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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Nov 01. 2021

개근상과 아프면 쉬기

개근상의 나비효과

중학교 때까지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평범 또는 평균이었을 것이다.


공부도 평범하게 했고, 운동도 평균적으로 했고, 키도 평균이었고,

취향도 당시 유행하던 모 아이돌그룹을 좋아했고 등등, 평균에서 벗어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몇 안되게 평균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에 대한 욕심이었고, 학교에서 뭔가 상을 받고 싶었다.

평범한 나도 받을 수 있는 상은 도서관에서 책 많이 빌리는 다독상, 출석만 해도 나오는 개근상 등이었다.

그래서 읽지도 않을 책을 빌렸고(실제로 안읽은 게 대부분) 학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굉장히 아팠던 기억이 난다.

벌이를 하던 아빠가 반차까지 써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그놈의 개근상을 목표로 기를 쓰고 학교로 갔고 결국 학교에서 혼절(?)을 했다.

병원에 실려가 독감 판정을 받아 며칠 쉬었고(쉬는 도중에도 엄마한테 학교 가야한다고 떼썼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해는 개근상이 아닌 정근상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몸이 괜찮아져서 학교에 돌아왔을 때 몇명이 독감에 또 걸려서 결석을 한 상태였다.


그때 나의 독감에 대해 코로나19처럼 역학조사를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감염고리를 추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망자도 나왔을까?

나비효과라는 말도 있다지만 개근상을 받기 위한 나의 작은 날갯짓이라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크다.


지금 생각하면야 우습지만 당시 나에게 학교는 꼭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지만, 당시에는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이 떠난 후 집애 혼자 남겨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도 집에서 쉴 수 없었고, 아파도 학교에서 아팠어야만 했다.


그런데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이유와는 다르게 아파도 쉴 수 없는 이유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날 일을 나가지 않으면 당장의 저녁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아파서 하루 쉬고싶다고 하면 눈치주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독감이든, 아니면 코로나든, 아파도 직장에 나간다면, 그리고 그 감염의 고리를 따라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아픔에도 나간 노동자의 잘못일까, 눈치를 준 상사나 동료, 회사의 잘못일까, 그것도 아니면 적절한 병가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노동조합이나 정부의 잘못일까?


어떤 문제에 대한 원인은 때로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양해서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위드코로나를 위해 방역당국은 많은 것을 강조한다.


백신을 꼭 맞아달라,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마스크를 반드시 써달라는 것이 메시지의 핵심인 것 같다.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면 당당하게 쉴 수 있는 문화 아닐까.


코로나19 이후 또다시 새로운 전염병이 나온다면 지금의 백신은 쓸 수 없다.

그 질병에 마스크의 효용이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프면 쉬기는 그때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파서 쉬는 동료의 일을 대신 하배려를 보여줄 수 있다면,

아파서 쉬는 사람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용도로 우리의 세금을 사용하는 정부를 욕하지 않고 응원해줄 수 있다면,


아픔에도 불구하고 출근했다가 그 감염의 고리를 타고 누군가가 죽는 슬픈 나비효과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개근상이나 정근상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겠다.

그때 그렇게 기를 쓰고 취한 상장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조차 없다.


다시 중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다르게 행동할 것 같다.


"빨리빨리"가 습관화되어 있는 한국에서 아프면 쉬기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고, 아파도 출근하고 아파도 학교에 가는 게 좋은 직장인, 좋은 학생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 아프면 쉬기가 전진을 위한 숨고르기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나를 위해서도, 그런 나 때문에 감염될지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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