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사망자를 낸 유럽국가는 코로나19보다 기후변화를 더 심각한 위협으로 꼽았는데, 그보다 훨씬 상황이 양호했던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19를 유럽 국가의 사람들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일본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코로나19의 위험은 약간 과장된 지점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협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이 생활한다면,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받을 기후변화의 피해는 파괴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단기적 봉쇄가 효과가 있는 코로나19와는 다르게 기후변화 대응은 단기적인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임계점을 넘어버린 이후에는 집에 머물러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봉쇄하면 줄어드는 확진자와는 달리 봉쇄한다고 온도가 바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기후변화는 백신도, 치료제도 개발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소득 국가, 저소득층 위주로 피해가 나타나지만, 나는 괜찮을거야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쌓은, 견고해 보인다고 착각한 둑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결국은 모두가 괴로움과 고통에 휩싸일 것입니다.
코로나19 위험이 과장된 지점이 있다면, 기후변화의 위험은 축소된 지점이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실존의 위험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소비와의 거리두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감염 전파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불편한 마스크를 쓰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하면서도 백신을 맞는 것처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불편하더라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와의 거리두기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환경에 피해를 덜 끼치는 소비"는 있지만, "친환경 소비"는 나무 사기 정도를 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기후변화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고통을 나누지 않는다면,
결국 파멸을 막기 위해 나중에 피와 살을 깎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거나,
그 비용을 지불하고도 마침내 파멸하고야 말것입니다.
(너무 지나친 공포 조장같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우리의 일상은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환기를 자주 하고, 손을 더 자주 씻고, 아프면 집에서 머무르는 등 새로운 일상을 찾아가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더 장기전입니다.
더 고통스러운 조치가 더 오랜 기간동안,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