의 다른 간부들이 동조했다.

"정말 대담한 계획이군요!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슈마츠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칼란다리쉬빌리 동지는 이곳 이르쿠츠크에서 오랫동안 적색 게릴라전을 지휘한 경험이 있는 뛰어난 군사 전문가입니다. 그가 이끄는 한인 부대라면 일본군 따위는 문제없어요!"

슈마츠키는 이르쿠츠크의 한인 무장부대들을 통합하기 위해 고려혁명군정의회의를 설치하고 칼란다리쉬빌리를 위원장으로 임명, 파견하였다. 슈마츠키의 계획에 의하면 칼란다리쉬빌리의 첫 번째 임무는 한인 독립군부대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극동공화국 정부는 물론 대한의용군과 사실상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오하묵의 자유대대 모두 충격에 빠졌다. 자칫 소비에트 적군의 휘하에 들어갈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극동공화국 정부는 신속히 각료회의를 소집해 이 계획을 중단할 것을 소비에트 중앙에 요청하기로 결의했다. 이 계획은 기본적으로 소비에트 적군과 일본의 전면전을 가정한 계획이었다. 자칫 일본이 극동공화국을 침공하는 명분을 줄 수 있었다. 이제 막 적백내전을 끝낸 소비에트 러시아가 또 다른 전쟁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극동공화국의 주장이 레닌을 움직였다. 게다가 당시 내전의 후유증으로 경제 사정도 어려웠고 현지인의 희생이 클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결국 레닌의 결정은 이 계획의 공식적인 중단이었다. 레닌의 결정을 들은 슈마츠키는 분노했다.

"소비에트 중앙이 세계혁명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혁명을 배신하고 있다!"

그러나 슈마츠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칼란다리쉬빌리는 그 계획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칼란다리쉬빌리는 연해주에 있는 모든 독립군 부대를 한 자리에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고려혁명군정의회 총사령관임을 선포했다.

이후 칼란다리쉬빌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고려혁명군정의회 산하의 무장조직을 고려혁명군으로 명하고 당시 이르쿠츠크에 있던 오하묵의 자유대대를 고려혁명군의 주력으로 편재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극동공화국으로부터 소외받던 이르쿠츠크파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서 오하묵의 자유대대는 고려혁명군의 일원이 되었다. 소비에트 극동사무소의 정식 군대가 된 셈이었다.

그런 다음 칼란다리쉬빌라는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박일리아, 김좌진, 홍범도 등 한인 독립군 지도자를 차례로 만났다.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비롯한 대한독립군단의 실질적 지도자를 만난 것이다. 면담 자리에서 칼란다리쉬빌라의 요구는 간단했다. 고려혁명군으로 편재하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한인 독립군의 지휘 통솔권을 자신이 갖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붙인 조건은, 이를 거부할 경우 모두 무기를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의 협상 아닌 협상이 진행됐다. 별 다른 진전은 없었다. 박일리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칼란다리쉬빌라의 이런 무리한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김좌진은 밀산에서 자유시로 넘어온 대한독립군단 지도부와 김의한 일행을 막사로 불러 모았다.

북로군정서의 박두희, 서로군정서 지청천 등 대여섯 명과 김의한 일행 다섯 명 해서 열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홍범도와 안무 등은 오지 않았다. 김좌진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김좌진이 말했다.

"고려혁명군으로 편재하라고 하는 칼란다리쉬발리의 요구를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박두희가 말했다.

"칼란다리쉬빌라의 관심은 적색혁명이 아닙니까? 물론 일본을 물리친다는 것은 같은 목표지만 조선 반도를 소비에트 공산국가로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오상렬이 거들었다.

"무정부주의자로 유명한 칼란다리쉬빌라의 성향상 조선 독립은 아마 그의 머리에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우리 모두 의견이 일치할 것입니다."

모두의 의견을 확인한 김좌진이 진짜 걱정거리를 말했다.

"문제는 홍범도 장군과 안무 장군이 고려혁명군에 합류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세계대전 중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을 앞세워 극동 러시아를 침공한 사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때 일본은 연해주에 있던 조선 무장독립운동 세력을 함께 소탕하기 위해 이들을 공격했었다. 홍범도는 당시 왜군과의 교전 과정에 소비에트 적군과 협력했던 경험이 있었다.

"한편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적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홍범도 장군의 생각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김좌진은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릅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여기에 휩쓸리면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조선 독립군이 아니라 소비에트의 적군이 되고 말 것입니다."

