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하얀 벽"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유로 문제가 생기고, 이를 은폐하다가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재앙이 터지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100년도 되지 않는 원자력발전소의 운영 기간 동안 이와 같은 문제가 터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원전에는 이중 삼중을 넘어 수십중의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한두개 정도의 문제점이 혹시라도 은폐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운영기간동안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십만 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 방사성폐기물의 경우, 그 수십중의 안전장치가 십만 년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씩 은폐되어 국 모든 안전장치가 해제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방사성폐기물을 십만 년동안 안전하게 보관하겠다는 계획, 혹은 순진한 믿음 자체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계획을 수정하자는 Lars의 말에도, Gina는 말을 듣지 않고, 재앙으로 한 걸음씩 다가섭니다.
여기서부터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지속가능성 관련이니, 보지 않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일부 불편한 내용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은 그동안 "제로 확진자 전략"을 사용했고, 이에 따라 인구당 확진자 비율이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확진자 최소화를 정책의 성공 지표로 본다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로 확진자 전략으로 시민들은 엄청난 희생을 했고, 일부 정책적 문제로 엄청난 갈등과 반목을 겪으며 사회 전체의 신뢰가 낮아져 버렸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낮추게 되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감기 환자(젊은 연령의 무증상 코로나)를 줄이기 위해, 사망자(고령층의 치명적 코로나)를 늘리자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고령층에 대한 백신 접종과 최근 젊은층 위주로 감염이 확산되는 것 등을 고려할 때, 확진자가 늘어도 사망자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진한 색은 확진자, 옅은 색은 사망자로, 고령층 백신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 이후부터 두 그래프가 따로 놀기 시작합니다.
물론,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지 않지만확진자 증가에 따라 약간 느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4단계(혹은 그 이상)를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이 또한,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가 적절한 답일 것 같습니다.
가령, 스웨덴의 사망률은 최근 0.1%까지 떨어졌습니다.
독감의 치사율이 0.1%라고 하는데, 이제는 사실상 독감 수준이 되어버린 겁니다.
(물론 이는 전례 없는 수준의 백신 접종 등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독감 때문에 봉쇄령이 떨어지지 않듯, 코로나 또한 이에 준하여 관리하자는 말은 죽음을 방치하자는 것과 동일한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봉쇄가 가져올 효과와 부작용을 생각해서, 매년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마다 봉쇄령을 내리지 않는 것처럼, 코로나 또한 박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겠죠.
(물론 독감보다 치명률이 낮아도 전파력이 다르고, 낮은 치명률은 대규모 백신접종을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기에, 독감보다 치명률이 낮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한국 또는 백신접종이 더딘 다른 나라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제로 확진자 전략은 이제 현실성도 낮습니다. 이 전략은 수용성이 무척 중요합니다. 강력한 규칙이 있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나오는 한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통제로 지친 시민들의 협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제로 확진자가 가지고 올 수 있는 효과(사망자 최소화)도 백신 접종으로 희미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정당성 또한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제 제로 확진자 전략에서 벗어나서 의료 체계의 포화를 막는 "커브 평평하게 하기" 전략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필요합니다.
"커브 평평하게 하기" 전략이란, 의료체계 포화를 막아내는 수준에서 감염을 유지함으로써(파란색) 피할 수 있는 죽음(점선 위의 주황색)을 막자는 전략입니다.
우리는 젊은층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최근 젊은 층이 방역 수칙을 일부 어기는 문제가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보도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의 연대의식을 떨어뜨리고 문제를 남탓으로 돌려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이러한 보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 의식(너네들때문에 코로나가 계속 확산되잖아!)과는 별개로,
저는 지금 젊은 층이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층은 본인에게는 무증상이거나 감기로 끝날 질병이지만, 고령층을 생각해서 방역수칙을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고령층)에게 위협이 되지만 본인에게는 위협이 매우 낮은 상황(대부분이 무증상 또는 경증)에서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판단하는 것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젊은층은 함께 감염병을 극복해야 한다는 자세로 거리 두기에 함께 협조하고 있습니다.
즉,공공보건을 위해 본인의 자유를 희생하고 있는 가장 고마워해야 하고, 미안함을 느껴야 할 세대인데, 오히려 지금의 문제를 젊은 세대 탓으로 돌려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은 다시 한 번, "제로 코로나" 전략입니다.
한국의 거리두기 단계가 확진자 수에 근거하고 있는 이상, 코로나에 걸리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될 일이 되고, 이 때문에 본인에게는 감기로 끝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는 젊은 층에게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는 겁니다.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코로나 이후를 위해 지금의 제로 확진자 전략은 방향을 돌려야만 합니다.
