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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Aug 05. 2021

팬데믹을 끝내려면 (1) 글로벌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건강한 젊은 층이 저개발국 위험층보다 우선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통제하는 데 성공을 거뒀습니다.


사망률이 1%라고 할 때, 100명이 걸리는 것과 1000명이 걸리는 것은 사망자 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확진자 수를 줄이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닙니다.


또한, 확진자 수의 증가 속도가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버리면 사망률이 급격하게 오르게 되기 때문에 의료붕괴의 위가 있는 경우 확진자 수를 적정 선에서 유지하기 위해 부분 봉쇄, 혹은 전면 봉쇄 등의 형태로 정부의 개입 필요성이 있습니다.

커브 평평하게 하기 전략으로 의료체계의 포화를 막는 수준으로 확진자 수를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백신 접종으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의 비례관계가 깨졌고, 최근 확진자 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수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해서 지금처럼 확진자 수 최소화에 집착하게 되면 편익에 비해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가령, "확진자 제로" 목표에 방해되는 확진자는 죄인이 되고,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최근 연예계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왔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걸려서 죄송하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걱정끼쳐드려 죄송합니다"도 아니고, 코로나 걸린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닌데, 그들은 걸려서 송한 걸까요?)


최근 한국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 시민들의 자유가 너무 오랜 기간동안 제약받아왔기 때문에, 확진자 수를 자체를 낮추기 위한 강력한 정책의 수용성이 떨어지고 있고, 동시에 방역수칙을 지키는 사람과 조금씩 어기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갈등이 커지기도 합니다.

(4차 유행의 한복판인 지금의 사망자는 고령층 백신 접종 등으로 일일 한자릿수 대로 내려왔고, 오히려 작년 말~올해 초 매일 두 자릿수대의 사망자가 발생하던 3차 유행보다 안정적입니다)

사망자 수가 안정화되어 있는 최근4차유행은 작년 1~3차 유행보다 강력한 정책이 도입됨에도 불구하고 이동억제 효과가 덜합니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코로나로 인한 자영업자의 (생계를 넘어선) 생존 문제와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교육 격차, 아동 발달 장애 문제 등 코로나 통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코로나"와 "다른 사회문제"와의 균형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속 가능한 방역으로의 전환 논의가 필요합니다.


위의 이야기는 이 매거진 포스팅의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인데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활치료센터 강제입소 제도를 없애고 자가치료를 활성화하자거나, 확진자 정보 공개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방역지침 위반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자거나, 마스크 의무착용 지침을 손보자는 등,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기 위한 출구전략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점을 언급했었습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확진자 대신 중증/사망자에 집중하며 코로나를 질병 중 하나 정도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와 다른 것 사이의 균형을 찾는 작업에서, "다른 것"을 위해 "코로나 통제"를 완화하게 되면 코로나 확진자의 증가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코로나, 걸리면 안되나?"


이 질문의 답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건강한 젊은 층, "(나는) 걸려도 된다"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까요? 지난 달, 먼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청해부대에서 300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서 시민들을 걱정시켰는데, 다행히 대부분이 완치되었고, 아직 병원에 남아 있는 3명의 환자도 경증만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코로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층이라면 사망률이 급격하게 높아지지만 젊은 층의 경우 무증상이나 경증으로 지나갈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 젊은 층은 본인이 기저질환 없이 건강하다면 걸려도 됩니다. 코로나에 걸렸던 300명이 넘는 청해부대원들도 모두 완치되거나 완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기는 인류의 곁에 언제나 함께했었습니다. 감기 유행으로 봉쇄를 한다면 누구나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고위험군에게 코로나19는 감기 정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입니다. 따라서, 연령별 사망률이 다르기 때문에 봉쇄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생깁니다.


코로나는 감염성 질병이기 때문에, 청해부대처럼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본인에게는 위험이 없다고 할지라도 중증이나 사망 위험이 높은 고령층에게 병을 전파하는 걸 통제하기 힘들고, 따라서 젊은층은 공공보건을 위해 본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세대가 되어버리고야 맙니다.

(따라서, 젊은 층은 코로나로 인해 본인의 영향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가장 고마운 세대"입니다.  "난 걸려도 안 죽어!"라며 일상을 즐기는 것은 사실 개인주의적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고, 따라서 일부 젊은 층의 일탈을 무조건 탓하기만은 힘듭니다.)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자, 백신을 맞아야 한다

고령층에게 코로나는 실존적 위험임이 분명합니다. 그들에게 백신 접종의 이득은 분명합니다. 표출처 질병관리청

예전에, 50대인 자신이 예약한 백신을 20대인 아들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담은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내놓는다는 부모의 마음이 절절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무증상이나 경증으로 지나갈 20대의 아들 대신, (물론 50대도 상당히 젊은 나이기는 합니다만) 위험이 더 높은 본인이 맞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백신 접종의 선후관계로 죽음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선후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인 것으로 확인된다면 그 안타까움은 더더욱 커지고요.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이에 대해 "백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고,

이 때문에 백신접종을 꺼리는 고령층이 있음을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층이 언제까지나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자영업자가 언제까지 희생할 수는 없고,

교육을 언제까지나 세워둘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 발달 또한 지금 때를 놓치면 앞으로 평생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이 때문에, "코로나 이후"로 가기 위해서는 고령층은 반드시 백신을 접종해야 합니다.