미사노프 회의 때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렸던 김의한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좌진이 모두를 보고 말했다.

"그걸 의논해 보자는 것입니다."

모두들 고민과 걱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자 김의한이 길게 말했다.

"동농 선생께서 김좌진 장군께 전달하신 서신이 있습니다. 그 서신의 내용은 구동존이와 참정절철이었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단결하라는 것과, 결정을 할 때는 쇠를 절단하는 각오로 단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동존이는 지난 미사노프 회의 때 제가 전달한 바 있습니다. 이제는 참정절철의 각오가 필요할 듯합니다."

정정화가 거들었다.

"동농 선생께서 구두로 당부하신 것 중에는 불필요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때 막사 밖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독립군 한 명이 말에서 내려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북로군정서 전령이었다.

"홍범도 장군께서 고려혁명군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한의용군 연대장 그레그리예프도 칼란다리쉬발리에게 투항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령은 숨을 고른 후 다음 말을 이었다.

"대한의용군 박일리아 동지는 아직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고 합니다."

탄식이 나왔다. 김좌진은 좌중을 진정시킨 후 말했다.

"홍범도 장군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아마 안무 장군의 부대도 마찬가지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홍범도 장군의 행보를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역시 존중받아야 할 결정이고, 지금 우리 조선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도 가운데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모두들 김좌진의 말에 수긍했다. 김좌진이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인 독립군을 하나로 묶어서 만든 대한의용군이 삼일천하에 불과한 조직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레그리예프 연대장이 칼란다리쉬발리에게 투항한 한편 박일리아 동지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용군은 이미 쪼개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김좌진이 좌중을 돌아본 후 말했다.

"이제 만주와 연해주의 한인 독립군이 하나로 뭉쳐 왜군과의 투쟁을 계속하기로 한 계획은 수포가 되었습니다."

말을 잠깐 멈춘 후 이윽고 결심한 듯 말했다.

"이제 우리는 대열을 정비해 왜군과 싸우기 위해 자유시에서 철수, 밀산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토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일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홍범도 장군이나 안무 장군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만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고 머리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자유시에서 철수해 밀산으로 이동하기로 결의가 되었다. 이 결의에 따라 고려혁명군에 합류하지 않기로 한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부대는 철수 준비를 위해 모두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김의한, 오상렬, 정섭 세 사람이 남게 되자 김의한이 심각한 표정으로 오상렬에게 말했다.

"오상렬 동지, 동지는 김좌진 장군과 함께하시겠지요."

"그래야지요. 혹시 김의한 동지는 어쩔 생각이십니까?"

"글쎄, 수당과 의논을 해 봐야겠지만 남아서 상해파와 행동을 함께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정섭이 김의한의 말허리를 잘랐다.

"김의한 동지. 우리 임무는 동농 선생의 서신을 김좌진 장군께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합니다."

"정섭 동지. 동지는 하실 만큼 하셨소. 이제 오상렬 동지와 함께 밀산으로 돌아간 후 곧바로 상해로 가시오. 아버님께서도 궁금해하실 겁니다."

"아니..."

그때 뒤늦게 정정화가 들어왔다. 김의한이 정정화에게 잠시 보자고 하고 둘이 따로 나갔다. 정섭은 오상렬에게 김의한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상렬은 김의한의 성정 상 말려서 될 일은 아니라고 했다. 정섭은 이 즈음 연해주에서 큰 화가 있었다는 것을 들은 듯하던 차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잠시 후 김의한과 정정화가 함께 들어왔다. 정정화가 오상렬, 박영만, 정섭에게 말했다.

"김의한 동지와 저는 여기 남아서 상해파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정섭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저 말린다고 될 사람들이 아니었다. '도시 담'인 사람들이 아닌가 말이다. 정섭이 불쑥 말했다.

"저도 남겠습니다."

모두 놀란 눈으로 정섭을 봤다. 김의한이 정섭 쪽을 향해 말했다.

"박정섭 동지. 동지는 할 만큼 했다고 하지 않소? 게다가 정섭 동지는 유학차 상해에 온 것으로 아오. 이제 상해로 가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오."

이 말에 정섭이 처음으로 김의한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김의한 동지. 이 자리, 저 자리... 자기 자리가 어딨단 말이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내가 있을 자리요. 적어도 내가 어디에 서 있을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소. 나는 여기 남을 것이니 두 말하지 마시오."