코로나 인해 아동 발달이 지연되고, 청소년과 성인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계속된 제한 조치로 인해 경제적 고통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해결할 문제는 코로나만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코로나와 코로나 아닌 것들 사이에 균형을 찾아야만 합니다.
벼룩(코로나) 잡자고 초가삼간(아동발달, 교육 문제, 경제 등 사회 전체)을 태울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코로나가 가진 의미는 벼룩보다는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 잡기 위해 집 전체를 불태울 순 없습니다.)
그럼, 다시 "짧고 굵게" 론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유럽 국가가 겪은 실패처럼, 짧고 굵게는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여러 유럽 국가는 비슷한 감염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봉쇄령을 한 이탈리아나 스페인, 영국과 봉쇄령이 없었던 스웨덴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봉쇄령이 없었던 한국은 봉쇄령으로 고통받았던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더 감염자가 적습니다.
결국 "짧고 굵게"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물론 이번에 한국이 "짧고 굵게"를 성공시킨다면 전세계가 실패한 전략을 유일하게 한국이 성공시킴으로써 보건계의 센세이션이 될 수 있겠지만,
(중국이 성공했지만, 이는 중국 체제를 감안해서, 민주주의 국가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률이 낮은 그런 도박을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봉쇄령의 여부는 확진자(좌)와 사망자(우)에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짧고 굵게가 만약 성공한다고 해도,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것(확진자 최소화)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감기 환자가 중요하지 않듯, 확진자 수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령층의 확진자 수, 백신을 맞지 못한 확진자 수 등이 훨씬 중요한 지표입니다.
따라서, 사망자와 중증환자를 줄이기 위한 전략(고령층 백신 접종, 병상 확보 등)은 지금과 같이 집중하되, 코로나로 인해 갈갈이 찢어진 사회의 연대의식을 다시 되찾기 위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확진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제로 확진자" 전략에서 탈출해서,
확진자 비난을 멈출 수 있도록 인식 전환을 이뤄야만 합니다.
재앙으로 향하는 문을 열지 않으려면
다시, <WHITE WALL>로 돌아와서,
방사성폐기물을 "미지의 물질"이 있는 곳에 묻는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에 그만둬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미 여기에 묻는 것 외에 아무런 대안도 생각하지 않는 ECSO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계획대로"방사성폐기물을 넣게 되고,
결국 본인들과 스웨덴을 재앙에 빠뜨리고야 맙니다.
잘못된 계획은 바꿔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Helen은 마지막까지 ECSO를 설득해보고자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야 맙니다. 이제 아무도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재앙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확진자 제로"라는 계획이 있고, 이 계획의 역효과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에 집착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며,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더 강한 봉쇄령을 요구하는 시민들로 가득한 우리 나라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더 강한 봉쇄령도 안 통한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확진자 제로" 전략을 위해 젊은 층에 백신을 먼저 주며, 고령층의 죽음은 확진자 최소화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더 강한 봉쇄령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면,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비용으로 지불하고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진 시민들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까요?
<WHITE WALL>에서는 계획을 포기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실패했고, 결국 모든 것이 끝나버렸습니다.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 아들의 비밀 등 마무리짓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결말을 고려할 때, 사실상 모든 주인공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시즌2를 바라는 스웨덴 시청자가 꽤 많았는데, 이미 파멸로 끝나버린 결말을 고려할 때 시즌2는 제작하기 힘들고, 혹시 제작하더라도 좀비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획의 목표는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었는데, 목표는 사라지고 계획만 남았을 때의 비극을 보여주는 셈이죠.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목표도 비현실적입니다. 이것이 제가 원전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시, 계획이 아닌 목적에 집중하자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확진자 감소는 목적이 아닙니다. 코로나로 인한 부정적 영향의 최소화가 목적이고, 제로 확진자 전략은 이를 위한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는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보관이라는 목표와 달리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그런데,이를 실현하려는 확진자 제로라는 계획의 부작용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이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퍼져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파멸로 끝이 난 <WHITE WALL>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계획을 전환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효과가 없을 "봉쇄"라는 카드를 꺼냄으로써 재앙으로 스스로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확진자 제로" 계획 자체를 바꿔야만 합니다.
덧붙임. 동영상이 영어로 진행되고, 쓸모없는 스웨덴어 자막만 나오는 것에 당황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막을 만드는 능력이 없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동영상은 대사가 없고,
두 번째 동영상은 "비밀을 안고 조용히 떠나라"라고 말하는 장면이며,
세 번째 동영상은 "비밀을 밝힌다면 보안각서를 위반하는 것이고, 그럼 우리는 너를 고소할 것이고, 너는 감옥에 갈 것이다"라고 협박하는 장면 정도로 봐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