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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Oct 29. 2021

결국 도입되는 백신패스, 누구와의 위드코로나일까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위드 없는 위드코로나

"백신 패스", 미접종자에 대한 설득 포기 선언


정부는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의 핵심은 백신 패스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저를 포함한 백신 접종자는 일상을 부분적으로 회복할 겁니다.


늦게까지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 수도 있습니다.

웅크러드는 겨울에 늘어나는 뱃살을 보고는 "이대론 안되겠어"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상 회복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백신은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전세계가 모두 백신 접종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백신의 높은 사망예방효과 덕분에 백신 접종이 시작된 2월 26일 이후 누적치명률은 1.78%에서 0.78%까지 내려갔습니다.

백신 접종은 분명한 효과가 있습니다. 출처 아워월드인데이터

다시 한 번, 백신은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은 선택의 영역에 남겨져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백신을 맞지 않고 있고, 이들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백신 패스 도입은 설득을 포기하고 불이익을 줘서 접종을 강제하겠다는 정부의 포기 선언입니다.


"이래도 접종 안할래? 그럼, 너네 버리고 우리끼리 간다." 라는 것이 정부의 생각일까요?

모두를 따뜻하게 돌봐줘야 하는 정부의 생각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소름끼치고 잔혹합니다.


위중증과 치명률이 높은 사람들은 미접종자? 절반의 사실


정부는 위중증과 치명률이 높은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백신 패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이유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백신 접종은 위중증과 치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따라서 미접종자는 접종자에 비해 위중증과 치명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백신 접종 여부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연령입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완료한 고령층보다 위험이 훨씬 낮습니다.

젊은 백신 미접종자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은 고령층의 백신접종 완료자입니다. 그들의 일상을 막아야 할까요? 출처 질병관리청

정부가 말한대로 위중증과 치명률이 높은 사람을 보호하려면,

위중증과 치명률이 높은 60대 이상에 대해 헬스장 출입을 금지하고, 몇 명 이상 모이지 못하게 하고, 각종 행사 등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제도를 적용하려면, 백신 미접종자의 경우 60대 이상부터, 백신 접종 완료자의 경우 80대 이상부터 각종 제한을 적용하면 될 것입니다.


"위중증과 치명률이 높은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정부의 강변에 따르면 이것이 더 필요한 조치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보호의 형식이 자유의 제한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식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던 모 독재자가 떠오릅니다.

(물론 대통령께서 독재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백신패스는 찬성 비율이 더 높습니다.)


완치자가 제외되는 백신패스, 과학에 기초하지 않았다


(10.29 추가) 
정부는 10월 29일 단계적 일상회복안을 발표하며 완치자에 대해서 백신패스 대상에 추가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뒤늦었지만 과학에 근거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선택적 과학"이라는 비판은 유효합니다.


한편 백신패스에서 감염 경험이 있는 완치자는 제외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학에 기초하지 않았습니다. 백신 미접종자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에서 나온 감정적인 조치입니다.


감염 경험으로 생긴 자연 항체는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인공항체보다 훨씬 더 강력한 보호를 제공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자연 항체 얻자고 백신 접종을 기피하고 코로나19에 일부러 감염되는 것은 추천할 일이 아닙니다. 한편 백신 접종을 받고 돌파감염 되는 경우 자연항체와 인공항체 모두 얻어서 "슈퍼 면역"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걸리더라도 백신 맞고 걸리는 게 더 낫습니다)


"완치자도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정부당국의 설명은 쓴웃음이 나옵니다.

미접종자를 보호한다는 가짜 명분이 아니라, 백신 접종을 강제하고 싶다는 진짜 속내를 나도 모르게 말해버린 것입니다.


감염 후 회복자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강력한 자연 항체를 가지고 있어서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접종해서 인공 항체만 보유하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고령층이 아니라 미접종자에게만 백신패스를 도입하는 것은 위험도가 미접종자보다 더 높은 고령층에게는 도입하지 않는 "선택적 과학"이지만, 어쨌든 위험도가 더 높은 사람을 (자유를 제한함으로서) 보호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과학에 근거는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치자를 제외하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못한 조치입니다.


백신패스 자체가 철회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으나 29일 발표된다는 단계적 일상회복 방안 최종안에 적어도 완치자를 포함시키는 것만은 필요할 것입니다.

 * (참고) 10월 29일 발표안에서 완치자는 포함되었습니다.

백신 미접종자 제외시켰는데 확진자 계속 늘어난다,
백신 효과 없다?


정부가 말한 단계적 일상회복은 백신 접종자들만의 것입니다.


백신 미접종자의 경우 오히려 일상이 더 제약받습니다.

헬스클럽 등, 기존에 갈 수 있던 시설조차 가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미접종자에게는 단계적 일상회복이 아니라 더 강도높은 규제조치의 도입입니다.