정섭의 기세에 눌려 김의한도 더 말하지 않았다. 결국 그리하기로 정하고 김좌진에게 자신들의 행보에 대해 알렸다. 김좌진이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네. 동농 선생을 봐서라도 자네들이 곤경에 빠지는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다시 생각들 하게."

김의한이 자신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 이 일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것까지가 아버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독립군을 이끄셔야 하고요. 저희의 뜻을 받아주십시오."

김좌진은 결국 이들 세 명의 젊은이들을 자유시에 남겨두고 부대의 철수를 시작했다. 김의한, 정정화, 정섭은 대한의용군 박일리아의 막사에 합류했다.

다음 날 오후 2시. 칼란다리쉬빌리가 이끄는 적군과 오하묵의 자유부대가 기관총, 장갑차, 대포를 몰고 대한의용군 막사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4시까지 자진 무장해제를 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4시. 소비에트 적군을 앞세운 진압병력이 대한의용군에 대한 물리적 무장해제가 시작됐다. 여기저기에서 총성이 울렸다.

김의한과 정정화, 정섭은 막사 뒤 언덕으로 뛰었다. 언덕 너머는 강이었다. 언덕 끝자락에 막 도달할 즈음 정정화가 발을 헛딛으면서 ‘악’ 하고 쓰러져, 오던 길 아래로 굴렀다.

김의한이 창춘의 야마토호텔에서 야스카와에게서 빼앗았던 권총을 정섭에게 넘겨줬다. 정섭은 권총을 받아 안전장치를 풀고 쫓아오던 러시아군을 향해 쐈다. 김의한에게 권총 다루는 건 배웠던 정섭이었다.

러시아군이 몸을 피하는 사이 김의한이 뛰어 내려가 정정화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김의한이 정정화를 부축해 언덕 위로 올랐다. 정섭은 계속해서 러시아군을 향해 총을 쐈다.

언덕을 넘으니 그 다음은 아무르강으로 이어진 허허벌판이었다. 언덕 넘어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정신없이 뛰는데 뒤에서 쫓아오던 러시아 군이 뭐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겨를 따윈 없었다. 죽기 살기로 강을 향해 뛰는데 다시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탕탕, 탕탕, 타타탕.’

세 사람이 뛰어가는 바닥의 돌에 '픽'하고 총탄이 튀고 허공으로도 총탄이 비껴갔다. 그때였다.

‘윽’

하는 소리와 함께 김의한이 쓰러졌다. 그 바람에 김의한이 부축했던 정정화도 같이 쓰러졌다. 김의한이 허벅지를 잡고 아픈 소리를 냈다. 허벅지에서 낭자하게 피가 흘렀다. 뒤에서 대한의용군 대원 대여섯 명이 적군에 쫓겨 뛰어 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쓰러진 김의한에게 뛰어 왔다. 박일리아였다.

“아니 지금 여기서들 뭐 하는 게요.”

하고 김의한을 자신의 한쪽 어깨로 들처맸다. 정섭이 강 쪽으로 뛰어야 한다고 외치자 박일리아가 김의한을 맨 채 함께 강을 향해 뛰었다. 뒤에서 러시아 적군이 뭐라고 뭐라고 외쳤다. 러시아말을 알아먹은 박일리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놈들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는군.”

그렇게 강에 거의 도착할 때쯤 또다시 콩을 볶는 듯한 총소리가 울렸다.

‘타타탕, 타탕, 탕, 탕’

박일리아가 허리를 꺾고 쓰러졌다. 박일리아가 들처맸던 김의한도 바닥에 떼굴 굴렀다. 박일리아는 등에 총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쓰러져 아무 소리를 못하고 숨만 깔딱거렸다. 김의한이 박일리아를 불렀다. 그러나 박일리아는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정섭이 김의한을 일으켜 어깨를 걸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러시아 군은 계속 뭐라고 뭐라고 외치며 달려왔다. 강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김의한의 왼쪽에 정정화가, 오른쪽에 정섭이 어깨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무작정 강으로 들어왔을 뿐 더 이상 갈 곳은 없었다. 쫓기듯 뛰어온 다른 고려의용군 대원들도 강으로 뛰어들었으나 갈 곳 없기는 한 가지였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다시 총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강물 위로 총탄이 튀었다. 정섭의 몸이 하늘로 붕 치솟았다. 정섭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득한 정신 너머로 총성이 울렸다.