통제를 푼 이후, 건강한 젊은 세대는 희망자의 백신 접종과 함께 자연 면역으로 이겨내고, 고령층과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백신의 도움을 받아 이겨낼 필요가 반드시 있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위험군의 경우 백신 접종을 꺼린다면 안 받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받는 것이 조금 더 이득이긴 하겠지만, 큰 차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연대의식을 찾아서, 백신을 정말 필요한 곳에


저는 한국을 포함한, 그리고 제가 배울 지점이 있다고 언급한 스웨덴을 포함한 모든 선진국들이 지금 윤리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백신 확보를 조기에 못했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저소득 국가의 85%는 아직 백신을 전혀 맞지 못했고, 특히 아프리카의 백신 접종률은 2%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백신은 선진국에서만 분배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60세 이상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고,

50대 중위험군에 대한 접종 또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접종이 완료되면 코로나의 사망률은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아가, 우리나라와 선진국은 무증상 또는 감기 환자, 즉 건강한 젊은 층의 코로나 확진자)를 줄이기 위해 이들에게도 모두 백신을 주고자 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부스터샷을 맞추고 있고, 한국 또한 내년에 사용할 부스터샷 확보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며, 스웨덴 또한 부스터샷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젊은 층에게 백신을 맞을 권리를 주거나 부스터 샷을 주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소득국가에서 백신 없이, 한없이 약해진 자연면역으로 버티는(혹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면역력이 높은 선진국의 젊은 층이 먼저 백신을 받는 지금 상황은, 너무 비정합니다.


선진국의 감기 환자를 줄이기 위해, 백신을 구매할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국 고위험군 시민들의 죽음을 외면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저소득 국가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코로나 백신을 꼭 맞아야 할까요?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자라면 꼭 맞아야 합니다.

건강한 젊은 층이 맞을지 말지는 선택이지만, 맞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위험층의 후순위에 있어야 하고, 이 순위는 한 국가 안에서만이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특성상 지구촌 전체에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영국과 이스라엘 등이 보여주듯, 백신 접종이 아무리 늘어나도 감염이 마법처럼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즉, 백신으로 코로나를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백신의 사망과 중증 예방 효과는 여전히 뛰어나기 때문에 백신을 맞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는 특히 고령층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죠.


그렇지만, 사실 젊은 층은 백신 없이도 사망과 중증으로 갈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백신이 있으면 그 확률이 더 낮아질 수는 있지만, 고령층과 비교하여 백신 접종의 이익이 현저하게 크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의 젊은 층이 저개발국의 고령층보다 백신을 먼저 받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선진국 두 명 중 한명이 백신을 받았습니다. 저소득국가는 74명중 1명이 백신을 받았습니다. 출처 WHO

훗날 미래 세대가 우리 세대를 어떻게 그릴 지는 모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서술 부분도 있고, 부정적으로 서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불공정한 백신 분배를 볼 때, 미래 세대가 우리를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에 코로나19 상황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주홍글씨는 두고두고 남을 것 같습니다.


팬데믹을 끝내려면


이제 코로나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는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빠르게 항체를 얻어야 하고, 항체를 얻기 위해서는 감염 또는 백신 접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항체의 보유기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항체 보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해지는 것을 대비해서 이 작업은 가능한 지구촌 전체에서 동시에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면역을 얻어야 바이러스는 더 이상 숙주를 쉽게 찾지 못하고, 다른 감염성 질병과 유사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산발 감염 형태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저소득 국가가 봉쇄 조치를 완화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해 전세계의 고령층이 빠르게 접종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고령층 등 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해 특히 의료체계 역량이 낮은 저개발국의 봉쇄는 피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건강한 젊은 층의 자연감염이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진국이 아무리 집단면역을 이루고자 해도, 저개발국과의 교류 과정에서 계속해서 코로나가 유입될 것이며, 팬데믹 종식은 그만큼 늦춰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개발국이 백신을 통해 최소한 위험군만이라도 보호할 수 있다면 의료 체계가 버텨내는 수준에서 봉쇄를 풀 수 있고,

저개발국가도 건강한 젊은 층 사이 감염 확산에 따른 자연 면역, 고령층은 (자연감염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백신을 통한 인공 면역을 통해 사회의 면역성을 선진국과 동시에 높일 수 있습니다.

저소득국가의 생명을 구함은 물론, 그들이 봉쇄에서 벗어나 경제회복에 전념할 수 있게끔 도와줌으로써 우리의 국제무역 파트너가 더 많은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부수적인 효과로 가져올 수 있겠죠.

저개발국가의 고령층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젊은 층은 조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내의 일상 회복, 그리고 다시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저개발국과 함께 백신을 나누는 것은 윤리적인 선택일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물론 백신이 충분히 확보가 되면 선진국의 젊은 층과 저개발국의 젊은 층 중에 선진국이 먼저 맞을 수는 있습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경제 논리가 작용하는 것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젊은 층과 저개발국의 고령층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입니다. 그들이 맞기 전에 저개발국의 고령층이 먼저 맞는 것이 은 선택입니다.

이런 점에서 유럽연합과 미국 등은 이미 이기적인 선택을 해버렸고, 한국 또한 곧 저위험군 백신 예약을 시작하며 다른 선진국들이 밟은 "도덕적 파멸"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원래부터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정적으로는 이해하고 있는 행동인) "일부 젊은 층의 일탈"을 욕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이 본인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고령층의 잠재적 고통을 외면하듯, 우리 또한 우리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저개발국 고령층 사이의 잠재적 확산을 외면해버린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의료 체계가 마비되고, 병원에도 못 가고 죽음을 맞이한 시체들이 길거리에 불태워지는 장면을 보며, 우리 모두는 경악했고 인간이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을 근원적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포 앞에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인구의 몇배에 달하는 백신을 선점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긴 터널의 끝에서 어렴풋이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성을 찾고, 선진국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합니다.


(이 글은 스웨덴도 잘못하고 있는 점이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배우는 지속가능한 방역"이라는 매거진 이름에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가 제일 적절한 것 같아 여기에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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