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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Jul 23. 2021

K-방역 성공을 넘자(2) 생활치료센터, 필요할까?

제로 코로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지금까지의 포스팅에서 말했으며 통계에서 볼 수 있듯,

최근 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과 감염 연령의 하향화, 치료법 개선 등으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탈동조화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는 이전과 다르게 계속해서 치솟지만, 사망자 수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이며 이러한 추세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단순히 제로 코로나가 아닌, "커브 평평하게 하기" 방식으로 코로나 대응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커브 평평하게 하기", 확진자 0이 목표가 아니라 확진자는 발생하되 의료체계 포화되지 않을 정도로 관리하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커브 평평하게 하기 전략으로의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K-방역의 주요 성과(?) 중 하나인 "생활치료센터" 때문인데요,


확진자 모두를 시설에 입소시켜야 하기 때문에, 확진자 수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한국의 현 정책은 "병원 포화"에 더불어 "생활치료센터 포화"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확진자 수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방역 완화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죠.


지난 번 포스팅에서 K-방역의 주요 성과인 "발달된 기술을 통한 동선의 적극적 공개"의 효과에 대해 언급했었습니다.


초기에는 (사생활 침해 논란을 뒤로 하고) "코로나라는 질병은 진짜 존재한다"라는 경각심 제공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을 지 몰라도, 가면 갈수록 거짓 보호("여기는 확진자가 안 들렀으니 안전하겠지?"), 연대의식 저하("저런데를 가다니 정말 개념 없군!"), 깨진 유리창 효과("저렇게 심하게 어기는 사람도 있는데 나의 작은 일탈쯤이야!"와 같은 역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확진자 동선공개가 최소한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적극적 동선공개가 남긴 후유증은, 확진자 탓 분위기 형성이라는 문화로 강하게 남아 있고요.


K-방역의 또다른 성과인 생활치료센터 또한 마찬가지로 이제는 역효과가 더 큰 지점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생활치료센터 포화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확진자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는 방역체계의 경직성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경직된 방역 체계는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 간의 갈등을 만들고(특히 우리나라처럼 소위 일탈행동을 보도해버리는 경향이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시민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저하시킵니다.


자유와 일탈 사이의 딜레마


사실 생활치료센터가 꼭 필요한 개념일까요?


K-방역의 다른 성공사례인 드라이브 스루 검사, 접촉자 추적(단, 확진자 정보의 무차별적 공개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다른 논란입니다) 등은 국제적으로도 찬사를 받았고, 다른 여러 나라가 벤치마킹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치료센터는 벤치마킹 하는 곳이 없지요.

외국에 인프라가 부족해서일까요?

국내 생활치료센터는 호텔, 연수원 등을 사용하는데, 외국에는 이런 시설이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생활치료센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활치료센터를 처음 열 때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무증상과 경증의 환자까지 모두 입원함으로써 병원이 포화되는 것을 막고, 무증상/경증을 격리하여 전파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사실 스웨덴이나 제가 아는 한 다른 모든 국가들은 증상이 없는 경우 집에서 휴식하다가,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 병원으로 알려서 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며, 독감 등 다른 전염성 질병의 대처를 고려했을 때 이러한 대처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 미국의 경우 병원비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미국의 상황을 잘 모릅니다), 스웨덴 또한 무상의료에 가깝습니다. 대처방식의 차이가 예산 문제에서 오는 것은 아니며, 코로나가 독감보다 치사율이 높지만, 그렇다고 이정도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사실 한국에 대해 약간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확진자 중 일부가 일탈할 것이 두려워 생활치료센터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체계라는 것이, 생활치료센터를 설계한 목적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는 설계자의 공식 입장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여러 블로그나 시민의 의견 등을 참고하며 내린 결론입니다. 적어도 이러한 효과를 시민들이 기대하고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이는 시민의식을 믿지 못해서 "일탈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다 가두고 보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물론 코로나 걸리는 것이 범죄는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 아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개념입니다.


딜레마와 불운에 대한 이전 포스팅(북유럽 전형적 이미지와 현실,Snöänglar (2))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어떤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있다고 문제의 싹을 잘라버리려는 형태로  개인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합니다.


한국의 높은 시민의식을 고려할 때,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집에서 격리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일부 소수의 일탈이 걱정되어 모두를 가두는, 윤리적이지 못함은 물론 효율성극히 낮은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시민의식은 상당히 높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요.

따라서 시민의 힘을 믿고, 서로간의 의심을 부추기는 생활치료센터 입소 최소화가 필요합니다.