'탕, 타탕, 타타탕...‘


##1980년 5월 18일. 같은 시간, 서울

대동지구에서 수현이 김의한과 함께 보낸 날 밤 김의한은 정섭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수현으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정섭이 1921년 3월경 상해에 나타났다는 것, 심훈의 집에 기거하면서 동농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 김의한, 정정화와 함께 왜군의 진강 집하지를 폭파한 것, 경성으로 들어와 총독부 폭탄 투척에 함께 했다는 것, 그리고 밀산과 자유시에서의 비극적인 일을 겪은 것까지 김의한의 이야기는 놀라운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정섭이 자유시의 아무르강 유역에서 물속에 처박히고 난 다음 자신들은 러시아 군의 포로가 되고 정섭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수현의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김의한과 엄항섭도 정섭이 수현의 남자친구로 시간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수현이 정섭의 현대 사진과 상해에서 김의한 등과 찍은 사진을 내보이자 그제서야 믿는 눈치였다. 김의한은 '정말 기이한 인연이다'라는 말을 계속했다.

다음 날 아침 김의한은 된장국을 끓인다, 고등어를 굽는다, 하며 요란한 아침상을 차렸다. 엄항섭도 덩달아 바쁘게 김의한을 도왔다. 수현은 씻고 식탁에 앉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김의한이 차린 아침상을 비웠다. 설거지를 내가 한다, 안 된다, 하다 수현이 기어이 설거지를 했다.

원망스러운 김동철이 그즈음 김의한의 집에 도착했다. 박진호와 요시오도 함께였다. 수현은 김의한과 엄항섭에게 절을 하고 나왔다. 수현이 손에 든 나무상자를 본 김동철이 눈짓을 하자 수현이 나무상자를 열어 보였다.

동농의 그림과 글씨에 한바탕 감탄이 오고 간 다음 나무상자에 그림을 넣고서야 수현과 김의한은 헤어지는 인사를 했다. 수현은 울었고 김의한은 눈이 벌겋게 되었다. 꼭 잡은 손을 놓고 대문을 나선 수현은 김동철, 박진호, 요시오와 함께 차를 타고 곧장 순안공항으로 갔다. 김의한은 수현이 탄 차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었다.

김의한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자 요시오가 수현에게 물었다.

"혹시 어젯밤 김의한 선생께서 박정섭 군에 대한 말씀은 하지 않던가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요? 제발 꿈에서 좀 깨시지 그래요?"

수현의 단호한 답에 나머지 세 사람은 더 이상 정섭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이후 달리는 차 안에서 세 사람은 김의한의 노트는 남북일 삼국이 모여서 함께 찾는 것으로 하고 그 일정은 따로 정하기로 약속했다.

김동철을 제외한 세 사람은 순안공항에서 고려항공편으로 선양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수현은 정정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정화는 수현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김의한의 안부를 물었다. 수현은 김의한이 잘 지내고 있고 하룻밤을 같이 잤다는 정도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한항공 747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서울에서 선양, 선양에서 평양, 그리고 다시 선양을 거쳐 서울로 온 수현은 곧장 정정화의 집으로 향했다. 정정화는 마당에서 빨래를 걷다 말고 대문으로 뛰어나왔다.

수현이 정정화를 꼭 끌어안았다. 수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정정화는 손녀의 등을 토닥였다. 방에 들어간 수현이 가방에서 북에서 김의한, 엄항섭과 찍은 사진들, 김의한의 과거 사진 등을 내놓았다. 정정화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성엄..."

"할아버지, 평생 가족들 그리워하시며 사셨대요. 엄항섭 선생님과 함께 사셔서 외롭지는 않으셔요."

"일파가 같이 사는구나..."

"엄항섭 선생님도 건강하세요."

수현이 정정화의 손을 꼭 잡았다. 잠시 후 수현은 김의한이 전해 준 나무상자를 꺼냈다. 동농의 글씨를 보는 정정화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톡 떨어졌다.

"노할아버지가 1920년 상해에서 그리신 그림이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께 드리라고 하셨어요."

정정화는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며 옛 기억을 회상했다.

"백운장... 성엄이 돌려받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결국 돌려받지 못하고 북으로 끌려갔지. 우남이 대통령이 돼서도 그걸 외면해서 성엄이 많이 섭섭해 했었단다."

그림을 보는 정정화의 모습을 보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수현이 정정화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에게 귓속말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정정화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씀을?"

