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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Nov 21. 2021

"층간소음 흉기난동 부실대응" 경찰을 위한 변명

여경인지 남경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을 문제로 다투다가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2명의 경찰이 동시에 출동했는데, 1명의 경찰(경위)은 신고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머지 1명(순경) 또한 신고자의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위층에 있던 층간소음 행위자가 흉기를 가지고 와서 신고자의 가족을 향해 휘두릅니다.


피를 보고 놀란 순경은 밖으로 나가 경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흉기를 휘두르는 가해자를 뒤로 하고 도움을 요청하러 떠난 특정 성별을 가진 순경을 향한 비난은 거셉니다.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장면 1. 911 테러의 소방관


지금부터 약 20년 전에 있었던 미국의 911테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화재로부터 피하기 위해 모두가 타워를 내려오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올라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뉴욕의 소방대원들입니다.

타워에서 내려가다가 소방관을 만난 시민들은 화재진화를 위해 올라가는 소방관을 향해 박수를 쳐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수를 받은 그들은,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그 박수가 자신의 인생에서 받은 마지막 박수였을 겁니다.

그들은 숭고한 희생을 했습니다. 박수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장면 2. 우순경 사건과 경찰


1982년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한 우 모 순경이 경찰서의 무기고를 탈취해 62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가 우선적으로 살해한 사람은 당시까지만 해도 전화를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전화국 교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살해당하면서도 여성 교환원은 통신을 놓지 않았고,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신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성 교환원 덕분에 출동할 기회를 얻은(?) 남성 경찰은 우 순경이 여러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가 두려움에 매복을 한다는 핑계로 현장에 가지 않습니다.


남성 경찰이 사건을 인지한 이후에도, 그들이 두려움에 현장으로 가는 것을 피하는 그 순간에도 우 순경은 살해를 계속하고, 마침내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합니다.


만약 그가 자폭하지 않았다면 경찰이 숨어 있는 사이에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시 경찰이 적절하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으로는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과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있어야 하며 다만 직무집행에 관하여 태만, 분망, 착각 등 일신상 또는 객관적 사정으로 어떤 부당한 행위를 초래한 경우에는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도 남자 경찰 비중이 더 높지만 이때는 거의 100%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저 사건에 여자 경찰 출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남자 경찰들은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내지 못했고,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분명히 적절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남자 경찰 무용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장면 3.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과 해병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김모 상병은 자신의 총기로 동료 해병 4명을 살해하고 다음으로 권 모 이병을 살해하려고 했지만, 현장에 함께 있던 남성 해병들은 두려움에 떨며 당시 유일하게 김모 상병에게 저항하던 권모 이병을 도와주지조차 않았습니다.


생활관 밖에 있던 남성 해병들 또한 현장에서 도움을 주기보다는 신고조차 하지 않고 도망가기 급급했습니다(부대 밖으로 이탈하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이것은 군무이탈, 즉 탈영에 속합니다). 속옷 차림으로 도망가던 그들을 보며 인터넷에서는 "빤스런"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의 원인에도 해병이 특정 성별만 있어서 그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경찰과 여경 무용론


현장을 이탈한 경찰의 행동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에 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저 또한 용감하게 싸웠을 거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여자 순경 대신 남자 경위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용감하게 마주했을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마주했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내었을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칼 앞에 약한 건 남자 또한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그 여성 경찰이 남자보다 더 강한 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칼보다 약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신고자와 이야기하러 내려간 것이 여성 순경이고, 신고자 가족과 함께 있다가 사건을 목격한 게 남자 경위었으며 그가 놀라 뛰쳐내려와 구조를 요청했다면 남경 무용론이 인터넷을 달구었을까요?


계급이 순경으로서 경찰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웬만한 경력을 가진 경찰도 경험해보지 않았을 사건을 경험해 버렸습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도 충격이겠지만 그 개인적으로도 충격일 것입니다.

트라우마로 사건 당시를 기억조차 못한다고 합니다.

구조 요청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는 그의 변명은, 그리고 실행한 그의 행동은 신고조차 하지 않고 그저 현장에서 도망치기 급급했던 강화도 해병대 사건의 해병보다는 나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이 충격으로 경찰을 그만둔다면 안타까운 일이고,

그가 이 충격에도 불구하고 경찰 생활을 계속한다면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나은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일을 또 겪는 일은 없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은 성별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자지만 죽어가는 순간에도 본인의 직무를 수행한 우순경 사건의 여성 교환원도 있고, 남성이지만 직무를 버린 강화도 해병과 우순경 사건의 경찰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가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사실이며, 이것에 대해 경찰청장이 사과했고 앞으로 재발 방지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 또한 위험한 그 상황에서 직업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생존 본능을 선택하고, 적어도 줄행랑치지 않고 구조를 요청한 점을 볼 때 그 경찰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여성 경찰 폐지하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커다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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