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와 지독한 불운
우리가 스웨덴에 가지고 있는 전형적 이미지를 깰 수 있는 또다른 장면은 덴마크에서 온 간호사 Maria에서 볼 수 있다.
마리아는 자폐에 걸린 동생을 두고 있는 BVC(어린이병원) 간호사이다. 독신으로 늙어가고 있는 그녀는 길거리에서 범죄를 당할 뻔한 어린 가출한 미혼모 Emma를 구해 주고, 그가 품고 있는 아이가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그에게 숙식을 제공할 만큼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헌신적인 간호사인 그는 산후우울증에 빠진 예니가 루카스를 방치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것이 아동 학대임을 의심하지만 사회보장청 소속이 아니라 BVC 소속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루카스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사회보장청에 신고하겠다는 그녀의 경고는 BVC 동료들에게 "너무 나간 행동"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그녀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야 만다. 예니가 극한의 추위에 루카스를 밖에 내놓았던 날 그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그 날, 루카스를 입양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집을 찾아가느라 자리를 비웠던 살레, 약을 먹고 취해 잠들었던 예니는 영문을 모른 채 경찰에 잡혀 가고, 실종되었던 루카스는 경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고 만다.
예니는 잠에 취해 있었고, 살레는 집을 비웠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루카스는 집에서 꽤 떨어진 호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해답을 알 수 없는 이 살인사건에 경찰 Annika가 뛰어든다. 과연 안니카가 찾게 될 해답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말이, "죄가 저질러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라는 것이다. 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고, 의심만으로는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결국 희생당하는 사람이 많지만, 해결하기는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이 딜레마는 Snöänglar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하고, 그것의 결과는 가장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갓난아이 루카스의 죽음으로 나타남으로서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복지천국이라는 이미지를 깨버리게 된다. 산후우울증 전의 예니의 장면을 보면, 산후우울증만 아니라면 루카스를 헌신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단서가 드라마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즉, 예니는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 사회보장청이 아동학대를 이유로 루카스와 니콜을 모두 데려간다면(루카스를 학대한 것을 사회보장청이 알아챈다면 둘 모두를 데려갈 것이다.), 이는 네 명의 가족 모두에게 비극일 것이다.
그러나 지독히도 나쁜 운으로, 예니는 다시는 루카스를 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마리아가 그토록 아니기를 바랐던 그 일이 결국 일어나버린 것이다. 사회보장청이 둘을 데려갔다면 적어도 루카스의 죽음만은 막을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루카스의 죽음은 그래서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Snöänglar는 분명 완벽한 드라마는 아니다.
가령 살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예니는 왜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는지 또한 동기가 부족하다.
그러나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어두운 현실을 비교적 잘 담아내었고,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있을 법한, 핍진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북유럽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도 좋을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