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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Oct 26. 2021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놀랍도록 닮은 두가지

대응의 원칙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위험입니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인한 의료붕괴를 막기 위해 작년 세계 곳곳은 봉쇄조치를 단행했고,

우리나라 또한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통제를 시행했고 이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는 코로나19라는 현상을 바라보며 기후변화로 인한 우리의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기후변화 등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 이슈를 드라마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이 블로그의 주제가 급변한 이유입니다. (코로나19가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낮아지면 다시 시작할겁니다 ^^)


기후변화-코로나19, 약자가 고통받는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모두 사회적 약자가 더 큰 고통을 받습니다.


그림 1. 전세계에서, 선진국보다 후진국의 피해가 더 큽니다.


기후변화


옥스팜에 따르면 소득수준 중하위권 이하의 국가는 선진국에 비해 기후변화에 의한 충격을 받을 확률이 4배나 높다고 합니다.

스톡홀름 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상위 10%가 52%의 탄소를 배출했고, 하위 50%는 단 7%를 배출했습니다. 책임은 선진국에 있는데, 고통은 다른 사람이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접종을 원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버려지는 백신이 있는가 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오직 3.1%만이 첫번째 복용량을 받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백신의 위험과 이익의 저울이 어떤지 알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까지 백신을 접종하며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백신 접종이 꼭 필요한 노인들이 백신 없이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맞서고 있고,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의 위험은 누군가에게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출처 (좌) 스톡홀름환경연구소, (우) 아워월드인데이터


그림 2. 나라 안에서,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의 피해가 더 큽니다.


선진국인 우리는 기후변화나 백신 부족을 체감하기 힘듭니다.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고, 백신 기근 또한 잠깐 있었을 뿐 금방 해소되었습니다. (정부는 모더나 수급 불안을 제외하고는 약속을 어긴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한 나라 안으로 좁혀도 기후변화나 코로나19는 불평등한 위험입니다.


기후변화

NPR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의 평균온도가 더 많이 상승했습니다.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에는 휴식공간을 제공해주고, 그늘을 제공해주며 더위를 완화해줄 수 있는 녹지가 많지만,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은 새까만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뒤덮여 있고, 녹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녹지가 있는 부자 동네의 사람들은 집에서 에어컨을 마음껏 켤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재택근무와 충분한 거리두기, 적절한 환기 등이 가능한 고임금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문이 닫혀버린 자영업자의 고통,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저임금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통은 와닿지 않습니다.


소득(월급)은 유지되는데 모임은 줄어들고, 여행도 어려워짐에 따라 남는 소득이 증가하며 명품백으로 보복소비를 하는 군가가 있습니다.

반대편에서 누군가는 한때는 본인의 일터였고 생계였던 식당의 집기를 헐값에 중고로 팔아넘기며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진 채로 그날의 생계를 이어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의 위험은 누군가에게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출처 (좌) NPR, (우) 한국은행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기후변화와 코로나의 차이가 있다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코로나19 확산과는 달리 기후변화는 그 책임소재가 "선진국"으로서 상당히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선진국의 고통 또한 큽니다. 선진국 내부의 불평등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령 석탄발전소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석탄발전소가 폐쇄되어 활력을 잃은 지역에게도 특별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뒤에 남겨지는 사람 없이(포용성),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서 비용을 나누며 함께(공정성) 가야한다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만 합니다.


코로나19

코로나19의 책임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클럽을 간 사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 여행을 간 사람, 아픈데도 생계를 위해 출근한 사람 등등을 언제까지고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고, 함께 힘을 모아 코로나19를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영업자들, 여행업계 종사자들, 문화예술 공연가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본인들에게는 커다란 위험이 아니지만, 마주했을 경우 생명의 위협이 되는 고령층을 위해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희생하고 있습니다.


손실보상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조금 더 넓게 이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우리의 세금이 옳은 곳에 정의롭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위드코로나 논의에서 어떤 방역수칙을 완화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집중되던 고통을 다함께 나누겠다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이 실현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남아 있는 방역수칙으로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돌봐주며 포용성의 원칙을 실현하고, 고통이 누군가에게 집중되지 않고 최대한 분산될 수 있도록 공정성의 원칙을 지키는 데 힘써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위한 "소비와의 거리두기"도 필요하다


기후변화, 코로나19보다 더 실존적인 위협


PEW에 따르면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는 기후변화를 더 실존적인 위협으로 생각했습니다.

(엄청난 사망자를 낸 유럽국가는 코로나19보다 기후변화를 더 심각한 위협으로 꼽았는데, 그보다 훨씬 상황이 양호했던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19를 유럽 국가의 사람들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일본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코로나19의 위험은 약간 과장된 지점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협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이 생활한다면,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받을 기후변화의 피해는 파괴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단기적 봉쇄가 효과가 있는 코로나19와는 다르게 기후변화 대응은 단기적인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임계점을 넘어버린 이후에는 집에 머물러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봉쇄하면 줄어드는 확진자와는 달리 봉쇄한다고 온도가 바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기후변화는 백신도, 치료제도 개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소득 국가, 저소득층 위주로 피해가 나타나지만, 나는 괜찮을거야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쌓은, 견고해 보인다고 착각한 둑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결국은 모두가 괴로움과 고통에 휩싸일 것입니다.


코로나19 위험이 과장된 지점이 있다면, 기후변화의 위험은 축소된 지점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실존의 위험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소비와의 거리두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감염 전파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불편한 마스크를 쓰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하면서도 백신을 맞는 것처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불편하더라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와의 거리두기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환경에 피해를 덜 끼치는 소비"는 있지만, "친환경 소비"는 나무 사기 정도를 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기후변화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고통을 나누지 않는다면,

결국 파멸을 막기 위해 나중에 피와 살을 깎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거나,

그 비용을 지불하고도 마침내 파멸하고야 말것입니다.

(너무 지나친 공포 조장같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우리의 일상은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환기를 자주 하고, 손을 더 자주 씻고, 아프면 집에서 머무르는 등 새로운 일상을 찾아가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더 장기전입니다.

더 고통스러운 조치가 더 오랜 기간동안,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여기서 살아야합니다.

모두가 함께 고통을 나누며 기후변화에 맞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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