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성의 레버리지

2018 수시 입시에 관한 단상

by 조민재

198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인공지능의 개념은 2020년대에 이르러 우리 삶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AI를 가동하기 위해서 대량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고, AI의 학습을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가 요구되는데, 2020년대에 이르러 이러한 기술적 인프라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여유자금, 혹은 대부분의 재산을 AI 개발 및 연구 기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많은 이들도 AI의 발전이 그들의 직장을 앗아갈까 두려워하는 현실이다.


많은 이들이 AI의 발전을 두려워하고, 혹은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AI에 의해 탄생한 인공적 산물은 인간적인 감성과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효율성'의 미명 아래 박차를 가해 우리 곁의 많은 요소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부터 챗지피티까지, AI가 가져다준 우리 삶의 '효율성'을 부정할 순 없다. 사실 AI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위계질서, 이를테면 가부장제부터 근대적 경제이론까지, 효율성을 이유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힘이 센 사람이 존경받아왔던 이유도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구하기 유리하다는 '효율성' 때문이었다. 물론 근대적 시장경제와 거래적 접근 방식이 발달함에 따라 폭력이나 힘이 가져다주는 효용이 낮아져 오늘날 '폭력'은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취급되지만 말이다. AI가 효율적인 이유는, 그 창조주인 인간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효율성'을 사랑해왔기 때문이다.


허나 효율성이 모든 발전의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인생, 특히 공부가 그렇다. 효율적인 방식의 강의란 존재할 수 없다. 처음부터 공부를 하는 방법을 터득한 학생은 없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다가, 맞지 않는 방법들은 과감히 도려내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도화시켜 자신만의 학습 루틴을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학습루틴 중 보편적인 성질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한 데 모아 후배 혹은 제자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과 등가적인 노력을 겪지 않은 학생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삽질을 해보기 전까지 특정 방법이 왜 비효율적인지, 성과를 내기 전까지 특정 방법이 왜 효율적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효율성은 비효율성으로부터 나오고, 성공은 실패로부터 나온다.


근래 들어 공부 및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들과 나눌 때마다 '비효율성'에 대한 존중이 점점 부족해지는 시대가 왔음을 느낀다. 발전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시행착오 및 고통의 시간을 마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더 편한 방식, 더 시간 소모가 적은 방식을 갈구하며 과제와 시험 공부를 해치운다. 고난이도의 과목이 줄 수 있는 도전의식과 가르침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학점을 잘 주고 노력이 덜 드는 과목들만 수강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편안함이 효율성과 동치 표현이 되어간다. 어려운 강의, 시간을 많이 쏟는 공부,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공부는 기피대상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나의 비효율성은 극치를 달렸다. 하루 공부 시간의 절반에 육박하는 7시간을 수학만 공부하는데 소모하였다. 7시간동안 수학을 붙잡는 나의 고집에 모두가 '비효율적'이라며 비판의 화살을 쏘아댔다. 실제로 당시 3등급을 맞았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언사들이다. 하지만 나는 학원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지속적인 삽질을 반복한 끝에 나의 단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한 과외식 학원에서 나의 맹점을 진단해주자,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듯 큰 사고의 전회를 느꼈다. 식으로만 풀려고 했던 내가 그래프를 그리며 문제를 입체적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하자, 7시간을 버텨냈던 응집력이 이에 결합하여 엄청난 폭발력을 달아주었다. 그러부터 2개월 뒤, 나는 전국 모의고사에서 수학 96점을 맞고, 학교 수학심화반의 조장이 되었다. 언뜻 효율적 방식으로 수학 공부에 돌입하자 효과가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전의 매일 7시간의 삽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조언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하나의 평범한, 그리고 귀찮은 옵션 정도로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한다. 실패와 비효율을 겪어 그 문제를 몸소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일 토양을 구축할 수 있었다.


성적 상승까지 걸린 기간, 그리고 상승 폭. 많은 사람들이 결과론에 집착한다. 결과만 보게 될수록 그 중간 과정의 시행착오를 과소평가하고, 오히려 결과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간과하게 된다. 특히 GPT처럼 과정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남과 함께 '비효율성'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성장적 관점의 축복은 더욱 경시되는 것 같다. 빨리, 그리고 큰 폭의 성적 상승 자체는 좋다. 하지만 기저에 막대한 노력,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의 반복, 이에 따른 피드백의 축적이 없을 수 없다. 모두가 바랐던 나의 기적적 성적 상승의 동력은 절대 나의 천성이나 재능에 있지 않았다. 남들이 보지 못한 실패의 시간들을 꿋꿋하게 버티며 나의 단점을 비로소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의식하였던, 비효율성의 레버리지를 이용한 시간들이 만들어준 결과물이다.


2018년 3월 전교 127등으로 입학했던 나는 그해 말, 종합 전교 4등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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