수현이 공연히 주위를 살핀 후 목소리를 낮췄다.

"할아버지가 해방 후에 수집하셨던 독립운동 자료 가운데 박진호 씨가 찾던 비밀 노트의 위치요."

정정화가 놀란 표정이 됐다.

"그게, 이 그림 속 백운동천 바위 아래 할아버지가 만든 비밀 공간에 숨겨놓으셨대요."

그러자 정정화가 손뼉을 딱 쳤다.

"맞다. 맞아. 성엄이 어린 시절에 네 노할아버지께서 아들인 성엄에게 만들어준 비밀 공간이 있었다고 했어."

"할아버지가 만든 건 아니군요."

"아마 성엄이 조금 고쳐놓긴 했겠지."

요시오와 김동철에게 백범 선생께서 사용하던 집무실 천장에 노트를 숨겨놨다고 김의한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정정화가 '성엄이 거짓말을 해?' 하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백범 선생님 집무실 천장에 우리가 찾은 비밀공간이 있긴 했어. 하지만 새로 개축을 하면서 흔적이 없어졌어. 그러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란다."

그렇게 말한 정정화가 수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백운동천 비밀금고를 여는 열쇠 이야기는 없었어?"

그러자 수현이 '아, 열쇠' 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 그 열쇠. 내가 알아요."

"뭐, 그 열쇠를 네가 안다고?"

놀라는 정정화를 뒤로 하고 수현이 김의한의 자료가 있는 방으로 가 뭔가를 찾느라 뒤적였다. 잠시 후 수현이 '찾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왔다. 손에는 임시정부 인장이 든 나무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건 왜?"

"이게 바로 열쇠예요. 할머니"

"뭐라고?"

"할아버지가 백운동천 비밀금고를 열 수 있는 건 임시정부 인장이라고 했어요."

정섭이 회중시계와 함께 사라진 뒤 땅에 떨어져 있던 임시정부 인장이었다. 박진호가 한번 보겠다고 가져간 다음 돌려받아 놓은 것이었다.

다음날 5월 18일 아침, 수현과 정정화는 백운동천 바위가 있는 사직동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서는 계엄령 전국 확대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음식점으로 변한 백운장 뒤편에 백운동천 바위가 있었다. 두 사람은 바위를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 바위에 이끼가 끼고 주변에는 잡목이 자라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겨우 찾은 바위를 손으로 더듬어 나가던 그때 정정화의 손에 뭔가 잡혔다.

정정화가 '여기 좀 봐라' 하자 수현이 손으로 잡목과 이끼를 걷어냈다. 그러자 태극 문양을 닮은 무늬가 그려진 녹슨 쇠판이 보였다.

"이거예요!"

흥분한 수현이 나직이 외쳤다.

쇠판을 손으로 더듬으며 살살 닦자 몸통은 땅에 묻혀 있는 쇠통의 뚜껑인 듯한 사각판이 모양을 드러냈다. 뚜껑 위에 작은 고리가 누워있었다. 수현이 몇 차례 힘을 주어 고리를 당기자 마치 모자가 벗겨지듯 '딸깍' 하고 작은 금속판이 한쪽으로 접혔다. 그리고 그 금속판 뚜껑 아래에 작은 구멍이 나타났다. 세월이 가도 구멍이 메워지지 않도록 김의한이 고안한 방법인 듯했다. 수현과 정정화 두 사람이 희열에 찬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됐다."

정정화가 임시정부 인장이 든 나무상자를 열고 붉은 천에 싸인 인장을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인장을 그 구멍에 밀어 넣었다. 인장은 너무나 부드럽게 안으로 밀려들어가나 싶더니 자력으로 맨 아래까지 들어갔다. 인장이 다 들어갔나 싶은 순간 또 한 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환한 빛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 1980년 5월 18일. 같은 시간, 광주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모인 20만 학생들의 시위를 끝으로 학생회 지도부는 당분간 시국을 관망하기로 하고 수업에 복귀했다. 그리고 5월 17일 자정 부로 비상계엄령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정치활동이 금지됐고, 전국의 대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졌다. 집회와 시위도 금지됐다. 다음 날 새벽 2시 군부는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했다. 김대중 등 주요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예비검속으로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됐고, 총학생회 간부들도 줄줄이 잡혀갔다.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장례 절차를 치르던 이성주의 가족들도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쫓겨 장례 절차를 채 마치기도 전에 부랴부랴 운구차를 타고 이성주의 고향인 광주로 출발했다. 김태훈은 운구차에 동승했다. 이성주의 운구차가 광주 망월동 공동묘역에 도착한 것은 5월 18일 새벽이었다. 아침 아홉 시가 되자 이성주 시신의 안장이 모두 끝났다.

