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니까?
층간소음 흉기난동 부실대응 사건이 계속해서 시끄럽다.
지난 번의 포스팅은 이례적으로 조회수도 높고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글로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는다거나,
감동적인 글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해주신 분들도 있지만) 사람들의 화를 돋구는 글이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다른 기사들의 댓글들을 봐도 그렇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여경이 너무 약해서 범죄 현장에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헬스 등 이런저런 운동을 하는 여자라고 할지라도 남자보다 힘이 약할 확률은 높다.
"힘이 약한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여성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경찰은 왜 강해야 하는 걸까. 누구 때문에 강해야 하는 걸까.
바로 "힘이 강한 경향이 있는 사람들", 즉 남자들 때문이다.
물론 힘센 남자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
살인에는 독극물 등 힘이 약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유형이 포함되어 있으니 폭행으로 비교해보자.
남성 폭행범이 100명 있다면 여성 폭행범은 23명만 존재한다.
힘이 센 사람이 범죄를 막기 쉽듯 힘이 센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도 쉬운걸까.
한편 그렇다면 남성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당하는 건 누구일까.
안타깝게도 (상대적으로) 여성이다.
역시 폭행으로 볼 때, 폭행 피해 남성이 100명 있다면 폭행 피해 여성은 64명이 존재한다.
물론 절대적인 숫자로만 따진다면 폭행당하는 여성이 폭행당하는 남성보다 더 적기는 하지만,
가해자 비율 100대 23에 비하면 피해자 비율 100대 64는 유의미하게 높다.
성폭력 피해 남성 100명이 있다면 성폭력 피해 여성 1 353명이 있다는 통계는 할말을 잃게 만든다.
남자는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그 화를 못참고 여성을 때리기도 하는건가.
이 글을 읽은 분이 쓸 말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는 아니다.
이 말에 백번 천번 동의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경찰은 힘이 무조건 세야 해", "그러니까 힘이 약한 여경은 필요가 없어"라는 인식은 고민해야만 하는 지점이다.
어떤 범죄자를 제압하기 위해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참이 되려면,
만약 남경마저도 감당할 수 없는 특전사나 격투기 선수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남경도 도망가도 되는 것인가?
경찰의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단순한 물리적 힘의 차이로 재단하고 여경 무용론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일부 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이다.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해 강력한 체력이나 힘을 가진 경찰이 필요하고 힘이 약한 경향이 있는 여성은 경찰이라는 직업이 맞지 않다라는 말은 일견 사실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를 사실로 인정해버리면, 힘 센 사람들이 범죄 저지르는 것 또한 암묵적으로 "그럴 수 있다"라고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힘을 막기 위해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면 결국 힘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힘 강한 남자가 힘 약한 여자를, 혹은 힘 센 남자가 힘 약한 남자, (흔치는 않겠지만) 힘 강한 여자가 힘 약한 남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의 해결책으로 여경 무용론이 제시되는 현상은 어떻게 하면 더 신체적으로 강한 경찰을 찾아서 범죄 저지르는 약한 사람들을 찍어누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으로 보여서 너무나도 안타깝다.
힘은 더 큰 힘으로 상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매우 단순한―그러나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먼― 논쟁으로 흐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PS. 이 글의 태그를 "페미니즘"이라고 했지만 "휴머니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휴머니즘은 태그 등록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