가령 노인 등 고위험군과 함께 사는 경우, 전파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인 희망에 따라 입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생활치료센터에 입소시키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이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가령 생활치료센터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의료진은 대면 시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화로 증상 여부를 묻고, 불안함에 대한 심리상담을 병행한다고 합니다.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자택에 격리한 상태에서 해도 되지 않을까요?

코로나 질병에 걸렸는데 익숙하지 못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안함을 부추기지는 않을까요?


고생하는 의료진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생활치료센터의 출구전략은 필요합니다.


코로나, 종식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영국과 이스라엘 등의 사례를 볼 때,

코로나는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계속된 방역조치는 수용률을 떨어뜨리고(이미 많이 떨어졌습니다), 아동 발달 문제, 청소년과 성인에 대한 교육 문제, 시민들의 심리건강, 경제 문제 등의 부정적 영향을 야기하기 때문에, 코로나와 일상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지금의 제로 확진자 전략에서 사망자와 중증환자를 보호하는 "커브 평평하게 하기" 전략으로의 수정이 언젠가는 필요하다는 것이죠.


최근 한국의 언론이나 시민사회, 전문가의 발언을 보면, 이 전략이 언젠가는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전략을 고할 때가 지금은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망자 수가 안정화되어 있는 지금이 이러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단계의 첫걸음이 될 것이며,

장기적으로 전략 수정을 위해 앞선 포스팅에서 말한 "확진자 (또는 일반 사민)의 일탈에 대한 보도 최소화"와 더불어 "생활치료센터 입소의 최소화"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확진자 일탈 보도 최소화를 통해 시민들 간의 연대의식을 다시 살려내고,

생활치료센터 입소의 최소화를 통해 확진자 감소 자체를 목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방역지침이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속 가능한 방역으로의 전환


곁가지지만, 저의 지인들이 "스웨덴은 지금 난리라는데 괜찮냐"라는 걱정을 많이 해 줬습니다.

한편으로는 "거기는 집단면역으로 코로나 신경을 안쓴다며?"라는 걱정도 해줬구요.

 (*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스웨덴은 "집단면역"이 아니라 "커브 평평하게 만들기" 전략이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포스팅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소개했으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관련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무척 고마운 말들이었지만, "방역에 있어서는 한국이 최고다"라는 우월감이 한편에 있는 말들이어서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구당 낮은 누적사망자를 볼 때 한국은 코로나 방역에 대단히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의 연대가 남아있는 스웨덴과 비교하여 코로나로 인해 한국이 겪은 갈등은 너무나도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갈등은 제가 생각했을 때에 불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식의 손상을 대가로 한국은 지금까지 코로나라는 "전투"에서는 이겼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방법에 대한 수정 없이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전반적인 사회 부정적 영향의 최소화라는 공공보건의 최종 목표인 "전쟁"에서는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전투뿐만 아니라 전쟁도 승리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방역으로의 전환을 통해 다시 시민들 간의 연대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정말 마지막 덧붙임으로, 지금까지 주제가 "지속가능한 방역, 스웨덴에서 배우자" 였는데, 이 글은 생활치료센터가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스웨덴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부터는 아무 근거가 없는 제 생각이니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서 일했던 분들의 글을 몇 가지 찾아보았습니다.


소위 진상처럼 행동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시고,

병원이 아닌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것을 국가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셨고,

반대로 먹을 것도 주고 전파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글쎄요, 저의 생각이지만,

진상처럼 행동하는 분들은, 국가에 의해 내 자유가 통제당했다는 불안감과 불만 때문에 나온 무의식적 행동 아닐까요?

저라도 집에서 잘 격리할 수 있는데, 저를 못 믿어서 생활치료센터라는 곳에 가둬버리면 항의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철없는 시민이 아닙니다.

스스로 잘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누군가가 시킬 때에는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불필요한 갈등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서 불안함에 다소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을 입소자들과, 그들을 상대해야 했을 공무원과 의료진 여러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돌보기 위해, 생활치료센터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가둬버림으로써 스스로 책임 있게 행동할 기회를 빼앗는 이 이상한 제도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 쓰고 나니 생활치료센터 전체가 이상하다는 것 같은데.. 앞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가 원해서 들어가는 경우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어떻게 수정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오해 하지 않으셨으면 해서 추가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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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 당시에는 "굳이 필요없다" 정도였는데, 의료치계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없어져야 한다"는 게 더 개인적 생각입니다.

관련 포스팅 읽기: 위드코로나 전환, 생활치료센터 종료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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