김태훈은 광주로 오는 운구차 안에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훈은 이성주의 가족들과 헤어진 후 전남대학교로 향했다.

10시쯤 전남대학교 정문에는 2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계엄 확대와 휴교 조치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미 학교 정문은 닫혀있었고, 특전사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특전사 장교 하나가 학생들의 대오에 다가가더니 그중 구호를 선창하는 학생의 무릎을 느닷없이 군홧발로 찼다. 학생이 쓰러지자 다시 발로 짓이겼다.

흥분한 학생들이 인도의 블록을 깨 특전사 장교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격 앞으로' 하는 소리와 함께 특전사 군인들이 진압봉을 꺼내 들고 학생들을 향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학생들이 우르르 도망을 가자 쫓아가며 진압봉을 휘둘렀다.

학생들 가운데 일부가 김태훈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 뒤를 특전사 군인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김태훈도 얼결에 학생들과 함께 뛰었다. 뒤에 있던 학생 하나가 머리에 진압봉을 맞고 쓰러졌다. 피가 흘렀다. 학생은 주저앉아 머리에서 나는 피를 막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학생들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주택가 골목까지 군인들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태훈은 남의 집 담장을 넘어 창고로 뛰어들어갔다. 연탄창고였다. 태훈을 뒤쫓아 온 특전사 군인 두 명은 M16 소총에 대검을 장착하고 연탄창고로 들어왔다.

"이 새끼 여기로 들어왔는데..."

하면서 연탄더미를 M16 소총 끝 대검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김태훈이 숨을 죽이고 있는데 밖에서 '퇴각'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특전사 군인이 아쉬운 듯 내뱉었다.

"아까운 사냥감 하나 놓쳤네."

군인들이 나간 것을 확인하고 김태훈이 살금 살금 연탄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연탄창고까지 쫓아왔던 군인 둘이 골목 어귀에서 몸을 드러냈다. 태훈이 기겁을 하며 뒤로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씩 웃던 군인 하나가 '이 빨갱이 새끼' 하면서 김태훈의 머리를 있는 힘껏 개머리판으로 갈겼다.

'윽'

소리도 못 지르고 김태훈이 쓰러졌다. 태훈의 머리에서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졌다.


## 1980년 5월 18일 같은 시간. 미국 워싱턴주 세인트 헬렌스 화산

5월 17일 토요일, 미국 워싱턴 주 세인트 헬렌스 화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화창한 주말을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화산에 대한 뉴스가 나갔지만, 화산은 잠잠했고, 사람들은 그저 호들갑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전날 저녁 돈 스완슨이 서야 할 당직을 바꿔준 ’콜드워터 투‘ 기지의 존스턴은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존스턴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당직이었지만 동료의 딱한 사정을 듣고 승낙한 당직이었다.

5월 18일 일요일, 산이 우르릉거리며 흔들렸다. 그 힘에 안 그래도 부풀어 올라 있던 북쪽 사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마그마를 막고 있던 암반이 그 바람에 산 아래로 굴렀다.

'우르릉, 쾅'

10분쯤 지났을까.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화산이 폭발했다. 땅속에서 산을 밀어 올리던 마그마가 북쪽 사면의 암반이 무너지면서 그 방향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측면 폭발이었다.

산의 반토막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었다. 존스턴은 급히 밴쿠버 기지에 폭발 사실을 알렸다. 무전이 끝나고 돌아서는 존스턴을 향해 측면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쇄설류가 덮쳤다. 하늘을 뒤덮을 만큼 큰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그 시간, 한국 천문연구원 이상현상팀 이종학 박사 앞에 있는 AMJ를 측정하는 계기판의 바늘이 요란하게 흔들리다 갑자기 오른쪽 끝까지 가서 한참을 파르르 떨었다. 이종학 박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16화에 계속)

주: 대한의용군은 사할린부대, 사할린빨치산부대로도 불린다.


#sf소설 #판타지 #독립운동 #시간여행 #타임슬립 #독립전쟁 #자유시 #참변 #상해 #임시정부

이전 14화제14화 이념의 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