또한 위드코로나가 도입되어 통제조치가 약해지면 확진자 증가는 피할 수 없습니다.

"백신 맞고 마스크 쓰니까 확진자 줄어들겠지"라는 대다수 시민들의 생각은 착각입니다.


싱가포르와 영국,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확진자 통제에 성공한 나라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만 성공할 거라는 근거없는 희망은 곧 부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요?

백신 패스로 일상에서 사라진 미접종자를 원망할건가요?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는 것만큼이나 의미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해야하는 것은 백신패스가 아니라 확진자가 늘어나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물리적 여건(병상 등)과 심리적 여건(시민의 코로나에 대한 위험인식 등)을 준비하는 것이지만, 다른 것을 선택했습니다.


백신 접종자들끼리 돌파감염이 지속되며 늘어나는 확진자 속에서 백신이 효과 없다는 미접종자들의 믿음은 더욱 더 견고해질 것입니다.

(물론 잘못된 믿음이기는 합니다. 백신은 예방효과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에는 부족할 뿐입니다.)


식당 가고 싶고 운동하고 싶은 사람은 결국 아무 효과가 없다고 확신하는 백신을 접종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났을 겁니다.

앞으로 정부의 어떤 정책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협조하지 않을 겁니다.

보호(?)하기 위해 자유의 박탈을 택하는 정부 역시 앞으로 협조를 구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 정부의 임기가 얼마 안남았다는 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위드코로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 낮추기


앞서 표를 다시 가져옵니다.

출처 질병관리청

코로나19의 치명률은 매우 높지만 흑사병처럼 걸리면 죽는 질병은 아닙니다.


특히 젊고 건강하다면 그 위험이 매우 낮으며 백신 접종을 완료한다면 위험이 훨씬 더, 극도로 낮아집니다.

젊고 건강하거나, 조금 나이가 있더라도 백신 접종을 받아서 무증상이거나 가볍게 앓고 넘어간다면 후유증의 위험도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보호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신을 맞고도 치명률이 높은 고령층은 우리가 반드시 보호해야 합니다.


가령 요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방문자들을 대상으로 "백신 패스"를 도입해서 백신 접종이나 검사결과 음성 등을 요구하는 것은, 역시 논란이 있겠으나, 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코로나19가 걸리면 죽는 질병, 아니면 적어도 폐가 섬유화되어 죽을 때까지 기침을 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질병으로 그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과대평가된 위험이 K방역 성공에 일정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섭기 때문에 더 마스크 잘 쓰고, 무섭기 때문에 더 백신 많이 맞고, 무섭기 때문에 더 집에 머물렀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과대평가된 위험은 다른 부작용을 양산했습니다.

나름 조심했지만 걸린 사람들은 죄인이 되었고, 혹시 조심하지 않고 걸렸다면 대역죄를 저지른 것처럼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자영업자의 고통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학생들의 교육 격차나 아동들의 발달 장애도 "걸려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라는 잘못된 판단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대 이하 사망자는 없습니다.)


위드코로나는 이 과대평가된 위험을 다시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앞으로 확진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의 위험성이 낮춰지지 않는다면 늘어나는 확진자에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일 것입니다.

위드코로나로 가는 발걸음은 다시 멈출 것이고, 자영업자와 학생 등의 고통은 더욱 길어질 것입니다.


위드코로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이 질병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걸리면 죽으니 백신 맞아서 걸릴 위험 없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보세"가 아니라(이렇게 될 확률도 없습니다),

"걸리더라도 극복할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되, 정말 위험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며 일상을 회복하자"는 것이 위드코로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신 패스와 함께하는 위드코로나는 가짜 위드코로나입니다.

또다시 기후변화로 비유하자면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안"처럼 모순적인 말입니다.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안은 버려졌는데..


문재인대통령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하기 위해 오늘(10월 28일) 출국했습니다.


얼마 전 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상향하기로 결정(기존 26%)하였는데요,

COP26은 이 상향된 목표를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자리입니다.


파리협정에는 후퇴금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한 번 낸 목표는 계속해서 더 도전적으로 올려야하고,

뒤로 물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40%의 감축안에 대해 너무 급속한 감축이라고 경제계의 반발이 엄청나며, 이것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도전적인 목표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조치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뼈와 살을 깎아야만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2050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넷제로"입니다.

넷제로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모두 산림원 등으로 상쇄시킴으로서 더 이상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40%로 올릴 때 이해관계자와의 엄청난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도 엄청난 갈등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초기에는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안"이라는 해괴한 것을 만들어서 위원들의 사퇴를 불러일으키도 했습니다.

이름부터 탄소중립위원회인데 2050년에도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겠다는 시나리오안은 시민단체 등에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안이 10월 18일 국무회의에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역시 고통스럽겠지만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안이 버려진 것과 달리, 코로나 없는 위드코로나는 시행될 것 같습니다.

결국 혼란은 정부의 몫입니다. 역사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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